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백수의 오락가락 독서일기/어디서 살 것인가/유현준
“방의 수를 늘리면 학교가 되고, 거실을 넓히면 갤러리가 된다.” 정확한 인용을 위해 몇 번이나 책을 훑어보았는데도 결국은 이 문장을 찾지 못했다. ‘밑줄 긋는 남자’처럼 밑줄을 그어놓아야 했었는데 그때 나는 연필이 없었고, 그렇게 하지 못했다. 꼼꼼히 읽으면 찾을 수 있었겠지만 귀찮았고 정독으로 반복해서 읽기는 싫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히 읽었던 기억이 있는 문장, 이 책이 아닌 다른 책에서 읽었을 리가 전혀 없는 이 문장은 눈에 띄지 않았다. 나는 문장 찾기를 포기했다. 본문이 370여 페이지에 달하는 책이었다.
건축물과 도시에 대해 쓴 책을 이렇게 관심 있게 읽어보기는 처음이다. 이 책은 건축가 유현준 교수가 쓴 전작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에 이은 후속편이다. 나는 전작은 메모만 해두고 늦게 나온 이 책을 먼저 샀는데, 2018년 6월 12일 구매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읽지 않고 한 달이나 책상 위에 올려두고 있다가 미국 솔트레이크시티 출장지에서 모두 읽었다. 솔트레이크시티의 하늘은 파래서 늘 높았고, 땅은 넓었으며, 건축물들은 대부분 땅에 붙어 있어 대지 친화적이었다. 한낮의 기온은 서울보다 높았지만 밤이 되면 시원한 바람이 불었고, 습도가 없는 공기는 끈적거리지 않아 상쾌하기까지 했다. 오후 9시가 한참을 넘어서야 막 해가 지기 시작했다. 호텔 앞 테이블에 앉아 마트에서 사가지고 온 맥주를 함께 온 동료들과 마시면서 서울은 찜통이라는 아내의 카톡 문자를 읽었다. “서울은 찜통이라네.” 서울의 찜통을 이야기하며 우리는 한편으로 고소苦笑해 했다. 타인의(아내가 타인인가? 알면 맞아죽을 일이다.) 불행으로부터 오는 작은 행복, 이런저런 이야기로 시간을 보내다 맥주캔의 마지막 방울을 탈탈 털어 비우고 방으로 들어왔다. 이 시간 서울은 한낮일 터였다. 이곳의 밤은 밤이 아니어서 시차時差는 수면을 불러오지 않았다. 잠을 자지 않으면 다른 아무것도 할 일이 없는 시간, 짧은 밤은 오히려 길기만 했다. 가방에서 책을 꺼냈다. ‘어디서 살 것인가’, 아! 지금의 이 상황과 너무나 어울리는 책 제목이다. 함께 가져간 콜린 매컬로의 역작 ‘로마의 일인자 6부, 시월의 말 2권’은 솔트레이크시티의 시원한 바람을 다시 느낄 수 없었다. 로마는 멀리 있었고, 이곳은 카이사르가 본 적도 상상한 적도 없는 신대륙이었다. 그리고 Before Columbus(B.C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1492년 전, 사실 노르만인이나 바이킹들이 11세기에 발견했다는 설이 정설이고, 그 이전에도 이미 현명하고 뛰어난 원주민들이 살고 있었다. 구대륙 백인들의 시각은 이만큼 자기중심적이다.) 이전을 생각하기에 로마는 너무나 오래된 나라였다
책 읽기는 성공적이었다. 나는 책의 내용에 무척 만족했다. 그래서 저자의 전작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또한 한국에 돌아가 바로 구입해서 읽겠노라 다짐했다. 책은 ‘1장, 양계장에서 독수리는 나오지 않는다’부터 ‘12장, 공간의 발견’까지 총 12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 장章마다 저자의 건축은 물론이거니와 역사, 문화, 정치, 사회 및 인문학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 촘촘히 배어있다.(이러한 책을 저자는 “이 책의 5분의 1정도 분량을 지난 며칠간의 20시간 넘는 시간 동안 비행기 안에서 썼다.”고 맺는 글에서 쓰고 있다. 이 문장을 읽으면서 난 조금 약이 올랐다.) 이러한 저자의 노력과 지식 덕분에 나는 책을 읽으면서 건축물과 도시 뒤에 숨어 있는 의미가 무엇인지, 건축과 공간이 어떻게 권력과 상응하는지, 또 우리의 학교건축물과 획일화 된 아파트나 회사건물들이 우리의 삶을 얼마나 메마르게 하고 창의성을 제약하는지, 길과 다리는 어떻게 도시를 잇고, 사람을 잇는지, SNS와 새로운 유통문화가 건축과 도시를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우리나라에 왜 2층집이 늦게 건축되었는지, 보일러가 어떻게 우리의 건축형태를 바꾸었는지, 우리의 도심공원이 얼마나 사람 친화적이 아닌지(내가 15년 가까이 근무한 적이 있었던 사무실 부근의 ‘도산공원’을 예로 들 땐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인류 최초의 집 동굴과 지금의 집은 어떻게 기능적으로 같은지를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다. 물론 저자의 분석이 모두 맞는다거나, 모든 독자가 저자의 분석에 동의할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 나는 책을 읽으면서 연신 “아, 그렇구나. 그래서였구나, 그러면 이렇게 되겠네.”라며 고개를 끄떡거렸고, 저자의 생각에 적극적으로 동의했다.
