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찌민에 오래 살아야 할 이유는?
“호찌민에 살면 좋은 점 3가지만 말해주세요.”
한국에서 여행 차 온 소설가이자 기자인 지인이 내게 이렇게 말했다. 그가 이렇게 말한 이유는 호찌민이 그리 좋지 않다는 느낌 때문이었다. 나는 그의 인식을 바꿀 수는 없지만 내 느낌을 그대로 말했다.
“첫 째는 아시아 행복지수 1위인 이곳에 살면 같이 행복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 좋습니다. 둘째는 사계절이 없고 매일 꽃이 피는 꽃나무와 한 달에 한번 꽃 피우는 꽃나무가 있어 좋습니다. 셋째는 상대적 비교의식이 없고 정치적 이슈에서 벗어나서 너무 좋습니다.”
나는 간단하게 이렇게 말했다. 그리고 역으로 질문을 했다.
“호찌민이 싫은 이유가 무엇 때문인가요?”
그는 인상을 조금 찌푸리며 이렇게 말했다.
“첫째 날씨가 너무 덥고 습해서 생각이 안 떠오릅니다. 둘째 영어가 통하지 않아서 딴 별나라에 온 것 같습니다. 셋째 사람들이 불친절하고 이상해서 정감이 안 느껴집니다.”
그가 말을 하다 잠시 쉬었다가 다시 말했다.
“여기서 집필을 하신다니, 참으로 대단하십니다. 저는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고 빨리 한국으로 갔으면 하는 생각뿐입니다. 여긴 참 안 맞는 것 같습니다.”
“예, 그러시다면 여기 호찌민이 체질에 안 맞는 것이 맞습니다.”
나는 그렇게 말했다. 간혹 그런 사람들이 있어서 이해가 되었다.
이러한 관점은 말레이시아와 극명하게 대비된다. 말레이시아에 여행 온 사람들은 다들 놀라며 좋다고 감탄을 한다. 말레이시아는 베트남과 차이가 많다. ‘아시아 최고 규모의 쇼핑몰과 다양한 브랜드, 유명 브랜드 이월 상품의 할인판매, 저렴하면서 부킹이 쉬운 골프클럽, 다양한 음식점’ 등 다양한 면에서 장점이 많다.
그런 면에서 보면 베트남은 단기여행지로서는 좋은 점을 빨리 찾기 어렵다. 하지만 장편소설 같은 삶을 살아보면 여긴 장점이 많다. 말레이시아에서 7년을 살아본 나로서는 단연 여기가 훨씬 낫다.
말레이시아는 길거리 영어가 통하긴 하지만 거의 슈퍼마켓 랭귀지 수준이다. 단어 조립식 영어를 주로 많이 사용한다. 완전한 의사소통의 한계가 있다. 나는 그런 점 때문에 말레이시아어를 공부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말레이시아어에 대한 한계가 조금씩 느껴졌다.
공부를 하던 중 말레이시아 환자에게 물어보았다.
“말레이시아어가 왜 이렇게 어려운가요? 간단한 말은 쉽지만 조금 더 깊이 있게 대화를 하려고 하니까, 많이 어려운데요. 이유가 뭔가요?”
영국의 런던대학 건축학과를 나온 말레이시아 환자가 내게 이렇게 말했다.
“말레이시아어가 슈퍼마켓 랭귀지로는 좋습니다. 그 이상의 공부는 힘듭니다. 깊이 있는 대화를 말레이시아로 나누기가 힘들죠. 고위직 공무원이나 고위직 회사임원들은 그런 점 때문에 영어를 주로 사용합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바로 말레이시아어 공부를 중단했다.
하지만 베트남어는 처음에는 어려운 듯 하지만 한국인에게는 너무나 쉽다. 수많은 한국인들이 ‘6 성조’ 때문에 어렵다고 한다. 하지만 실제 공부해 보면 그렇지 않다. 아주 쉬운 언어이다.
한국에서 온 그 지인은 일주일 예정으로 왔다가 3박 4일 만에 한국으로 돌아갔다. 간혹 체질적으로 베트남 호찌민이 맞지 않은 경우가 있다.
그러나 호찌민에 오래 살아온 사람들은 대부분 좋다고 말한다. 내 개인적인 소감으로는 호찌민이 아주 좋다. 산이 없지만 사이공 강변을 거닐면 나름의 운치가 있다. 또 살면 살수록 아름다운 풍경이 있는 카페나 맛집이 많고 마음이 편하다는 것을 느낀다. 나는 앞으로도 호찌민에 오래오래 살 것이다.
호찌민에서의 진료와 코비드 19 기간
7군 코리안 타운 푸미흥에서 2군 타오디엔으로의 이주
한의원 이전을 결심했을 때 많은 지인들이 반대했다.
“아직은 2군보다 7군이 낫습니다. 가시면 후회하실 겁니다.”
“7군에서 자리를 잡아놓고 왜 한국인이 많지 않은 그곳으로 가십니까? 2군 타오디엔은 유럽인과 베트남인들이 주로 거주하는 지역입니다. 경영적인 부문을 생각하면 힘이 들 겁니다. 가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심지어 이렇게 말하는 분도 있었다.
“타오디엔은 외국인 학교나 카페, 식당이 많은 지역입니다. 그곳에서 한의원은 힘듭니다. 잘 판단하세요. 망해서 7군으로 돌아올 수도 있습니다.”
