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의 일인자’를 만난 것은 행운이었다

어느 백수의 오락가락 독서일기/로마의 일인자/콜린 매컬로

by 김무균

11월 26일 일요일의 늦은 밤 콜린 매컬로의 대서사 ‘로마의 일인자(Masters of Rome)’를 5부까지 모두 읽었다. 각 부 3권, 총 15권 6,995 페이지에 달했다. 독만권서讀萬卷書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간듯 해 마음이 뿌듯했다.


이 책은 1990년 1부 ‘로마의 일인자’를 시작으로 출간된 이래 2007년까지 7부작으로 발표됐다. 국내에는 5부 ‘카이사르’까지 번역되어 출판됐는데, 6부 ‘시월의 말’과 7부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는 오는 12월 출판될 예정이다. 매컬로는 이 책을 쓰기 위해 13년간 자료를 수집하고 고증했다. 책은 18여 년간에 걸쳐 발표됐다. 이 책에 바친 매컬로의 인생만도 30여 년에 달한다. 그가 산 인생의 반이다. 그런데 나는 2015년 8월 8일 이 책 1부 ‘로마의 일인자’를 사서 국내에 번역된 5부까지 읽는데 2년 4개월이 걸렸다. 사실 각 부가 출간되는데 6개월 정도씩 걸려 어쩔 수가 없기는 했다. 매컬로의 노력에 기대어 책상에서, 침대에서, 소파에서, 로마를, 로마의 역사를, 전쟁을, 풍속을, 도시를, 건축물을, 그리고 지중해와 그 주변의 삶을 너무 편하게 한꺼번에 보았다. 어느 때는 그것이 매컬로에게 미안했다. 그러나 어쩔 수 없지 않은가. 누리는 자는 노력한 자의 뒷사람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처음 이 책을 접하게 된 계기는 신문의 책 소개 때문이기도하지만 작가가 콜린 매컬로라는 것도 이유였다. 대학에 들어가 처음으로 사서 읽은 소설책이 ‘가시나무 새’였는데, 작가가 콜린 매컬로였다. 객지였고, 봄이었고, 마음이 살랑살랑하고, 가시나무새처럼 가시에 가슴이 찔려 시퍼렇게 멍이 들고 싶은 때였다. 어제 책장에서 그 책을 찾았으나 보이지 않았다. 아마 몇 년 전 모교 도서관에 책을 기증할 때 거기에 딸려 들어간 듯했다.


‘로마의 일인자’를 사서 처음 읽을 때는 매우 곤혹스러웠다. 매컬로는 내 지식수준과 지도해석능력과 언어능력을 알지 못한듯 했다. 프라이노멘(이름) 노멘(씨족명) 코그노멘(세 번째 이름)이 합쳐진 긴 로마식 이름(예를 들어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가이우스가 프라이노멘이고, 율리우스는 노멘, 카이사르는 코그노멘이다.)에다 관습에 따라 중복되는 아버지와 같은 아들의 이름, 페이지마다 계속 이어져 나오는 수많은 이름들에 골이 지끈지끈 했다. 로마식 그리스식 땅 이름, 도시 이름, 종족, 나라, 관직, 행정 및 법제, 시설, 가도, 종교, 신화, 수많은 전쟁 등은 페이지가 넘어가도 무엇을 읽었는지 기억하지 못하게 했다. 게다가 갈리아와 파르티아 그리스의 이름과 지명들은 또 로마와 달랐다. 책 한 권을 읽고 나서야 내용의 윤곽이 머리에 들어오기 시작했고, 그제야 책을 읽는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어쩌면 이 책은 독자가 쉽게 다가가지 못하는 책일 수도 있다.


1부 세 권을 읽고 나서 나는 로마에 관한 한 매컬로를 무조건 존경하기로 했다. 그가 여자여서가 아니었다. 그냥 막 존경해야 했다. 오래전 한 때 ‘로마인 이야기’, ‘바다의 도시이야기’ 등을 읽고 시오노 나나미에게 빠진 적이 있었다. 그때도 그가 여자여서가 아니었다. 직선이면서 곡선이었고, 명료하면서도 함축된 의미가 깊은 그의 짧은 글에 반해서였다. 그런데 매컬로를 알고나자 나나미가 시들해졌다. “그가 로마를 제대로 알기나 하는가?” 남자의 변심은 무죄다. 그길로 3권이나 되는 책을 몇 세트 사서 지인들에게 선물하기도 했는데, 그분들께서 읽어보셨는지 모르겠다.


