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한 일을 잘 알고 있었으므로, ‘울지도 못했다’

어느 백수의 오락가락 독서일기/울지도 못했다/김중식

by 김무균

‘울지도 못했다’(김중식. 문학과지성사. 2018. 7.11 刊), 장담컨대 이 시집이 베스트셀러가 될 리는 없다. 시인도 이 시집에서 나오는 인세印稅가 시인이 그토록 안타깝고 미안해하는 가족들의 생계에 큰 도움이 되지 않으리라는 것을 잘 알 것이다. 물론 기대 또한 하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문학적으로 잘 쓴 시는 대부분 통속적이지 않아 본래 대중의 사랑을 받기 힘든 법이다. 이 시집의 시들은 대부분 시적 완성도가 높지만(무려 25년 만에 내놓은 시집이다. 얼마나 갈고 다듬었겠는가.) 대중들의 보편적 공감을 이끌어내고 함께 호흡하기에는 내면의 사유가 치열하게 깊고, 지켜온 신념은 완고해서 흔들리지 않는다.


나는 김중식 시인을 잘 알지 못한다. 시인 또한 나를 잘 알지 못할 것이다. 내가 시인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본 것은 2004년 또는 2005년쯤이다. 혹시 2006년쯤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마 당시 시인은 한 신문사의 문학담당 기자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어느 날 광화문인가 종로인가 어디에서 일을 마친 저녁때쯤 같은 직장에서 일하던 선배가 만날 사람이 있다며 시인을 불러 자리를 함께 하게 됐다. 선배는 내게 “아주 훌륭한 시인이고, 내가 아주 좋아하는 후배다.”라는 말을 했던 것 같다. 그때 우리가 함께 밥을 먹고 차를 마셨는지, 아니면 차만 마셨는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둘 중의 하나는 한 것이 분명하다. 이후에도 가끔 선배가 시인을 이야기하곤 했지만 다시 만날 기회는 없었다. 서재 책꽂이에 ‘울지도 못했다’는 시인의 시집 두 권이 꽂혀 있다. 한 권에는 시인의 서명과 함께 ‘2018. 8’이라는 날짜가 적혀있다. 그런데 나는 그 연유를 기억하지 못한다.


시인의 이름을 다시 접하게 된 것은 며칠 전 한 신문의 문화면에서 시인의 책 소개 기사를 읽고 나서였다. “25년 만에 시집 ‘울지도 못했다’ 펴낸 김중식 시인, 사막을 건너 희망을 노래하다”라는 헤드라인을 보면서 그동안 잊고 있었던 시인의 이름이 떠올랐다. 10년도 더 전에 딱 한 번 만났을 뿐인 시인이 갑자기 떠오른 이유가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다. 일주일이 지난 어제 오후 서점을 방문했다. 오랜만에 간 서점은 서가書架의 디스플레이가 모두 바뀌어 있었다. 신간 매대에서 시인의 시집을 찾았으나 보이지 않아 컴퓨터를 통해 재고물량과 위치를 확인했다. 시집 서가에 딱 한 권의 재고가 있었다. 시인의 첫 시집 ‘황금빛 모서리’(문학과 지성사에서 1993년 간행한 이 시집은 15쇄 2만 부를 판매해 대중적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도 함께 찾아보았으나 이 시집은 찾을 수가 없었다.


지난 밤, 한밤중에 선 잠이 깨었다. 좀처럼 다시 잠이 오지 않았고, 잠을 청했으나 잠들지 못했다. 경험에 따르면 새벽까지 이럴 것이었다. 잠들기를 포기하고 퇴근하면서 침대 옆 협탁 위에 올려놓은 시인의 시집 ‘울지도 못했다’를 펼쳐 읽기 시작했다. 새벽 두 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시집은 ‘시인의 말’과 Ⅰ,Ⅱ,Ⅲ부 각 22편씩 총 66편의 시와 차창룡 시인의 시 해설로 이루어져 있었다. ‘시인의 말’ 속에서 “지상에 건국한 천국이 다 지옥이었다....천국은 하늘에, 지옥은 지하에, 삶과 사랑은 지상에”를 읽으면서 나는 시인의 절망과 체념을 예상하지 못했다. 그 속에서 꿈꾸는 사랑과 희망 또한 눈치 채지 못했다. 그러면서 Ⅰ부와 Ⅱ부 마흔 네 편의 시를 읽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시인은 긍정보다는 부정했고, 희망보다 절망했다. 그리고 시인은 그 속에서 체념했다. 시인이 살아온 시대가 차가운 얼음 알갱이처럼 시 속에 알알이 박혀 있었다. 나의 불편함은 거기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신의 이름으로
천사들이 봉헌한 세상
살균 후 밀폐한 진공眞空 비닐팩인데
구더기 떼가
뇌를 파먹고 있다
너를 구원할 수 있을까
내가 구원받을 수 있을까
술 먹고 모텔에서 자다가
누가 날 더듬는 거 같아 눈 뜨는 순간
나만큼 놀라
신음 소리 내며 침대 바깥으로 몸을 피하는
너는 누구냐
- 거울 속의 나
천사들이 자살테러하는
하늘의 뜻을 지상에 이루지 마소서
신이여, 우리가 거기로 갈 테니 이리 오지 마소서
주여, 못 본 듯하소서」<지옥에서보낸한철 全文>


