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화 | 선우와의 마지막 대화

진짜 준비는 조용히 마음을 내려놓는 순간에 찾아온다.

by 부엄쓰c



보관소에서의 마지막 밤이었다. 나는 선우와 함께 조용히 창가에 앉아 있었다. 창밖에는 어느새 부드러운 밤하늘이 펼쳐져 있었고, 간간이 불어오는 바람이 내 마음을 스치듯 지나갔다.


나는 선우를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내일이면 돌아가야 하는데… 솔직히 조금 무서워요. 아직도 불안하고, 마음이 완벽히 준비되지 않은 것 같아서요.”


선우는 내 말을 조용히 듣고 있었다. 그의 눈빛은 따뜻했지만, 섣불리 나를 위로하거나 달래지 않았다.


잠시의 침묵 후, 선우가 나지막이 말했다.


“하연 씨, 처음 이곳에 오셨을 때를 기억하시나요?”


나는 처음 이곳에 도착했을 때를 떠올렸다. 그때 나는 완벽히 무감각했고,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무감각과 공허로 인해 이곳을 찾았던 것이었다.


“네. 그때는 아무런 감정도 없었어요. 모든 것이 공허했고, 무감각했죠.”


선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은 어떠세요?”


나는 내 마음을 가만히 살펴보았다. 불안과 두려움이 분명히 있었다. 그러나 나는 이제 그 감정들을 외면하지 않고 인정하고 있었다.


“불안하고 두려워요. 하지만 이상하게도… 오히려 그게 조금은 괜찮게 느껴져요.”


선우는 부드럽게 미소를 지었다.


“그게 바로 변화입니다. 중요한 것은 불안과 두려움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그런 감정이 있음을 알고 받아들이는 것이니까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선우 씨, 그래도 여전히 궁금해요. 내가 정말 준비가 되었는지.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하는데… 이게 진짜 준비된 상태인가요?”


선우는 조용히 말했다.


“하연 씨, 준비란 완벽히 정리된 상태가 아니에요. 오히려 자신이 불완전하다는 사실을 온전히 인정하고, 그 상태로 살아갈 용기를 갖는 순간이 진짜 준비입니다.”


나는 그의 말을 가슴 깊이 새겼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말이, 지금은 조금 더 선명하게 이해되었다.


“불안해도 괜찮고, 흔들려도 괜찮다는 거죠?”


선우가 따뜻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맞아요. 불안은 여전히 함께할 거예요. 하지만 이제 그 불안과 함께 살아갈 수 있다는 걸, 하연 씨는 이미 알고 계십니다.”


나는 그 말에 조용히 숨을 내쉬었다. 지금 내 마음은 고요하지 않았지만, 더 이상 그 감정들이 나를 흔들거나 압도하지 않았다. 그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달라져 있었다.


“이제 돌아가서도 이렇게 살아갈 수 있을까요?”


선우는 조용히 미소 지었다.


“돌아가면, 분명 쉽지 않은 순간들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하연 씨 안에는 이미 그것을 견딜 수 있는 힘이 자라고 있어요. 그 힘을 믿으세요.”


나는 그 말을 마음속에 깊이 새겼다. 내 마음속의 불안과 두려움이 아직도 내 곁에 있었지만, 나는 더 이상 그것들을 없애려고 하지 않았다. 그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함께 살아갈 준비가 된 것이다.



선우는 마지막으로 덧붙였다.


“오늘 밤은 그렇게 조용히 마음을 내려놓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나는 그의 말에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나는 더 이상 내 감정을 외면하지 않았다. 그저 불안과 두려움과 함께 걸어갈 용기를 조용히, 천천히 품고 있었다.


마지막 밤이 깊어졌다. 나는 그 불안과 함께 조용히 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게 바로 내가 기다리던 준비라는 걸 비로소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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