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레지오가 바라본 서울은 언제였나?

어느 백수의 오락가락 독서일기/빛나-서울 하늘 아래/르 클레지오

by 김무균

‘장마리 귀스타브 르 클레지오’가 제주 우도의 해녀를 소재로 2014년 쓴 소설집 ‘폭풍우’가 국내에 번역 출간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책이 출간되면 사 보리라 작정했으나 그간 잊고 있었다. 그런데 얼마 전 그가 최근 쓴 ‘빛나-서울 하늘 아래'라는 소설이 출간되었다는 기사가 신문 문화면마다 지면을 가득 채웠다. 그가 서울을 소재로 한 소설을 쓴다는 이야기는 올해 여름이 오기 전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이미 알려진 것이긴 했다. 하지만 세계적으로 유명한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가 한국, 그것도 서울을 배경으로 소설을 출간한다고 하니 그간 그에게 관심이 크게 없던 나도 책이 출간되기를 기다리고 있던 차였다. ‘폭풍우’는 이미 지난 10월 국내에 번역 출판되어 있었는데, 난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12월 21일 오후 점심을 먹고 사무실 근처의 서점에서 ‘빛나-서울 하늘 아래’와 ‘유리流離’라는 소설 책 두 권을 샀다. ‘유리’는 소설가 박범신이 최근 쓴 소설인데, 어느 신문에 게재된 광고를 보고 샀다. 오로지 박범신의 오래된 내공을 믿고 산 것이었다. ‘은교’ 이후 그의 책을 읽은 것은 2013년 출간한 ‘소금’과 2014년의 ‘소소한 풍경’이 마지막이었다. 특히 ‘소금’은 소설책과 같은 파란 잉크색 양장본 표지의 신국판형 노트를 별책부록으로 함께 주었던 기억이 있다. 르 클레지오의 책을 사게 된 이유는 이미 앞에서 이야기했다.


21일과 22일은 계속되는 연말 송년회 약속으로 책을 펼쳐볼 기회가 도무지 없었다. 다음날이면 과음으로 치오르는 취기도 감당하기 힘들었고, 되살리기 싫은 기억으로 종일을 소침해 있기 일쑤였다. 그래도 또 저녁 시간이 되면 음주의 기회가 도사리고 있다가 슬며시 다가왔다. 12월 23일 토요일 오전 내내 전날의 숙취를 달래다 오후 3시 동국대 근처의 어느 호텔에서 열리는 선배 아들의 결혼식을 보러 갔다. 집을 나서며 지하철의 시간이 무료할 것 같아 한 권 들고 나간 책이 며칠 전 산 르 클레지오의 ‘빛나- 서울 하늘 아래’였다. 지하철을 타고 가며 100페이지쯤 읽었다. 구성이 특이하긴 했으나 읽는데 어렵지 않은 책이었다. 결혼식장에서 축의를 하곤 몇 몇 지인들을 만나 식사도 하지 않고 결혼식장을 함께 빠져나왔다. 그리고 어제의 취기가 몸에서 채 사라지기도 전 충무로의 ‘필동면옥’에서 다시 낮술이 시작됐다. 그것이 왕십리의 치킨집으로까지 이어지며 밤 9시를 넘겼고, 만취해 10시가 넘어 집으로 돌아왔다. 책을 잃어버리지 않고 집까지 동행해 온 것이 신기했다.


24일 일요일은 크리스마스 이브였으나 음주로 인한 내상을 치료하느라 거의 하루를 보냈다. 한 일이라곤 저녁때쯤 아내와 함께 이번 학기를 마치면 곧 이사를 올 아이들의 침대를 사러 간 것이 다였다. 하루종일 책은 손에 잡히지 않았고, 자다 깨다 TV를 보며 무의미하게 사라지는 시간들을 참담하게 흘려보낸 크리스마스 이브였다. 25일 크리스마스, 그저께 결혼식장을 가는 지하철에서 읽다만 ‘빛나-서울 하늘 아래’를 침대에 누워 다시 읽기 시작했다. 이 책은 소설 속에 또 다른 이야기가 전개되고, 또 어떨 때는 그 각각의 이야기들-조 씨와 비둘기, 고양이 키티, 보육원에 버려진 나오미, 어느 초보 살인자, 가수 나비, 두 마리의 용, 살로메를 위해 등 등. 물론 이야기들의 제목은 편의상 내가 지은 것이다.-이 서로 연결되어 있었다. 실제로 주인공 빛나도 “처음 그들 사이에 무슨 관계가 있는지 잘 몰랐다. 하지만 이제 모든 것은 훨씬 명확하게 보인다. 각각의 이야기는 서로 연결된다.”(190p)고 이야기하고 있다. 이 문장을 읽다가 나는 갑자기 인디언 연설문집 ‘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에 나오는 아메리카 인디언 나바호족의 노래가 생각났다.- “나는 땅 끝까지 가 보았네/물이 있는 곳 끝까지도 가 보았네/나는 하늘 끝까지 가 보았네/산 끝까지도 가 보았네/나와 연결되지 않은 것은/하나도 발견할 수 없었네.” -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아마 “연결되어 있다.”가 생각의 촉매가 되었을 것이었다. 소설 속의 빛나가 대역하고 있는 르 클레지오는 파나마에서 인디언들과 4년간이나 함께 산 적이 있었다. 그래서 책의 마지막 페이지가 다가오는데도 난 결말이 어떻게 날 지 예측을 할 수가 없었고, 책을 다 읽고 옮긴이의 글을 읽고 나서야 책이 무엇을 말하려고 했는지 알 수 있었다. 나는 책만으로는 ‘빛나’를 이해 할 수 없는 난독증 환자였다.


