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와 적멸 18. 천의성을 타고난 것은 병을 타고났다는 것을 뜻하네.
승문은 그의 말이 마법처럼 들렸다.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놀라운 의학의 세계를 느꼈다. 침술이 정말 암을 고칠 수 있다면 그 얼마나 대단한 의술인가!! 승문은 한줄기 빛을 발견한 기분이 들었다. 그런 저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청산거사가 침묵을 깨트리며 말했다.
“자네는 지병이 참으로 많은데도 왜 고칠 생각을 하지 않는 겐가?”
승문은 순간적으로 당황했다.
아직 젊은 몸인데도 지병이 많다고 하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스승님, 저한테 지병이 많다고 하셨는지요? 제가 몸이 좀 부실하긴 하지만 지병이라고 할만한 중대한 병은 없습니다.”
“어허, 난치병 중의 난치병에 걸려 있음에도 모르는 것이구나.”
“제가 무슨 병이 있는지 알려주십시오.”
그는 웃으며 말했다.
“지금 당장 죽을병은 아니야. 하지만 상기증은 참 힘든 병이야. 비염도 있고 체증도 있고 우울증도 있지 않은가. 허리통증과 무릎통증은 또 병이 아닌가?”
“아!! 스승님, 그 병을 어떻게 아셨는지요?”
승문은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가 오랫동안 겪고 있던 증상을 모조리 알고 있었다. 일반 한의학으로 병명도 없는 그런 증세들이었다.
“천의성을 타고났다는 것은 병을 타고났다는 것을 뜻한다네.”
“그것이 무슨 뜻인가요?”
“너무나 건강한 사람이 어떻게 병을 연구하겠는가? 천의성을 타고나면 병이 많고 그 병을 연구하게 되어 있는 것이야.”
그의 말을 듣고 승문은 진지하게 되물었다.
“그렇습니까? 그런데 저의 상기증이나 비염, 체증, 우울증은 고칠 수 없는 병이라고 들었습니다. 허리는 큰 부상을 당했고 무릎은 부모님이 모두 관절염이 있어 유전적 증상입니다. 이런 상태인데도 고칠 수가 있습니까?”
“당연히 고칠 수 있는 병이라네. 못 고치는 병은 없다네. 허리통증이나 관절염은 침술로 단번에 고칠 수 있는 증상이네. 왜 고치려고 생각조차 않고 병을 안고 사는가.”
정말 그랬다. 고치려고 생각조차 않고 그냥 불편을 감수했다.
상기증의 경우엔 뿌리가 깊어서 아예 포기했었다.
다른 증상도 마찬가지였다. 때론 고통스럽고 힘들었지만 타고난 몸의 옵션처럼 감수했다. 고칠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지금부터 내가 자네를 고치는 것을 한번 보여주겠네.”
“정말 고칠 수 있단 말씀입니까?”
“당연히 고칠 수 있으니까, 그리 말하지 않겠나?”
그는 침통을 꺼내어 가만히 옆에 놓았다.
승문은 가슴이 뛰었다. 침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기대감이 넘쳤다. 죽은 사람도 살릴 수 있는 침술의 경지를 상상했다. 과연 그의 침술은 어느 정도의 경지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