인류 최초의 집 동굴과 현대인의 거주공간을 이야기한 저자의 글을 잠깐 인용해 본다. “우리가 볼 수 있는 인류 최초의 집은 동굴이다....(동굴은) 우선 비를 피할 수 있는 공간으로, 주변 동물들의 공격으로부터 보호해 줄 동굴 벽이 둘러쳐져 있다. 입구는 하나만 있어서 보안상 유리하다. 불을 가운데 두어 보온하였고 음식을 익혀 먹었다. 사람들은 바람에 흔들리는 불을 쳐다보며 쉴 수 있었고, 벽화를 그려서 주거 공간을 장식했다. 대략적으로 살펴본 동굴 주거공간의 일곱 가지 특징이 이후 농경사회에도, 산업사회에도, 지금의 정보화 사회에도 우리의 주거공간에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다. 인류는 동굴에서 나온 후 집을 지어야 했다. 우선 비를 피하기 위해 나뭇가지와 나뭇잎으로 지붕을 만들었고, 주변의 공격을 피할 수 있게 벽을 둘러 집을 지었다. 보안을 더 강화하기 위해 담장을 만들어 이중으로 방어벽을 세웠다. 동굴 입구가 하나이듯이 집의 정문과 현관문도 하나씩이다 보온을 위한 모닥불은 벽난로가 되고 훗날 보일러가 되었다. 모닥불은 한편으로는 가스불이 되어 음식을 하는데 쓰이고, 또 다르게 진화해서 TV 속의 영상이 되었다. 과거 수렵 채집 시대의 사냥꾼이 목숨을 건 사냥을 마치고 돌아와 멍 때리고 춤추는 모닥불을 보며 마음의 평정을 찾았던 것처럼 현대인은 직장에서 돌아와 멍 때리고 TV를 보며 쉰다. 고대 동굴 주거의 모닥불은 TV, 가스레인지, 보일러, 형광등으로 분화되고 진화되었다. 과거에 동굴벽화를 그렸듯이 오늘날은 벽지를 고르고 사진 액자와 그림을 건다. 2만 년 전 인간의 주거와 현대인의 주거는 근본적으로 같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는 유전적으로 바뀐 것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8장 ‘위기와 발명이 만든 도시’ 239~240p)
나는 20년을 농촌에서 살았고, 30년을 넘게 인구로나 면적으로나 국내 최대 도시이고, 세계적으로 손가락을 꼽는 거대도시 서울에서 살았다. 하지만 살면서 주거와 건축, 도시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적은 없었다. 이 책은 그간 내 관심사였던 문학, 역사, 철학을 건축과 도시의 인문학으로 연계해 제한적이었던 나의 안계眼界를 넓히는 계기가 됐다. 저자의 노고를 시원한 호텔 방에서 공으로 먹은 것에 대해 감사해 한다. 한편으로는 1만 6천 원이라는 책값에 조금쯤은 반영되어 있겠다싶어 아주 날로 먹은 것은 아니라는 생각도 했다. 어쨌든 저자에게 다시 한 번 감사한다.
10년도 더 전에 강원도 영월에 작은 땅을 마련했다. 잘 깎고 다지면 작은 집을 지을 수 있는 크기이다.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한 케이블 방송의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프로그램을 보다가 은퇴 후 저곳에 집을 지어 자연과 함께 할 궁리를 했다. 그러면서 책의 저자에게 집 설계를 한번 의뢰해볼까 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저자의 전문성과 명성이 설계비와 비례할 것이라는 생각이 먼저 들어 지레 포기했다. 얼마전 나는 내가 지을 집의 컨셉트로 명창정궤明窓淨机, 고졸古拙, 검이불루儉而不陋를 심사숙고 끝에 정했다. 화이불치華而不侈는 내 역량이 아니어서 진즉에 포기했다. 혹시 저자가 이 글을 우연히 보고 나의 기대에 적덕積德하는 요행을 바라기도 하는데, 내가 프랭크 로이드의 ‘낙수장’이나 르 코르뷔지에의 ‘빌라 사보이’를 원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어디서 살 것인가. 나는 그곳에서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