르 클레지오는 이 책의 집필을 위해 몇 년간 서울과 파리를 오가고, 서울의 곳곳을 누비며 구석구석을 살폈다고 했다. 하지만 내가 감히 생각하기에 그는 서울과 그곳을 사는 사람들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 그가 아는 신촌과 홍대앞과 강남과 잠실, 오류동, 여의도, 명동, 인사동, 종로, 북한산 등은 체화되지 못한 짧은 시간 속에서 느낀 피상이었고, 주인공 빛나와 프레데릭 박과 살로메, 그리고 이야기 속의 조 씨와 이 씨와 나오미와 한나가 살고 있는 곳은 서울이 아니라 어쩌면 파리였고, 프랑스의 어느 동네였다. 그의 뭉뚱그려진 묘사 속에서 서울은 더욱 뭉뚱그려져 개성을 잃었고, 일부가 전체로 확대되면서 한국 사회와 서울에 대한 통찰은 전체적으로 날카롭지 못하고 깊이가 부족하게 됐다. 뭐 그래도 클레지오는 프랑스 사람이니까 이해할 수 있다.


그는 책을 통해 이야기하고 싶었을 것이다. 남과 북, 분단의 아픔, 고립과 소외, 희생당하는 아이돌, 버려진 아이들, 대도시에서 벌어지는 스토커에 대한 공포 등의 문제들에 대해.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은 서울과 한국이 처한 시대와 사회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하나의 문제라고. 하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그의 시선은 2~30년 전의 서울에 머물러 있었고, 급하게 변한 시대를 따라잡지 못했다. 옮긴이가 “작가는 놀라운 통찰력으로 한국인의 정신과 감수성을 표현한다.”고 옮긴이의 글에서 그를 이야기 했으나, 나는 이 말을 믿지 않고 또 동의하지도 못한다. 나는 그의 소설에 충분히 흡입되지 못했다.


단지, 나는 바랐다. 한국과 서울에 대한 그의 남다른 애정과 관심이 다른 이유가 아닌 진정한 그 이유이기만을. 하지만 이 또한 내 생각일 뿐이다. 세계적인 대가大家가 서울과 한국을 주제로 소설을 써준것만 해도 고마울 뿐이다. 1940년생 르 클레지오, 사진을 통해 본 그의 얼굴은 진실해 보였으며, 깊고 많은 주름에선 그의 인생이 묻어났다. 그리고 그는 아직 살아있다.


#뱀다리

내 책꽂이에는 1990년 이후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들의 책이 적어도 한 권쯤은 있는데 르 클레지오의 책은 단 한 권도 없다. 그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던 시기(2008년) 내가 책을 사지 못할 무슨 사연이 있었거나, 아니면 르 클레지오가 내 스타일이 아니라고 그때 이미 판단했었는지도 모르겠다. ‘폭풍우’를 사서 읽어야 할지 고민이 들었다. ‘빛나-서울 하늘 아래’를 다 읽고 난 25일 늦은 밤부터 박범신의 ‘소금’을 다시 읽기 시작했다. 예전에 한 번 읽은 책이었지만 내용이 하나도 생각나지 않았다. 아마 조금이라도 생각이 났으면 다시 읽지 않았을 것이다. 책을 다 읽고 덮으니 새벽 3시가 되어 가고 있었다. 그때도 이런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아버지란 존재와 가족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하는 책, ‘소금’이었다. 이 시대의 젊은이들이 이 책을 한 번 읽어보길 진심으로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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