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지지 않은 세상에서 내가 달라졌다는 작은 증거
보관소의 문이 닫히는 순간, 나는 조용히 현실 앞에 섰다.
차가운 바람이 얼굴을 스쳤고, 거리엔 사람들이 아무 일도 없었던 듯 바삐 지나가고 있었다. 모든 것이 보관소에 들어가기 전과 같았다.
그러나 나는 분명 달라져 있었다.
익숙한 거리에서 발을 내딛는 순간조차 이전과는 달랐다. 주변의 소음이 선명했고, 지나가는 사람들의 무심한 표정 하나하나가 살아 있었다. 나는 그 모든 것을 다시 한 번 새롭게 느끼기 시작했다.
“다시 시작이구나.”
나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그 말에는 기대와 두려움이 섞여 있었다.
집에 들어서는 순간, 나는 현실이 고스란히 담긴 공간을 마주했다. 장난감들이 어지럽게 흩어진 거실, 밀린 서류가 놓인 테이블, 끝없이 울리는 휴대폰 알림까지. 익숙하지만 여전히 부담스러운 일상 속으로 나는 다시 돌아와 있었다.
그리고 불안이 슬며시 내 곁을 찾아왔다. 그동안 무감각 뒤에 숨어 있던 그 불안. 나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그것을 바라보았다.
“왔구나.”
불안을 향해 나는 작은 미소를 지었다. 이전 같으면 외면하고 밀어냈을 테지만, 지금은 달랐다. 그것은 내 삶의 일부였고, 이제는 외면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알았다.
식탁 앞에 앉았다. 마주한 차가운 커피잔에 손을 댔다. 텅 빈 집 안의 고요함이 새삼 묵직하게 느껴졌다.
“나는 지금 어떤 마음일까?”
나는 내 안을 조심스럽게 바라보았다. 그 순간 내 안에서 익숙한 온기가 느껴졌다.
작고 희미한 빛 하나, 등불이었다.
보관소에서 나올 때 품었던, 언제든 다시 켜질 수 있는 빛이었다.
하지만 그 등불은 늘 켜져 있지 않았다. 오직 내가 내 감정을 인정하고, 나 자신을 다시 알아차릴 때에만 비로소 조용히 켜졌다.
문득 현관문이 열렸다. 아이가 투정을 부리며 들어왔다.
“엄마, 오늘도 늦었잖아!”
이전 같았으면 짜증이 나거나 무거웠을 아이의 투정이 오늘은 다르게 들렸다. 아이의 목소리 뒤에 숨어있는 외로움과 서운함이 느껴졌다.
나는 아이의 눈을 바라보며 부드럽게 말했다.
“미안해, 기다리게 해서 속상했지?”
아이는 잠시 놀란 듯 멈춰 서서 나를 빤히 바라보다가 천천히 내게 다가와 품에 안겼다.
“괜찮아, 엄마.”
아주 작은 그 한마디가 내 가슴 깊이 들어왔다. 달라진 건 세상이 아니라 나였다. 여전히 현실은 그대로였지만, 나는 이전보다 더 선명하게 그것을 볼 수 있었다.
밤이 깊어지자 다시 불안이 찾아왔다. 이번엔 외면하지 않고 함께 앉았다. 그것을 없애려 애쓰는 대신, 그대로 받아들이고 내 곁에 두었다. 그리고 책상 앞에 앉아 조용히 글을 쓰기 시작했다.
이 글은 이제 나만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이제는 나의 감정과 변화의 기록이 어쩌면 다른 누군가에게 작은 등불이 될 수 있기를 바라며, 나는 담담히 글을 적었다.
오늘의 마지막 문장을 적으며 나는 작게 미소 지었다.
“달라진 세상은 없지만, 내가 달라졌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삶은 충분히 다르게 느껴진다.”
나는 그렇게 다시 조용히 일상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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