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의 온도 8. 통찰력은 시공의 흐름을 직관적으로 느끼는 힘이죠.
진성은 공원으로 걸어가며 곰곰이 생각했다.
왜 숫자를 셌을까? 누구를 기다리며 숫자를 센 기억이 전혀 없었다. 대학 다닐 때 텔레파시 연구를 하며 친구랑 내기를 한 적은 있었다.
“네가 지정하는 장소에 내가 여자 친구를 텔레파시로 부를 테니까, 내기할래?”
“야!! 약속대련 같은 거 아니야. 내가 미리 짜고 치는 고스톱인 줄 모르고 덥석 내기에 응하면 네가 날름 내기에 이기려는 수작 아니야.‘
“그런 것은 아니야. 이 넓은 대학 어느 곳인지 어떻게 알아.”
당시는 휴대폰이 없었다. 당연히 구미가 당기는 내기였다. 친구가 오케이 했다. 그는 미리내 계곡의 벤치에서 만나자고 했다. 나는 텔레파시를 열심히 보냈다.
그곳으로 가는 내내 불안했지만 텔레파시를 믿었다.
게임의 룰은 단지 5분이었다. 그 시간이 지나면 내가 지는 것으로 점심을 사는 내기였다.
그녀는 3분이 채 지나기 전에 그곳을 지나가다 말했다.
“진성 씨 뭐해요?”
“여기서 텔레파시 내기를 했어요. 여기 나타나서 제가 이겼어요. 우리 같이 식사하러 가요.”
나는 친구를 돌아보며 말했다.
그녀는 신기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친구는 수긍했다. 약간 투덜거리는 투로 말했다.
“텔레파시인가 뭐인가 그거 실제 작용하는가 보네.”
그 생각을 하며 진성은 피식 혼자 웃었다.
“무슨 생각을 하며 웃어요.”
그녀가 어느새 쳐다보고는 말했다.
“나를 만나기 위해 숫자를 셌다는 말을 듣고 예전에 텔레파시 내기 했던 것이 생각나서요. 그런데 왜 숫자를 세고 있었던 거죠?”
“그건 선생님이 텔레파시를 한 것과 같은 방법이죠.”
“내가 나타날 것을 알았다는 건가요?”
“당연하죠. 이래 봬도 저는 인간의 통찰력을 믿어요.”
“통찰력이라고요?”
“시공의 흐름을 직관적으로 느끼는 힘이죠. 제가 집중하는 대상의 동선이 그려지고 반드시 올 것이라고 하는 강력한 직관이죠. 선생님이 전에 얼핏 일요일은 공원에 산책하러 간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어요. 습관이니까, 당연히 나타날 것이라 믿었어요.”
“왜 그렇게 믿었죠?”
“믿음에 대해서 꼭 이유가 필요한가요? 저는 그냥 그런 직관이 들었어요. 아마도 오래전 500년 묵은 우리 동네 은행나무아래에서 그리 느꼈던 것 같아요.”
점입가경이었다.
‘인제 보니 수원 나그네’의 설화가 떠올랐다.
누군가 싶었는데 알고 보니 그전부터 잘 아는 수원 나그네였다는 뜻이다. 처음엔 누군지 몰라보았으나 깨달아 보니 알던 사람이라는 말이다. 그녀가 그랬다.
그녀는 10년 세월 동안 진성의 곁을 스쳐가거나 근처에 머물러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