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화 | 보관소가 평온해지다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때 비로소 고요해진다.

by 부엄쓰c



보관소의 문을 열고 어린 하연과 함께 다시 휴게 공간으로 들어섰을 때, 이전과는 전혀 다른 공기가 우리를 맞았다. 공간은 조용했고, 더 이상 위태롭게 흔들리지 않았다. 무엇보다 그곳은 더 이상 어색하거나 무겁지 않았다.


마치 긴 긴장감이 풀린 후의 편안한 숨소리처럼, 공간 전체에 잔잔한 온기가 서려 있었다.


소파에 앉아 있던 재현과 소은이 나를 보고는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소은이 조용히 물었다.


“다녀오셨어요?”


나는 잠시 숨을 고른 뒤 고개를 끄덕였다.


“네, 꽤 긴 여정이었어요.”


재현이 가볍게 웃으며 컵을 내려놓았다.


“이상하지 않아? 우리가 이렇게 조용히 앉아 있다는 게.”


나는 재현을 보며 미소 지었다. 그는 여전히 지쳐 보였지만, 표정은 이전처럼 무겁지 않았다.


“그러게요. 언제부터 이렇게 평온해진 걸까요?”


서로를 바라보며 우리는 가만히 미소만 지었다. 마치 오랫동안 묻어두었던 감정들이 비로소 제자리를 찾은 것 같았다. 누군가가 애써 감정을 숨기거나, 억지로 표현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보관소는 그 자체로 자연스러웠다.


나는 구석에 서 있는 선우를 바라보았다. 그는 변함없이 조용하고 차분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맞았다.


“잘 다녀오셨군요.”


나는 그의 눈을 마주하며 진지하게 물었다.


“선우 씨, 여기…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어요. 공간도, 사람들도요. 이유가 뭘까요?”


선우는 창밖을 바라보며 잠시 생각에 잠긴 듯했다. 이윽고 그의 목소리가 부드럽게 이어졌다.


“감정은 우리가 억누르거나 거부하려 할 때 더 거칠어지고 혼란스러워집니다. 하지만 그것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기 시작하면, 비로소 서로 싸울 필요가 없어지지요.”


나는 그 말을 가만히 곱씹었다. 지금까지의 내 삶에서 가장 힘들었던 이유가 바로 감정을 억누르고, 끊임없이 무시하려 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있는 그대로 두는 것… 그것이 평온의 시작이었군요.”


선우는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맞습니다. 이곳이 존재하는 이유는 감정을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니까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말은 가슴 깊이 닿았다.


어린 하연과의 화해 이후, 내 안의 작은 공간도 이제 더 이상 어둡거나 숨 막히지 않았다. 내 마음속의 미로는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이제 길을 잃어도 두렵지 않았다.


이제 나는 알았다. 마음이란 결코 완벽히 정리되는 것이 아니라, 감정이 자연스럽게 흐를 수 있도록 공간을 만들어주는 것이라는 것을.


나는 더 이상 억누르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내 감정들과 함께 머무를 준비가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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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관소는 평온했다. 그리고 나 역시, 비로소 그 평온 속으로 천천히 스며들어 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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