짊어졌던 나를 이해하고, 놓아주는 연습
나는 늘 짐을 짊어지는 사람이었다.
“그냥 내가 할게.”
그 말은 습관처럼 나왔고,
아무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심지어 나조차도, 그게 내 몫이라 믿었다.
학창 시절,
아버지의 병환 앞에서
말없이 상업고등학교를 선택했다.
빨리 돈을 벌 수 있는 길.
그게 가족을 위한 최선이라 믿었고,
그게 곧 나라는 사람의 쓰임이라 여겼다.
그렇게 살아온 내가 결혼을 선택할 때,
‘꼭 남자가 벌어야 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가족이니까, 때로는 기다리고
서로의 역할을 바꿔가며 살아가면 된다고 생각했다.
나는 벌 수 있었고,
그가 잘되기를 바랐고,
그의 말을 믿었다.
기다림은 사랑이라고 믿었던 시절이었다.
나는 일했고,
그의 카드값을 내고,
생활비를 감당했다.
아이를 낳고, 육아도 거의 혼자 도맡았다.
경제도, 감정도, 모든 것이 내 몫이었다.
내가 감당하면, 다 괜찮아질 거라 믿었다.
그 선택들은 분명
쉽지 않았고,
때로는 나를 무너뜨렸지만,
그 덕분에 누군가는 덜 힘들었고,
누군가는 편안했고,
누군가는 무너지지 않을 수 있었다.
그리고 나 역시,
그 시간들 속에서
삶의 다양한 얼굴을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실패와 좌절, 상실과 고통,
그 모든 것을 견디며
나는 조금씩,
깊어졌고, 단단해졌다.
그건 분명,
내가 해낸 일이었다.
그런데 이제야 묻게 된다.
정말 그 선택만이 답이었을까?
그렇게까지 짊어지지 않아도,
나는 살아낼 수 있었던 거 아닐까?
며칠 전,
내가 믿는 사람에게 이런 질문을 받았다.
“너의 능력을 과소평가한 건 아닐까?”
그 말을 듣고, 나는 내내 생각했다.
‘내가 믿고 있는 내 능력’과
‘실제로 내가 지닌 능력’ 사이의 차이는 무엇일까.
그러니까 나는,
내 능력을 더 나은 선택이 아니라
덜 망가지는 선택에만 써온 건 아니었을까.
내 안에는 더 큰 가능성이 있었는데,
나는 그것보다 버티는 나, 감당하는 나를
내 진짜 능력이라 착각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덜 아픈 길보다
익숙하게 아픈 길을 골랐던 건지도.
이제야 조금씩 깨닫는다.
그때의 나는,
더 많은 길을 갈 수 있는 사람이었다.
다만,
그 길을 감히 상상하지 못했던 사람이었음을.
오늘의 실천
이건 정말 내 몫인지, 조용히 물어본다.
익숙하게 참는 대신, 괜찮지 않다고 솔직히 말해본다.
오늘 하루 한 번, 이렇게 되뇌인다.
“나도 더 좋은 걸 누려도 되는 사람이다.”
나에게 남기는 말
그 선택도 너였고,
지금 이 질문을 던지고 있는 너는 더 크다.
이제는 살아내는 데서 벗어나,
살아가고 싶은 나를 향해 걸어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