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증과 호흡곤란 11. 맥산침법의 기적같은 효과도 빛을 발했다.
산속에서 지낸 지도 어언 1달이 지나고 있었다.
찬홍의 턱수염이 나서 영락없이 자연인처럼 보였다. 도시를 떠나 한 달만에 그렇게 큰 변화를 보인다는 것에 놀랐다. 거울을 본 적도 없고 유일한 거울은 유경이 해주는 말이었다.
“정말 산골사람처럼 보여요. 얼굴이 많이 타고 수염이 더부룩해서 건강하게 보여요.”
“그렇게 보인다면 좋은 거지. 내가 아플 때마다 곁에서 잘 치료해준 덕택이야.”
처음 3주간 찬홍은 여러 차례 위기를 넘겼다.
전신통증에 시달리고 수시로 호흡곤란이 찾아왔기 때문이었다. 그 때마다 유경은 염증과 암의 특효제 C- 큐링스나 M- 큐링스로 위험을 넘겼다. 또 맥산침법의 기적같은 효과도 빛을 발했다. 찬홍은 내심으로 산소호흡기를 떠올렸지만 침술이 더 빨랐다.
침치료를 하면 다시 호흡이 되고 진정이 되었다.
산소호흡기를 사용하는 것보다는 훨씬 더 빠르고 치료효과가 높았다. 주로 통증은 야심한 밤에 찾아와서 괴롭혔다. 그것은 마치 적군이 심야에 기습공격을 한 것과 같았다.
그럴 때마다 유경은 특수한 인체 무술인 맥산침법으로 적군을 물리쳤다. 폭탄에 해당하는 특효제를 복용시키고 총과 칼에 해당하는 침으로 공격했다.
유경은 침을 놓을 때면 꼭 명령신호를 보내듯 말했다.
“이제 맥을 풀어주며 통증을 없앨 거예요. 폐경과 대장경을 뚫어서 호흡을 안정시킬 거예요. 행복한 생각을 하며 몸을 느긋하게 이완하세요.”
“알았어. 나는 정말 행복해. 내 영혼의 동반자가 나쁜 증상의 적군을 몰아내는 것을 몸으로 느껴. 몸에서는 전투가 벌어지고 있지만 마음으로는 편안해. 사랑하고 감사해.”
“침술치료는 정말 행복한 거예요. 수술이나 항암제, 방사선 치료는 엄청난 고통을 수반하죠. 그런데 맥산침법은 아프지 않고 기분이 좋아지잖아요. 면역력도 자연히 높아져서 좋죠.”
찬홍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맞아. 이상하게 침을 맞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지고 행복해. 나는 그것이 사랑 때문이라고 생각했어. 그런데 너무 아플 때는 감정이 삭막한데도 기분이 좋아지고 안정이 됐어. 나중에는 침술의 효과라는 것을 알았어.”
“맞아요. 침술은 다양한 효과가 있어요. 좋은 식단과 더불어 침치료를 받으면 면역력은 매우 강화가 되요."
"정말 그런 것 같아. 여기와서 감기에 걸리지 않았잖아. 약초반찬이나 찌게 등이 면역력을 높여주는데다가 침치료까지 받아서 그런 가봐."
" 맞아요. 정말 이제는 점차 의학 전문가 수준으로 가고 있네요.”
“아마 그럴 거야. 나는 이병이 나으면 의학의 길을 갈 거야. 자기와 함께라면 그 어떤 길이든 상관없어. 이왕이면 자기와 함께 의학의 길을 갈 거야.”
찬홍은 그 말을 하며 잠시 생각을 떠올렸다.
그의 가문은 대대로 한의원을 했었다.
하지만 아버지 대에서 그 맥이 끓어졌다. 3대 독자였던 그의 아버지는 어릴 때 심한 열병에 걸렸기 때문이었다. 당시 급성열병으로 엄청난 고열로 인해 뇌기능이 떨어졌다.
그 상황은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일상적인 생활은 했지만 공부를 하거나 기억을 하는 것은 못했다. 단순하게 농사를 짓거나 일상적인 대화만 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성실하게 열심히 일하고 살아가는 것이 전부였다.
할아버지는 자신의 아들이 그렇게 된 것을 비관했다. 한의학 가문의 맥이 끓어지는 것을 못내 안타까워했다. 죽어서 조상을 뵐 면목이 없다고도 말했다.
결국 찬홍의 할아버지는 정신적 고통의 홧병으로 돌아가셨다.
찬홍의 어린 시절, 그의 어머니는 한의학 가업의 명맥을 이을 것을 여러 차례 말했다.
하지만 찬홍은 의학의 길을 원하지 않았다.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갈 수 있는 새로운 학문을 갈구했다.
어쩌면 그의 아버지가 끼친 영향인 것 같았다. 그는 평생을 아내에게 의존하며 단순하게 일하고 쳇바퀴처럼 살았다. 그는 더 넓은 세상을 살고 싶었다.
컴퓨터로 이어진 사이버세상뿐 아니라 전세계를 누비고 싶었다. 사면이 산으로 둘러싸인 농촌생활보다는 도시생활을 동경했다.
그런데 유경을 만나고 폐암에 걸리면서 생각의 전환이 이뤄진 것이었다.
찬홍은 자신이 의학의 길을 갈 것이라 생각한 적은 없었다. 하지만 폐암선고를 받고 산속으로 들어온 이후에 생의 궤도가 서서히 바뀌고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