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어떻게’를, 엄마는 ‘왜’를 묻다
바르셀로나의 여운을 뒤로하고 로마로 들어왔다. 판테온 앞 숙소에 짐을 풀고, 로마 셋째 날에 예약해 둔 콜로세움과 포로 로마노 투어에 나섰다. 콜로세움에 도착해 외벽을 돌았다. 햇빛이 오래된 돌을 긁고 지나가며 금을 더 깊게 새겼다. 점심을 간단히 마친 뒤, 가이드와 팀을 만나 안으로 들어섰다. 나는 외부 사진을 몇 장 더 찍고, 카메라를 내려놓았다.
오래전에 혼자 로마에 왔던 날이 떠올랐다. 그때의 나는 겉모습만 보고 지나쳤다. 이번에는 안으로 들어갔다. 부서진 아치와 드러난 결, 층층의 관중석 경사. 돌과 공기가 시간의 결을 드러내는 자리였다. 눈을 감으면 오래된 함성이 돌틈을 타고 메아리쳤다.
아이에게 나중에 물어보니 이렇게 말했다.
“엄청 웅장해서 깜짝 놀랐어. 가이드가 설명해 준 건축 방식이랑 그 안에 담긴 이야기들이 너무 신기했어.”
우리는 그 자리에서 관중석의 경사는 사람들이 잘 보도록 일부러 준 기울기라는 설명을 들었고, 아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관중석의 흐름을 한참 더 눈으로 따라갔다. 사진보다 오래, 가만히. 왜 지어졌는지와 어떻게 지어졌는지. 두 갈래의 호기심이 나란히 자라났다.
그제야 내 질문도 또렷해졌다.
“이 경기가, 왜 이렇게 오래 이어질 수 있었을까.”
단순한 오락만으로는 설명되지 않았다. 피와 절규 앞에서도 눈을 떼지 못하던 마음, 조금 더 강한 장면을, 조금 더 큰 자극을 원하던 갈망. 그건 결국 중독이었고, 끝없는 욕망이었다.
오늘의 우리는 칼을 들고 싸우지 않는다. 대신,
끝없이 솟구치는 영상,
불붙은 댓글의 칼날,
과시로 반짝이는 일상의 전시
앞에서 또다시 스크롤을 멈추지 못한다. 한 번 더. 조금 더. 더 강하게.
콜로세움은 폐허가 되었지만, 관중석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 관중석은, 아마도 우리 안으로 옮겨졌다.
아이의 눈에는 구조와 이야기가 커지는 순간이 있었고, 나의 눈에는 그 구조 위로 사람의 마음이 포개져 보였다. 같은 공간에 서 있어도, 아이는 “어떻게 지었을까”를, 나는 “왜 그렇게까지 보려 했을까”를 묻는다. 서로 다른 질문이 나란히 서 있을 때, 여행은 비로소 배움이 된다.
돌계단을 내려오며 나는 아이의 손을 한 번 더 꼭 잡았다. 역사는 잔혹함으로도 이어졌지만, 우리는 오늘의 선택으로 하루를 이어갈 수 있다고. 욕망을 거울로 삼고, 중독을 직시하는 용기로—결국 나답게 서 보겠다고.
오늘의 로마에서 나는 다시 묻는다.
“나는 무엇을 바라보며, 무엇에 열광하고, 무엇을 더 원하고 있는가.”
그리고 조용히 답한다.
관중이 아니라, 내 삶의 주인석에 앉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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