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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 남긴 바르셀로나

여행 후 3주, 일상에서 다시 발견한 아이의 마음

by 부엄쓰c


여행에서 돌아온 지 벌써 3주, 일상은 빠르게 흘러가지만 그때의 기억은 여전히 생생하다. 그동안 독자들과 나눌 깊은 내용이 없는 것 같기도 하고, 일상 속에서 교육이며 업무며 바쁘게 지내느라 우리의 여행 이야기는 어느 지점에 멈춰 있었다. 그럼에도 기다려준 독자들에게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오늘은 거창한 이야기를 하기보다는 언제나 나답게 편안하게 남은 이야기를 나누려고 한다. 글을 쓰기 시작한 지 벌써 반년이 넘었고, 어느새 1000명이 넘는 분들이 블로그와 브런치, SNS를 통해 함께하고 있다. 몇일 전 용기 내어 나의 힘든 순간을 글로 썼는데, 그런 순간에 문득 다가와 위로의 말을 전해주는 분들 덕분에 내가 쓰는 글이 헛되지 않다는 것을 느끼고 또 용기와 위로를 얻고 있다.


지금 나는 아들과 다시 일상을 살아내고 있다. 겉보기에는 여행 이전과 별 차이 없는 평범한 날들이지만, 가끔 힘이 들 때면 바르셀로나와 로마에서의 행복했던 순간들을 떠올리며 "우리 사실 잘할 수 있는데"라며 서로를 격려한다. 물론 현실이 늘 쉬운 것은 아니다. 컨디션이 안 좋은 날, 아이가 숙제를 미루거나 느릿느릿 시간을 끌 때는 화가 불쑥 솟기도 하고, 잠이 부족해 무기력하게 잠들어 버릴 때도 있다.


오늘은 여행 중 아들이 쓴 두 편의 기행문 중 한 편이 떠오른다. 첫 번째는 아이가 처음 경험한 장거리 비행에 관한 이야기다. 나는 허리 통증 때문에 좌석을 이코노미 스마티움으로 업그레이드했고, 일반석보다 4인치 넓은 레그룸의 차이를 작은 아이가 느낄 수 있을지 걱정했다. 그런데 아이는 기행문에 "너무 좋았고, 엄마에게 정말 고맙다"라고 적었고, 비행기 내에서의 경험을 마치 여행처럼 자세히 기록해 놓았다. 내가 누워 있을 때 자신의 허벅지 위에 내 다리를 올려놓고도 전혀 힘든 기색 없이 영화와 게임, 기내식을 즐기며 행복해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두 번째 기행문은 아이가 가장 기다렸던 가우디 투어를 한 날이었다. 아들은 놀라움과 설렘으로 가득 찬 문장들을 써 내려갔다. 로마에서도 이런 기록들을 남겼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도 잠시 느꼈다.


글뿐 아니라 아이는 여행 내내 동영상도 열정적으로 찍었다. 특히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은 아이의 최대 관심사였기에 두 타워를 각각 다른 날에 올라 꼼꼼히 촬영했다. 유튜버라도 된 듯 열정적으로 영상을 찍던 아이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바르셀로나의 해양 박물관에서도 아이는 모든 설명을 사진과 영상으로 기록하고 번역기를 사용해 내용을 읽었다. 다리가 아파 바닥에 앉아 기다리던 나는 아이의 열정적인 모습이 자랑스러웠다.


여행 중 어느 날 아이에게 물었다.


"왜 이렇게 말을 잘 듣는 거야?"


아이는 망설임 없이 답했다. "기분이 좋아서요. 엄마랑 계속 같이 있고, 여기 와서 너무 좋아요."


"평소 엄마는 어때?"


"밤마다 빨리 자라고 하잖아요. 근데 여기서는 계속 엄마랑 같이 있고 엄마가 나를 사랑하는 걸 느낄 수 있어서 너무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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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순간 사실 놀랐다. 아이가 나와 함께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어 했고, 내가 자신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더 느끼고 싶어 했다는 것을 잠시 잊고 있었다는 생각에 미안함이 들었다. 하지만 동시에 그렇게 솔직히 말해주는 아이가 너무 고마웠다. 지긋이 아이를 바라보며 나는 "그랬구나" 하고 조용히 말해주었다.


그리고 이어서 나도 나의 마음을 전했다.

"엄마도 너랑 더 놀고 싶어. 여행 끝나고 엄마가 일상에서 부탁하고 싶은 것 한 가지만 꼽으라면, 최소한 밤 11시 전에는 자는 거야. 그래야 엄마도 쉴 수 있고 너도 건강할 수 있어. 우리 같이 노력하자, 알겠지?"


여행은 끝났지만, 우리의 기억 속에서 여전히 생생히 살아 숨 쉬고 있다. 힘들 때마다 그때의 순간을 꺼내 보며, 우리는 조금씩 더 괜찮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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