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백수의 오락가락 독서일기/유리流離/박범신
소설 ‘유리流離’의 첫 문단은 이렇게 시작한다. “세 살이 되었을 때 나는 읽을 줄 알았고, 다섯 살이 되었을 때 갖가지 악기의 소리를 들었으며, 그것들의 감미와 슬픔을 나는 온몸으로 이해했다. 일곱 살이 되었을 때 내 머리맡엔 열 줄段의 책꽂이가 놓여 있었고 나는 그곳의 책들을 틀린데 없이 읽고 썼다. 열세 살이 되었을 때 서가는 몇 배로 늘어났고, 나는 말재간으로 사람들을 자유자재로 웃기고 울릴 줄 알았다. 사람들은 내 혀가 유난히 길다고 말했다. 그리고 열일곱이 되었을 때 나는 마침내 또렷이 보았다. 내가 본 그것은, 나의 죽음이었다.”
소설 ‘유리’는 주인공 유리가 타이완에서 온 손녀에게 자신이 살아온 일생을 이야기 하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전개되는 유리의 일생은 고통스럽고 고되다. 하지만 거기서 절박한 어려움과 고통은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은 달빛에 바랜 전설 같아서 신비롭고 정갈했다. 절망과 희망조차 버려서 얻고, 얻어서 버린 것들이기에 담담할 뿐이었다. 그래서 그의 인생은 이야기처럼 간단하게 설명할 수가 없다.
친일파 자작이자 악덕 기업가인 양아버지를 죽이고 반도의 등줄기를 넘어 만주, 중국, 사막의 끝 유사촌, 티베트, 텐샨산맥, 타이완까지 그는 맨발로 나아간다. 때로는 그것이 독립의 운동이 되기도 했고, 먹고 사는 길이기도 했고, 꿈을 찾는 과정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 끝에는 늘 운지산에서 처음 본 붉은댕기가 있었다.
나는 소설을 처음 읽으면서 참 색다르고 재미있는 소설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페이지가 나아갈수록 자꾸 작가에 대해 의심이 들었다. 이야기는 실제 속에서 식상했고, 판타지가 첨가되면서 황당했다. 둘이 뒤섞이니 이야기의 격格이 떨어졌다. 중간에 읽기를 멈추고 싶었다. 하지만 계속 읽었다. 나는 책을 읽는데 있어 인내심이 강한 사람이었다. 책이 절반을 넘어가면서 다시 집중할 수 있었다. 보이지 않던 것이 보였고, 작가의 지식과 철학의 내공이 만만하지 않음을 알았다. 중국 내전과 전장의 위안부 이야기에서는 몰입했고, 친일 부역자들이 어떻게 항일투사가 됐는지, 인천의 화교들은 어떻게 차별 받았는지를 볼 땐 절망했다.
유리는 1915년에 태어나 2015년에 자신이 운지산의 동굴 샘에서 본 죽음대로 죽었다. 그가 산 한 세기 속에 동아시아의 100년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그의 생이 곧 역사였다. “거침없이 썼다. 이야기는 절로 아귀가 맞춰졌고, 문장은 손끝에서 스스로 완결되는 느낌이었다. ‘자유의 문’에 다가서는 기분이었다.”는 작가의 말은 가슴 깊은 곳에서 나왔을 것이다. 최근 일본과 한국 사이에 위안부 합의 문제가 다시 뜨거운 감자가 되고 있다. 그런가? 그렇다면 박범신의 ‘유리’를 일독一讀하기를 권한다. 붉은댕기와 점순이가 그날, 그곳에서 겪은 일들을 지금 유리가 이야기하고 있다.
나는 얼마전부터 오른쪽 귓속이 가렵다. 밤마다 가려움이 심해져 잠에서 깬다. 면봉을 찾아 귓속을 닦아도 잠시 뿐이다. 귓구멍을 뒤집어 가려움을 긁어내고 싶을 정도다. 작가 박범신은 오랜 가려운 귓병이 소설 ‘유리’를 만들었다고 했다. 소설 속 유리도 귓병을 앓아 밤마다 비명을 질렀고, 유사촌의 큰마님도 귓병을 앓았다. 모두 듣고 싶은 것을 듣지 못하고, 듣지 않아야 할 것을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누가 지금 내 얘기를 하나보다. 밤이 깊고 다시 귓속이 가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