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의 온도 9. 직관이 맞을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통찰력의 비밀이죠.
“얼마쯤 기다린 거죠?”
“아마 6개월쯤 기다렸어요. 미칠 듯이 슬플 때도 기다렸고 즐겁고 기쁠 때도 여기서 시간을 보냈어요.”
지성은 깜짝 놀라며 그녀를 쳐다보며 물었다.
“왜 그렇게 기다렸어요?”
“모든 기다림에 이유가 있는 건 아니죠. 전 그냥 기다렸어요. 솔직히 말하면 기다리기 시작하면서 습관이 되었죠. 또 제 통찰이 늘 들어맞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맞을 때까지 끈질기게 기다리다 보면 반드시 맞아 들어가거든요. 직관이 맞을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통찰력의 비밀이죠.”
진성은 웃음이 터져 나왔다.
“하하하. 아주 재밌는 아가씨네요.”
“그래요. 저는 아주 재밌어요. 다른 사람한테는 아니지만 선생님한테는 그럴 것 같아요.”
그녀의 밝게 웃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눈에는 자동차 불빛이 스쳐 지나가듯 짧은 고뇌가 어리며 스쳐 지나갔다. 그녀의 표정과 눈빛, 입술이 제각기 다른 프리즘으로 나타났다. 어둡거나 밝은 빛이 굴절되거나 분산되어 흩어지고 모여드는 것 같았다.
“그 전과 그 후가 달라진 계기가 있나요?”
그녀는 고개를 땅으로 약간 숙이며 말했다.
“제가 섬으로 놀러 가자고 말했던 것 기억하시죠. 그때 갑작스럽게 사라지고 난 이후 선생님을 찾아갈까도 생각했어요. 하지만 저는 클래식한 것을 좋아해요. 일부로 인연을 만들거나 인위적인 것은 싫어해요.”
그녀가 잠시 머뭇거리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어머니를 여읜 슬픔도 있었지만 왠지 기다리고 싶었어요. 그런데 이곳에서 오래 기다리며 내속에서 어떤 작은 씨알이 싹을 틔우는 것을 느꼈어요. “
“그 싹이 무엇인가요?”
“그건 나중에 말씀드릴게요. 처음엔 용감하고 밝게 기쁜 마음이었어요. 그런데 기다림이 길어지고 오래 나타나지 않으셔서 힘들 때가 있었어요. 괴로움이 밀려오거나 우울하기도 했죠. 그게 전부예요.”
그녀는 말을 하다가 문득 뭔가가 생각난 듯 멈추었다 다시 말했다.
“500년 묵은 우리 동네 은행나무에서 저는 기도를 하고 있어요. 500년 묵은 은행나무의 전설을 아세요?"
“잘 모르겠어요. '은행나무 침대'라는 영화는 봤어요. 오랜 전생으로부터의 기억이나 환생, 그런 것 아닌가요? 500년 묵은 은행나무의 전설이 궁금하네요.”
“아, 500년 묵은 은행나무의 전설은 기도를 하면 질긴 생명력으로 마침내 소망이 이뤄지는 거죠. 그 강한 에너지가 꿈꾸는 소망을 이뤄지게 돕는다고 해요. 다른 의미도 있어요. 나중에 통찰이 다시 떠오르면 설명해 드릴게요.”
진성은 그 말을 정확하게 이해할 순 없었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저기 공원 근처의 가게에 들러 마키아또와 콜라를 사들고 가는 건 어때요?”
“좋아요. 내가 마키아또 좋아하는 건 어찌 알았죠?”
진성은 약간 의아한 듯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녀는 찡긋하고 웃으며 말했다.
"통찰력이라고 해야 할까? 그런 거예요."
그녀는 그 말을 하고 푸른 하늘을 우러러 보고 있었다. 진성도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일요일 오전의 햇살이 따사롭게 내리쬐고 있었다.
그녀의 통찰이 빗나간 이유를 진성은 알고 있었다. 사실 진성은 일요일은 아침 6시부터 8시까지 산책을 했다. 그녀의 통찰력의 문제는 시간대에 있었다. 어제 여기자와 함께 늦게까지 만취만 하지 않았다면 오늘 역시 그녀와 만나지 못했을 것이었다. 하지만 진성은 그 말은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