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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삐꼬 Apr 16. 2023

고라니와의 조우

잘 지내고 있길 바라

고라니는 전 세계적으로 개체수의 감소로 보호종이라고 해요. 하지만 한국에서는 전체 고라니 중 90%가 서식하고 있는 데다가 농작물을 망쳐 놓는 주범이기 때문에 왠지 좀 천덕꾸러기 같은 취급을 받고 있어요. 특유의 울음소리도 한 몫하는 걸까요?  


그런 고라니를 제가... 실제로 보았습니다.

사진으로만 보던, 얘기로만 듣던 고라니를 실물 영접하게 된 거예요. 하지만 이 조우는 둘 모두에게 좋지는 았았답니다. 세상 살면서 뉴스에서만 봤지, 제가 어두운 국도길에서 고라니와 마주치게 될 줄은 누가 알았겠어요?


곡성 플리마켓

날이 너무 좋다 못해 하늘이 시리게 푸른 날, 저희 가족은 곡성에 나들이를 나갔습니다. 플리 마켓에 들러 구경도 하고, 기차 마을에서 기차도 탔더랬죠.

곡성 기차마을

신나게 놀고 들어오는 길, 어두운 밤에 터널을 막 지나고 나서에요. 농담 한 마디에 웃으오른쪽 커브길로 들어선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뭔가 휙! 하고 차 앞으로 뛰어 들어오는 물체에 브레이크를 세게 밟았습니다.


"아악!!" 끼익!

두당탕탕!


한 번도 뭔가 살아있는 것을 차로 치어보진 않았지만, 직감적으로 알았습니다. 뭔가 생명체를 들이박았다는 것을요. 찰나의 순간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어요. 피가 낭자할 것 같은 생각에 앞이 너무 무섭고 겁이 났습니다.


사고 순간의 시야에는 암컷 사자가 지나간 것 같았지만, 백미러로 보인 건 고라니였습니다.


우측 범퍼와 라이트를 들이 박은 고라니는 절뚝거리며 반대편 나무 사이로 사라져 버렸어요.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검색을 해보니 로드킬의 경우, 지역번호+120으로 신고하라고 되어있더라고요. 로드킬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다친 고라니에 대한 미안함 때문이었을까요? 왠지 신고가 필요할 것 같아 전화를 했습니다. 하지만 도로에 죽어있는 동물 때문에 통행에 방해가 되어 추가 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없는 경우에는 신고를 해도 아무런 조치가 없다고 하더라고요.


집에 도착해 보험회사에 신고를 하고, 블랙박스를 확인해 보았습니다. 여지없이 고라니였어요. (블랙박스를 증거자료로 내면 본인 과실 없는 자차처리로 할증은 안 붙는다고 합니다.)

블랙박스에 찍힌 고라니

너무 마음이 좋지 않더라고요. 사고라 하더라도 살아있는 동물에게 해를 끼쳤다는 생각에 죄책감도 들고, 아팠을 고라니에게 미안한 마음도 들도, 5초만 빠르게 또는 느리게 지나갔더라도 사고가 나지 않았을 거라는 후회도 들고, 아작이 나버린 범퍼와 날가 버린 우측 등박스를 보니 수리비가 많이 나오면 어쩌나 걱정도 되고, 뒤에 앉아 있었던 아이들이 다치지 않아서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고...


털... OMG

일어나지 않았다면 더 좋았겠지만, 이미 일어난 버린 일이니 어쩌겠어요.


사고가 있고 나서 보니 읍내로 가는 길에 로드킬을 당한 동물들을 자주 목격하게 되더라고요. 특히 시골 국도라서 그런지 고양이나 새가 많이 보였습니다. 저도 새들이 낮게 날아 차 앞으로 지나갈 때 놀란 적이 있었거든요.  


고양이나 고라니 같은 동물들이 도로로 진입하지 못하게 하는 방지 울타리나 생태 이동 통로를 좀 더 확대하면 사고를 줄일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어요. 어찌 보면 동물들이 다녔던 길을 인간의 편의를 위해 뺏았은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생각이 참 많아지는 날이었습니다.


여하튼 고라니야... 타박상 정도였길 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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