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속도를 찾는 연습 (재훈의 이야기 3)

아주 작은 변화의 시작

by 부엄쓰c

※ 이 이야기는 현실을 바탕으로 한 감성 소설입니다.
Ludovico Einaudi의 Nuvole Bianche 를 배경음악으로 틀어놓고, 천천히 감정을 따라가며 읽어보시기를 추천합니다.



인사팀에서 있었던 그 일 이후로 모든 것이 한순간에 달라지진 않았다. 나는 여전히 아침 아홉 시에 출근해 밤늦게까지 일을 했다. 업무 속도나 긴장감도 변하지 않았다. 단지 달라진 건, 후배들에게 말을 할 때 조금 더 신중해졌다는 것뿐이었다.


솔직히 불편했다. 익숙했던 방식대로 밀어붙이지 못하니 불안감은 오히려 더 커졌다. 회의를 할 때도, 업무를 지시할 때도 습관처럼 튀어나오던 말들을 자꾸 삼켰다. '이렇게 해도 성과가 나올까?' 내 안의 의문이 늘어갈수록 답답함도 짙어졌다.


그렇다고 당장 생활을 바꿀 용기는 없었다. 매일 저녁 사무실이 텅 비고 나서야 퇴근 준비를 했다. 그나마 달라진 것은 가끔의 회식 자리에서 조금 더 일찍 일어나 집으로 향하는 정도였다.


그날도 그랬다. 부서 회식이 있었고 평소라면 마지막까지 남아 술잔을 채웠겠지만, 몇 잔의 술에 오히려 마음이 복잡해졌다. 눌러두었던 감정들이 술기운을 타고 올라오는 게 버거워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시계를 보니 겨우 저녁 8시였다. 등 뒤로 들려오는 동료들의 웃음소리를 남겨둔 채 나는 서둘러 집으로 향했다.


집에 도착하자 현관문 소리에 아이들이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봤다.


"아빠가 벌써 왔어?"


아이들의 말에 순간 마음이 덜컥했다. '벌써'라는 말이 낯설었다. 언제부터인가 아이들의 잠든 얼굴만 보는 것이 익숙해졌기 때문이었다.


부엌에서 나온 아내도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오늘은 일찍 왔네?"


나는 가벼운 변명처럼 웃으며 대답했다.


"술을 좀 피하고 싶어서."


잠시 머뭇거리는 아이들이 식탁 위에 펼쳐진 숙제를 내밀었다. 어색했다. 아이들의 숙제를 봐준 적이 언제였는지 기억조차 흐릿했다. 하지만 천천히 아이들 곁에 앉아 문제를 함께 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문제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아이들과 나란히 앉아 이야기를 나누며 천천히 문제를 풀다 보니, 조금씩 마음이 풀어졌다. 아이들의 표정도 점점 밝아졌다. 이렇게 가족과 마주 앉아 시간을 보내는 게 언제였는지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오랜만이었다. 눌러뒀던 마음 한편이 따뜻하게 녹아드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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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숙제를 끝내고 잠자리에 든 후, 나는 거실 소파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도시는 밝았고 사람들은 저마다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그 속도에서 벗어나면 안 된다고 스스로를 몰아붙이며 살아왔는데, 오늘만큼은 조금 달랐다.


완벽히 편안하지는 않았다. 마음 한구석엔 여전히 내일에 대한 걱정이 남아 있었다. 내일이 되면 다시 익숙한 긴장과 속도 속으로 돌아갈 테니까. 하지만 오늘처럼 가족과 함께 보낸 작은 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기 시작했다.


갑자기 모든 것이 달라지진 않을 것이다. 나는 여전히 서툴고, 쉬는 법을 잘 모른다. 하지만 오늘처럼 아주 작은 변화를 반복하다 보면, 언젠가는 진짜 내 마음의 속도를 찾게 되지 않을까.


나는 깊게 숨을 내쉬며 소파에 등을 기댔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 그 작은 진실을 이제야 조금씩 알아가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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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는 이해를 돕기 위한 예시이며, 실제 인물과는 무관합니다.)

이 소설은 밀리로드에서도 연재 중입니다. 따뜻한 응원과 밀어주기를 부탁드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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