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순간, 그들의 삶을 통과한 기적이라는 단어가 일상이 되었다.
그들이 민가로 도착했을 때는 밤이 되었다.
입산할 때의 민박집을 찾아서 짐을 풀었다. 민박집의 두 노인부부는 그들을 대단히 반갑게 맞이했다. 마치 전쟁터에서 친아들이 다시 돌아온 듯 웃음꽃을 피웠다.
노인은 만면에 미소를 짓고 말했다.
“처음 여기 왔을 때와 너무 다른 것 같구려. 완전 화색이 돌아. 어쩌면 이렇게 새로운 사람이 된 것이오. 너무 좋은 일이라서 기쁘기 한량없구려.”
옆에 있던 노부인이 덩달아 즐거워하며 말했다.
“우리 이 양반이 가끔씩 짐꾼한테 부식을 부탁할 때마다 걱정이 많았다우. 그 추운 겨울을 어떻게 지내누 하고 말이유. 지금 보니 두 부부가 너무 좋아 보이지 뭐유.”
그들은 정성껏 저녁을 준비했다. 찬홍과 유경은 그 먼 길의 여독도 잊은 채 식사를 했다.
“너무나 맛있네요. 감사합니다.
유경이 말하자 찬홍이 한마디 거들었다.
“그래요. 정말 맛있습니다. 서울 갔다 금방 다시 올 테니, 그때도 부탁드리고 싶어요.”
“그래유. 당연히 여기로 오시면 되지유.”
그들 노부부는 진심을 다해 그들을 환대했다.
그날 밤을 새우고 그들은 택시를 불러서 서울로 갔다.
가는 내내 유경과 찬홍은 각기 다른 고민과 생각에 잠겼다. 유경은 말은 괜찮다고 했지만 내심은 그렇지 않았다. 혹시 만에 하나 암세포가 남아 있다면 찬홍이 받을 고통이 염려가 되었던 것이었다. 그러나 찬홍은 유경이 서울에서 다시 일을 하기를 바랐다.
자신을 따라와서 경력이 단절된 것이 안타까웠다. 한편으로 그녀가 일을 하게 될 경우도 상상했다. 그리되면 혼자 어떻게 산속생활을 할까 고민이 되었다.
서울로 온 이후로 3일째 되는 날 찬홍은 병원으로 갔다.
이번에는 유경이 함께였다. 그녀는 혹시 찬홍이 불안해할까 싶어 손을 꼭 잡고 있었다. 병원 수속을 밟고 검사와 영상진단을 하는 중에도 그랬다. 그녀는 절대 손을 놓지 않았다.
마침내 찬홍을 호명하자 같이 따라갔다.
암전문의는 금테 안경을 쓰고 찬홍을 바라보며 말했다.
“박찬홍 씨가 맞나요?”
“예, 그렇습니다만....”
찬홍은 그 시간이 너무나 길게 느껴졌다. 마치 재판에서 선고를 기다리는 듯한 심정이었다. 의사의 말 한마디로 천국과 지옥을 결정하기 때문이었다. 그 한마디가 가슴을 망치로 때리는 듯한 충격을 줄 것을 미리 느끼고 있었다.
잠시의 침묵이 흐른 후에 의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예전에 뵈었던 그 환자분이 맞는지 확인해 보는 겁니다.”
“예. 맞습니다.”
의사는 모니터를 천천히 쳐다보았다.
“참 이상하네요. 예전 기록에는 보면 절망적인 상태였어요. 그런데 지금 흔적도 없이 정상적인 상태입니다. 어떻게 이런 기적이 있죠?”
그제야 유경이 맥이 탁 풀리는 느낌이 들었다. 둘은 아무런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기적의 순간에 무슨 말이 필요할 것인가. 기적이 일상이 된 그 순간, 그들에겐 삶을 통과한 기적이라는 단어가 익숙해지는 느낌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