로마는 위대하다. 한니발을 이기고 로마를 구한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를 보라. 예언에 따라 여덟 번이나 집정관을 지낸 가이우스 마리우스를 보라. 뛰어났으나 잔혹했으며, 절박한 위기를 기회로 만든 독재관 술라를 보라. 카이사르는 무릎 위의 고양이처럼 다루었지만 지중해를 평정하고 먼 히스파이아를 로마에 복속시킨 위대한 폼페이우스를 보라. 그리고 이들 모두를 합친 것보다 위대한 사람, 갈리아를 정복하고 로마와 지중해와 세상의 삼분의 일을 지배한 신보다 겨우 한 뼘 아래의 존재,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를 보라! 옥타비우스, 존엄한 자 아우구스투스는 아직 오지도 않았다.


자나 깨나 카이사르를 잡아먹지 못해 안달했던 비불루스가 내전內戰 중 병으로 죽었다. 「카이사르는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 난 그가 그리워. 그는 내 오랜 적들 중 처음으로 세상을 뜬 사람이야. 원로원도 이젠 달라지겠지.” “그럼 훨씬 잘된 것 아닙니까?” 안토니우스가 말했다. “편안함에서라면 그렇지. 하지만 사람이라면 누구나 맞서 싸워야 할 종류의 반대라는 측면에서는 그렇지 않아. 내가 한 가지 두려워하는 게 있다면, 안토니우스, 그건 이 염병할 전쟁이 끝난 뒤 내 적들이 아무도 남지 않은 상황이야. 그건 내게 좋지 않아.” “난 비불루스의 죽음이 카토의 죽음이 그럴 것만큼이나 잘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한 명은 죽었고, 나머지 한 명도 곧 죽을 겁니다.” “그렇다면 자넨 나의 온전함에 대해 가끔 내가 가지는 것보다 더 많은 믿음을 갖고 있는 거야. 독재는 방심할 수 없는 거라네. 아마 세상의 그 누구도, 심지어 나조차, 반대가 없을 때 독재에 저항할 힘을 갖고 태어나진 않았을걸.”카이사르는 진지하게 말하고 어깨를 으쓱했다.」 (Masters of Rome Ⅴ. ‘카이사르’ 3권 294p, 295p) 카이사르의 로마보다 2,000년이 더 지나 민주주의가 발전한 오늘에도 이런 기막히게 훌륭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드물다. ‘카이사르’를 읽으면서 가장 가슴 속에 새겨두고 싶은 문장이었다. 이 글을 쓰면서 한 자라도 틀리지 않기 위해 ‘카이사르’ 3권을 늘 가방 속에 넣고 다녔다.


‘로마의 일인자’를 읽으면서 5부 ‘카이사르’를 읽는데 가장 많은 시간이 걸렸다. 장발의 갈리아는 로마에서 멀었고 익숙하지 않았다. 중간 중간 남한산성도 다녀와야 했고, 편식도 막아야 했다. 당연히 책 읽는 속도도 느려졌다. 카이사르가 루비콘 강가에스 “에네리힉소오 키보오즈! ανερρίφθω κύβος! ” 주사위를 높이 던지라!고 한 뒤에야 책을 읽기가 편해졌다. 속도도 났다. 그래도 올 7월 중순 책을 사서 ‘카이사르’ 세 권 전부를 읽기까지는 무려 4개월이 넘게 걸렸다. 6부 출판 시기를 감안해 아껴 읽은 측면도 있긴 했다. 내일이면 책 6부가 출판된다는 12월이다. 매컬로의 로마와 지중해와 이집트와 파르티아와 브리타니아와 전장과 원로원.... 공간과 상황에 대한 세밀한 묘사, 어떨 때 나오는 천박하고 거친 말투, 품 안에 담을 수 없는 넓은 스케일, 대놓고 표현하는 성적性的 묘사가 벌써 그리워진다. 위대한 콜린 매컬로, 그는 ‘로마의 일인자’ 6부 ‘시월의 말’을 발표하고 일 년 뒤 황반변성으로 왼쪽 눈의 시력을 잃었다. 그후 지속적인 건강악화에도 남편의 헌신적인 도움으로 집필의지를 잃지 않았다. 난 같은 처지의 미우라 아야꼬三浦綾子가 생각났다. 2015년 1월 남태평양의 노퍽 섬에서 그는 원주민 남편 릭 로빈슨을 두고 세상을 떠났다. 그의 나이 77세였다.

keyword
이전 04화클레지오가 바라본 서울은 언제였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