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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무균 Jun 04. 2024

‘오베라는 남자’, 하느님조차 바꾸지 못한 원칙

랑하는 아내 곁으로 가기 위해 ‘오베’는 세 번 자살을 시도했으나, 모두 실패했다. 밧줄이 끊어졌고, 옆집에 사는 파르바네가 차고 문을 열고 들어왔고, 장인의 유품인 라이플로 자기 머리를 겨누어야 했을 때 아드리안과 미르사드가 오베의 집 현관문 밖에서 얼쩡거렸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이 오베의 원칙은 아니었다. 하지만 오베는 원칙보다 소냐를 더 사랑했고, 그것이 유일하게 그가 ‘주거지 차량 진입금지’ 원칙보다 더 우위에 둔 것이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도 오베가 원칙을 깨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으셨다. 어찌 됐든 오베의 원칙이 이겼다.

  

5월 28일 읽기 시작한 ‘오베라는 남자(다산책방, 2015)’를 6월 2일 일요일 한밤중, 베트남 하노이 숙소에서 모두 읽었다. 원래 이 책은 이날 오후 4시를 전후해서 모두 읽었어야 할 것이었다. 하지만 20여 쪽, 세 챕터를 남겨둔 시점에서 책 읽기를 멈추었다. 이대로 독서를 마치기에는 다소 아쉬웠다. 좀 더 긴 피니시, 고집불통 오베의 까칠함 속에 잠재하고 있던 선한 영향력의 여운을 더 느끼고 싶었다. 책을 덮고 침대에서 일어나 오전 미뤄둔 헬스장으로 운동을 하러 갔다. 남은 20여 쪽에서 다시 오베가 자살을 실행할지에 대해 궁금해하면서. 1시간 30분 동안 운동을 하고 돌아왔다. 샤워를 하고, 운동복을 빨고, 저녁을 먹었다. 그러고는 방 침대에 누워 다시 ‘오베라는 남자’를 펼쳐 들었다.

     

9시 26분, 작가 프레드릭 배크만이 ‘감사의 말’을 전했다. 그리하여 451쪽에 달하는 ‘오베라는 남자’를 모두 읽었다. 읽는 내내 작가의 언어유희와 비유, 은유, 상상력, 돌려 까기를 통한 독설에 감탄했고, 그럴 때마다 요나스 요한슨의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이 생각났다.(2014~2015년 무렵 나는 요나스 요한슨의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이 너무 재미있어서 그의 다른 책들, 예를 들면 ‘셈을 할 줄 아는 까막눈이 여자’, ‘핵을 들고 도망친 101세 노인’, ‘달콤한 복수주식회사’ 등을 모두 사서 읽었다) 이 책이 지난 10년 동안 왜 서재도 아닌 안방 읽지 않은 책 책꽂이에만 꽂혀 있었는지 알 수 없었다. ‘오베’가 ‘알란 칼손’처럼 슈냅스(유럽, 특히 독일 및 그 주변에서 독주를 일컫는다)를 마시지 않아서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스웨덴 작가들은 모두 비유와 은유, 언어유희가 탁월한가? 노벨문학상이 생긴 1901년 이후 스웨덴에서는 8명의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나왔다. 물론, 당연히 신념으로 똘똘뭉쳐 남의 일에 간섭하기 좋아하는 그 잘난 우리나라 문학계에서는 단 한 명의 노벨문학상 수상자도 나오지 않았지만 말이다.

   


책을 읽으면서 유일하게 마음에 들지 않았던 문장 하나. “도요타 정도면 받아들일 수 있었다. 오베가 대리점에 갔을 때 그 빌어먹을 꼬마는 현대차를 보던 중이었으니까. 하마터면 더 나빠질 수도 있었다.” 423쪽에 나오는 글이다. 오베는 평생 스웨덴에서 만든 사브만 탔다. 사브 이외의 차를 타는 것은 그에게 있어 원칙이 아니었다. 아드리안이 ‘르노’를 산다고 했을 때 그는 그 빌어먹을 프랑스 차를 사려는 그의 엉덩이를 걷어차고 싶었다. 결국 아드리안은 도요타를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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