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의 존재가 위로가 되는 시간
※ 이 이야기는 현실을 바탕으로 한 감성 소설입니다.
Max Richter의 'On the Nature of Daylight'를 배경음악으로 틀어놓고 천천히 감정을 따라가며 읽어보시기를 추천합니다.
늦은 오후의 공원은 햇살을 머금고 조용히 반짝이고 있었다. 나는 따뜻한 커피가 담긴 종이컵을 가만히 손에 쥔 채 벤치에 앉아 주희를 기다리고 있었다. 민호는 이미 수빈과 도서관에서 숙제를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최근 두 아이가 함께 공부를 한다는 게 조금은 낯설고 신기했다. 우리 아이들이 생각보다 빠르게 서로의 경계를 허물어가는 모습이 부럽기도 했다.
멀리서 주희가 천천히 다가왔다. 그녀의 얼굴에는 늘 그렇듯 가벼운 미소가 있었지만, 오늘따라 어딘가 조금 더 부드러워진 느낌이었다. 그녀는 내 옆자리에 앉으며 조용히 한숨을 쉬었다.
“아이들이 먼저 친해지니까, 우리까지 조금 더 가까워진 기분이다.”
주희가 먼저 입을 열었다. 나는 작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 아이들이 우리를 먼저 이끄는 것 같아.”
짧은 침묵이 편안하게 느껴질 무렵, 공원 입구 쪽에서 낯익은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재훈이었다. 그는 아마도 가벼운 산책이라도 하려는 듯 천천히 걸어오다 우리를 발견하고는 조금 놀란 듯 멈춰 섰다.
“재훈 씨?”
내가 먼저 인사를 건네자 그는 어색하게 미소를 지으며 가까이 다가왔다.
“여기서 뵐 줄은 몰랐네요. 산책 겸 잠깐 들렀습니다만… 방해한 건 아닌지 모르겠어요.”
그의 말투는 조심스러웠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주희를 간단히 소개했다.
“친구 주희예요. 여기 옆에 앉으세요. 같이 있어도 괜찮죠?”
주희도 밝게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세 사람 사이에 잠시 어색함이 감돌았지만, 그것은 금방 사라졌다.
재훈은 말을 꺼내듯 입을 열었다.
“요즘은 그냥 좀 더 쉬어가려고 노력 중이에요. 윤슬 씨 덕분에 그런 여유를 찾기 시작한 것 같아요.”
내가 조금 쑥스러워 웃자, 주희가 부드럽게 말을 이어갔다.
“맞아요. 저도 윤슬 덕분에 조금씩 내려놓는 법을 배우고 있어요. 아이들 덕분에 더 그런 것 같고요.”
우리는 서로에게 자연스레 공감했고, 각자 자신이 겪었던 작은 변화들을 털어놓았다.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어색함은 완전히 사라졌다. 서로가 비슷한 고민과 변화 속에서 살아가고 있었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시간이 흐르고 해가 기울어 갈 즈음, 민호와 수빈이 저 멀리서 밝게 웃으며 뛰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두 아이는 우리를 보고 손을 흔들며 다가왔다.
“엄마! 여기 계셨네요!”
민호가 웃으며 말했고, 수빈은 옆에서 환하게 미소 지었다. 아이들이 다가와 우리 앞에 앉자, 공원의 분위기는 한층 더 따뜻해졌다.
민호가 나를 보며 물었다.
“오늘은 기분 좋아 보여요. 좋은 일 있어요?”
나는 아이의 순수한 눈빛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응. 오늘 아주 좋은 일이 있었어.”
아이는 잘 이해하지 못했지만, 우리 세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조용히 웃었다. 오늘의 만남이, 그리고 이렇게 함께 앉아 있는 시간이 우리에게 얼마나 큰 위로와 따뜻함인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서로가 이미 느끼고 있었다.
날이 저물고 가로등 불빛이 공원을 밝히기 시작했다. 우리는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나 아이들과 함께 공원을 나섰다. 아이들은 앞서 가며 장난을 치고 웃었고, 우리 세 사람은 그 모습을 바라보며 천천히 뒤를 따랐다.
나는 문득 뒤를 돌아 우리가 앉았던 벤치를 바라보았다. 고요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벤치는 마치 언제든 우리가 다시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듯했다. 그 벤치를 보며 마음속으로 조용히 다짐했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아. 서로의 곁에서 아주 조금씩, 천천히 걸어가면 돼.’
서로의 존재만으로도 우리는 이미 충분히 위로가 되고 있었다. 삶의 작은 틈과 여백이 바로 우리가 서로에게 건넬 수 있는 가장 큰 위로임을 이제야 온전히 깨달았다.
천천히, 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삶 속으로 스며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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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늘 같은 하루 같지만, 그 안에서도 저마다의 쉼이 함께하길 바랍니다. 함께해 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