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백승헌 Nov 14. 2024

6. 불 꺼진 창가의 어두운 그림자

열정의 온도 6. 한순간 생의 한가운데를 뚫는 감정이 느껴질 때가 있다.

진성은 방 안으로 들어가서 불을 켜지 않고 창가에 섰다.

늦은 밤 시간이라서 거리가 비어 있었다. 밤비가 아스팔트를 적시고 있었다. 가로등의 뿌연 불빛이 수 만개의 빗방울을 맞으며 흔들리는 듯했다. 진성은 가슴이 텅 비어 오는 것을 느꼈다. 항상 잠을 자기 위해 빈방을 찾을 때 느끼는 적막감이 밀려왔다.

오래 묵어 진득하게 숙성된 감정이었다. 


겨울에도 연탄불을 갈아 넣지 않았던 추운 방의 시린 기억이 남아 있었다.

2평 남직한 작은 방에 겨우 다리를 뻗어 추위에 떨든 기나긴 밤, 진성은 눈을 감고도 비디오처럼 선명하게 보이는 환영들을 보았다. 아버지의 술주정과 폭력, 어머니의 가출, 버려진 듯한 외로움과 곤궁함, 배고픔까지 다양한 스팩트럼으로 나타났었다. 

13살 누이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둘러싼 가족의 슬픔, 통곡의 울음소리가 여전히 귓전에 남아 있었다.

진성은 그 묵은 잔상들과 추위로 사지를 웅크리고 밤을 지새우곤 했다. 그 차가운 기억의 온도가 바로 지금의 빈방까지 연결되어 있었다. 과거의 무수한 점들이 연결되어 진성을 감싸고 옥죄이는 불 꺼진 방에서 멈췄다. 

“언제까지 나는 불 꺼진 창밖을 바라보고 살아야 할까?”

진성은 누군가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가 어디에 있고 누군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다시 불 꺼진 창가에서 창밖의 어두운 그림자를 바라보지 않을 수 있기를 꿈꾸는 것이었다.     


전날 술을 많이 마셔서 일요일은 느긋하게 침대에 누워있었다.

일요일도 변함없이 나갔던 새벽 5시의 운동도 쉬고 9시쯤 근처 공원으로 나갔다. 여느 일요일과 다름없는 한가한 시간이었다. 

그런데 편의점을 지나갈 때, 갑자기 사라진 그녀를 발견했다. 

순간의 찰나에 진성의 심장이 이유 없이 덜컥하고 떨어졌다. 태어나서 처음 느껴보는 몸의 반응이었다. 진성은 잠시 서서 상황을 파악하려고 했다. 심장의 기능에 이상이 생긴 것일까? 아니면 그녀의 존재가 내게 스파크를 일으켜 심장을 일시적으로 떨어지게 했을까?

그녀의 출현이 감동의 파장을 일으킨 것 같기도 했다. 

이리저리 생각을 해도 진단이 되지 않았다. 


그녀는 아무 생각이 없는 듯 카페 라테를 스트로로 빨고 있었다. 

한참을 서서 그녀를 지켜보며 그다음의 감각을 느껴보려고 했다. 갑자기 시간이 영원의 한 부분처럼 느껴졌다. 하늘에서 그녀가 갑자기 떨어진 것 같은 느낌이 일어났다.

새로운 세상으로 접어든 것 같았다. 한순간 생의 한가운데를 관통하는 하나의 감정이 뭉클하게 일어났다. 반갑고도 기쁜 감정이 회오리바람처럼 주변의 잡동사니를 끌어올리며 휘감고 돌았다.     

작가의 이전글 5.  아름다움의 증명 혹은 증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