이 시는 특이하게도 시인이 띄어쓰기 없이 거꾸로 쓴 ‘천국에서보낸한철-’ 시 전문이다. “신이여, 우리가 거기로 갈 테니 이리 오지 마소서” 시를 해설한 차창룡 시인의 말대로 천국은 하늘에나 어울리는 것이어서, 천국을 지상에 세우는 것은 부작용만 낳을 뿐이라는 것인가. 스스로 죄인임을 밝힌 시인은 시를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나는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조금은 눈치 챘으나 동의하지는 않았다. 나는 시인과 달리 현실을 낙관적으로 보고 그러려니 생각한다. 그래서 잠시 부정하고 분노하지만 결국은 현실로 돌아와 그 속에 녹아든다. 나의 신념은 ‘풀’과 같다.


「돌아보지 않으면 길이 아니다 지구 반 바퀴를 뜬눈으로 날아야 하는 철새는 긴 목을 비빈다, 얼마나 가야 할지를 따지는 것은 몸 밖으로 나간 정신처럼 얼마나 되돌아올 수 있을지를 가늠하는 것이다, 아무도 없는 산, 올라갈 땐 괜찮았는데 왼쪽 무릎뼈가 쑤셔 주저앉았다가 한쪽 발로 하산할 때, 나는 내가 지난 세월에 얼마나 날뛰었는지를 잘 알고 있었으므로 울지도 못했다.」<‘늦은 귀가’ 전문>


시집의 제목 ‘울지도 못했다’가 나오는 이 시, ‘늦은 귀가’를 읽으면서 나는 시인의 지극한 체념이 앞날을 계시하는 ‘요한묵시록’까지 다가간 것을 보았다.(“나는 네가 한 일을 잘 알고 있다.” 요한묵시록 3장 1절에 나오는 말이다.) 시인의 체념은 그 연원이 너무 깊어 치유할 수 없는 병이었다. 시인의 시가 여기까지였다면 아마, 시인은 과거의 부정과 절망, 체념에서 한 발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 것이었다. 하지만 시인은 Ⅲ부에서 삶과 사랑 그리고 기적을, 작지만 울림이 있는 목소리로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참담했던 시대도 변했고, 시인도 변했다. 그만큼 많은 시간이 흘렀다. 시인의 시 ‘다시 해바라기’와 ‘물결무늬 사막’에서 우리는 시인이 대하는 새로운 세계를 볼 수 있다.


해바라기

이 세상만 아니라면 어디라도 가자,
해서 오아시스에서 만난 해바라기
어디서 날아왔는지 모르겠으나
딱 한 송이로
백만 송이의 정원에 맞서는 존재감
사막 전체를 후광後光으로 지닌 꽃

앞발로 수맥을 짚어가는 낙타처럼
죄 없이 태어난 생명에 대한 무한 책임을 지는
성모聖母 같다
검은 망사 쓴 얼굴 속에 속울음이 있다
너는 살아 있으시라
살아있기 힘들면 다시 태어나시라

약속하기 어려우나
삶이 다 기적이므로
다시 만날 수 있다고
사막 끝까지 배웅하는 해바라기

물결무늬 사막

이 땅에 언제 파도가 왔다 갔는지
사막 전체가 물결이다
멀리서 바다였는데
다가갈수록 멀어지는 신기루
소금사막에 묻힌 미라는
만 년간 잘 잤네

이루지 못할 약속을 할 때
우리는 다가가면서 멀어진다
우는 이유를 잊을 때까지 우는 여자여
우리는 가끔씩 울어야 한다
우주가 좁도록 세포분열하는 아메바처럼
우리는 만난 적도 없는데 한가득 헤어져 있기 때문이다
내가 아는 건
가을 숲 불꽃놀이가 끝나더라도
우리가 할 일은 봄에 꽃을 피우는 것
가장 깊은 상처의 도약
가장 뜨거웠던 입의 맞춤
할례당한 사막 고원에 핀 양귀비처럼

언제 파도가 왔다 갔는지
사막에 바다 냄새가 난다
이루지 못할 약속을 할 때
우리는 다가가면서 멀어질지라도
봄에 할 일은
꽃을 피우는 것


시인의 목소리는 크지 않고, 강하지도 않다. 하지만 시인은 과거의 부정과 절망, 살아지는 삶 속에서의 체념을 빠져나와 “봄에 할 일은 꽃을 피우는 것이다”라며 긍정을 이야기하고, 희망과 사랑을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나는 불편했던 마음이 조금씩 가라앉고 편해지기 시작했다. 시집을 모두 읽고 시계를 보니 새벽 3시 반이 넘었다. 잠을 청했으나 한 번 떠나간 잠은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침대에 누워 ‘울지도 못한 시집’을 다시 한 번 생각했으나, 시 하나하나를 구체적으로 평하고 분별하기에는 나의 지식과 시에 대한 견해가 너무 짧고 얕았다. 시는 시일뿐이고, 시가 온전히 시인의 모든 것을 대변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시인과 시인의 시를 생각하다 새벽의 끝이 되어서야 나는 잠시 짧은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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