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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비늘 Oct 29. 2021

The Blue Danube

Budapest 출장을 돌아보며

직업 특성상 코로나 사태 전까지만 해도 출장이 잦았다. 주중에근 주의 다른 회사로 직접 가서 일하는 우가 많았는데, 유일하게 해외였Budapest 출장은 사 후 첫 프로젝트였기 때문에 더더욱이 기억이 생생하다. 사 사무실에 익숙해지기도 전에 비자 해결하랴, 짐 챙기랴 정신이 없었던 것 같다.  유럽 여행 경험은 열흘 패키지 관광으로 다녀온 서유럽이 전부다. 그런데 회사에서 직접 동유럽을 보내준다니 정말 큰 행운이 아닐 수 없었다. 2주간의 출장 동안 시차 적응도 못한 채 야근을 자주 했지만, 주말에 했던 짧은 여행은 아직도 여운이 남는다.


헝가리의 수도 Budapest는 Danube 강을 두고 Buda와 Pest로 나눠져 있다. 원래 다른 2개의 도시였는데, 나중에 합쳐져 지금의 이름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Buda는 예전에 귀족들이 살았던 부촌으로, Buda에 있는 성에서 바라본 부다페스트의 풍경은 담담하고 평온하다. 전쟁의 상흔남아있는 성벽 주변을 걸으 보는 경치는 일품이다. 둘러보던 중 간간히 들리는 한국인 관광객들의 목소리도 반가웠다. 게임기 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만 같은 아이의 시선을 돌리려 하는 어머니의 모습도 보였다. 다행히 나는 이 기회를 값지게 여길 수 있는 나이가 되어 방문했던 것 같기도 하다.

유럽의 여러 나라를 지나온 Danube 강이 도시를 가른다. 내려다보는 전경이 평온하다.

한국 포장마차에서 어묵 국물을 주듯이, 겨울 Budapest 거리에포도주, 과일, 설탕 등을 넣고 끓여 만든 Vin Chaud다. 침이면 운 날씨에 몸을 녹이려는 사람들이 종이컵을 들고 김이 나는 냄비 주변에 모여있다. 술집과 식당에서는 배나 살구 증류해 만드는 전통술인 Palinka를 쉽게 구할 수 있데, 도수가 40도에 가까운 술이어서 이 또한 겨울에 어울린다. 현지 클라이언트의 권유로 마시게 된 첫 잔은 지나치게 긴장한 신입의 굳은 자세를 푸는데 도움이 되었다.


술을 좋아하는 민족인 만큼 포도주에 대한 관심도 남다르다. Tokaji 지방의 귀부와인으로 유명한 헝가리 포도주는 옛날에 프랑스 왕 Louis 15세가 "와인 중의 왕"이라고 극찬을  정도로 맛이 좋다고 다. 사회주의 정권 하에 국유화된 포도원들의 품질이 잠시 떨어졌었는데, 요즘 옛날의 영광을 되찾아간다는 평가를 받는. 전문가는 아니지만 내가 맛보았던 은은한 단맛의 백포도주는 전통음식인 파프리카쉬와 굴라쉬에 어울렸던 것 같다. 미국에 선물로 들고 갈 포도주 한 병을 사고 나온 밤거리는 성탄절 준비로 밝게 꾸며져 있었다. 그날 저녁을 마무리하기에 완벽한 디저트였던 듯하다.

승리의 여신상이다. 동상 앞에는 Magyarorszag라고 쓰여져있는데, 이는 "마자르인의 나라"라는 뜻이다.

황금빛의 Szechenyi 다리를 건너 열차 철도를 따라서 걷는 길은 헝가리의 전경을 보기에 좋은 자리였다. 성탄절 장식과 야시장으로 북적북적한 광장 사이로 가로등 빛이 옅게 비치는 골목길은 한편 쓸쓸해 보이기도 했다. 건물들이 발하는 불빛이 강할수록 도시의 가장자리는 더 어두워보인다. Johann Strauss 2세가 쓴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 강"처럼 강 가까이에 위치한 도시의 낭만적인 분위기도 있지만, "슬픈 일요일"이라는 곡으로 더 잘 알려진 "세계의 끝"과 같은 공허함도 공존한다. 여행객들로 가득 찬 고급 호텔들 뒤에 가려진, 헝가리가 안고 온 많은 상처들 때문일 것이다.


Budapest는 지나간 모두의 모습을 는다. Danube 강가에 놓인 신발들은 학살된 유대인들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조형물이다. 남겨진 희생자들의 신발들은 팔리고 없지만, 다시 기억하기 위해 새로 놓였다. 합스부르크 지배 당시 지어진 바로크 양식의 성당과 성벽들 사이 뜬금없는 누런 벽의 각진 건물들은 보통 구소련의 것이다. 지금은 관광명소 된 승리의 여신상은 원래 소련이 나치 독일 상대로 한 승리를 자축하기 위해서 세워졌다. 들고 있는 월계수 잎은 이제 산권의 축배가 아닌 헝가리인들의 자유를 의미한다. 자유의 광장 한가운데에는 소련의 전쟁기념비가 있고, 조금 더 걸어가면 적국이었던 미국 전 대통령 Ronald Reagan 동상이 있다. 얽히고설켜있는 헝가리의 역사를 보는 듯하다.

Reagan 전 대통령의 동상 뒤로 국회의사당이 보인다.

헝가리는 우여곡절 끝에 살아남은 나라다. 몽골의 침입부터, 오스만튀르크, 오스트리아 제국, 나치 독일 그리고 소련까지 많은 고비를 넘기고 지금의 자리를 지켜냈다. 한 때 강성했던 왕국은 열강들의 다툼 끝에 90년대가 거의 다 돼서야 독립을 이뤘다. 당시 자본주의의 상징이었던 맥도널드 매장 앞에는, 맛보지 못했던 패스트푸드를 기다리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고 한다. 늦게 자유로운 세상을 맞이한 헝가리이지만, 조금씩 다시 기지개를 켜고 있다. 아픈 역사와 전쟁의 흔적이 남아있으면서도 아름다운 다리와 성들을 간직한 Budapest에 약간의 아쉬움을 뒤로 남기고 나는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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