나는 그들의 조언을 깊이 새겼다. 실제 7군 건물을 임대해서 투자를 하고 3년이나 자리를 잡은 터를 옮긴다는 것은 쉽지 않았다. 베트남은 집을 임대할 때 대부분 1층과 2층의 상업적 공간은 아무런 시설이 되지 않은 경우가 많다. 나머지 3층에서 5층 혹은 6층도 인테리어를 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7군 푸미흥에 처음 임대를 할 때 1층에서 6층까지 전체가 손보아야 할 곳이 많았다. 전체적인 인테리어를 새로 해야 했다. 비용과 시간이 많이 들었다. 하지만 당초 계획대로라면 최소 5년에서 7년은 있을 예정이었다.
하지만 7군에서의 개원 이후 진료는 주로 한국인이 주대상이었다. 코리안 타운이란 특정된 지역이라서 외국인들은 거의 오지 않았다. 어쩌다가 베트남인과 러시안들은 왔지만 한계가 있었다.
베트남 이전 이후 진료와 연구를 현지인 중심으로 하겠다는 기대가 깨졌다. 말레이시아에서는 다양한 외국인들을 진료하였기 때문에 여기서도 그렇게 기대했다. 하지만 7군 푸미흥은 그것이 불가능했다.
나는 체질의학의 연구를 위해서는 다양한 인종과 문화적 교류가 필요하다는 점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미 투자를 했고 자리를 잡은 7군이 좋긴 했다. 하지만 체질의학의 연구를 위해선 이전을 결정해야만 했다.
이전이 쉽지 않은 이유 중 하나는 7군에서 2군까지의 시간과 비용 때문이었다. 환자입장에선 7군에서 2군으로 온다는 것은 왕복 2시간의 시간과 택시비용 3만 원이 들어가야 하는 일이다.
거리상으로는 멀지 않았지만 오토바이 천국인 호찌민에서는 시간이 많이 걸린다.
택시비용 3만 원도 보통사람들에게는 만만치 않은 비용이다. 그렇기 때문에 7군에서 2군으로의 이전은 기존 환자와의 단절을 의미했다.
호찌민 내에서의 이전이었지만 도시를 옮긴 것과 같았다. 그 후 이전 후에 2군은 호찌민시에서 분리되어 투득 시가 되었다. 행정구역이 실제로 바뀐 것이었다.
그로 인해 생긴 또 하나의 문제가 있었다. 그것은 한국과 달리 호찌민에서의 한의원 이전은 처음부터 새로 서류를 준비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그것도 최소한 3개월에서 6개월이 소요기간이 필요했다. 그런데다 이전 이후 코비드 19가 호찌민을 엄습했다. 비교적 코비드 19에 관대했던 베트남 보건지침이 ‘사회적 격리’로 전환되었다. 거의 모든 업종이 영업금지가 되었고 외부출입이 금지됐다. 거리는 공안(경찰)과 붉은 완장을 찬 사람들에 의해 완전히 격리되었다. 2군 타오디엔 이전 후 무려 1년 2개월을 코비드로 기다려야 했다.
베트남에서의 체질의학 연구
한국의 5060 세대에게 체질의학은 친근하다.
한 때 체질의학의 붐을 이루던 시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서울대 이명복 교수가 쓴 “체질을 알면 건강이 보인다.”는 책이 공전의 히트를 친 덕분이었다. 그 책에 대한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다.
체질이라는 생소한 개념 때문에 그 어떤 출판사도 출간을 원치 않았다. 서울대 교수라는 좋은 프로필이 있었음에도 그 정도로 체질은 낯설었다. 그러한 우여곡절 끝에 책은 출간되었지만 저자가 TV에 출연하여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당시 체질의학은 건강에 관심을 가진 분들의 주요 화젯거리였다.
하지만 한국에서 유행했던 대부분 건강요법들이 그러했던 2000년 대 이후는 관심이 대폭으로 줄었다.
지금 시대에 체질의학에 대한 관심은 매우 낮은 수준이다. 사람마다 체질이 다르고 음식도 다르다는 것 정도의 상식정도로 남아 있다. 체질에 대해 관심을 가진 사람도 그리 많지 않다.
그러나 체질은 자동차의 차종과 같은 것이다. 자신의 차종이 무엇인지도 몰라도 운전을 할 수는 있지만 휘발유차인지 경유차인지는 알아야 하지 않을까?
사실 체질의학의 원리를 알면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달을 수 있다. 거의 모든 인간활동이 체질과 연결되어 있다. 심지어 부자체질이 있고 가난한 체질이 있다.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느냐고 묻는 사람도 있다. 지극히 간단한 원리이다. 나는 이렇게 설명한다.
“부자체질은 자신의 몸을 최적화하여 에너지레벨이 지극히 높인 사람을 나타냅니다. 반대로 가난한 체질은 몸 관리를 하지 않고 병이 든 사람을 나타내죠. 부자체질은 에너지가 넘치고 부를 소유할 힘을 지니고 있지요. 반대로 심각한 지병을 오래오래 앓고 있는 사람은 가난한 체질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나는 28 체질의학을 창안한 이후 수많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그 연구를 했다.
실제 체질적으로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은 부자체질이었다. 병약한 사람은 가난한 체질이 분명했다.
나는 체질의학 연구를 지속적으로 하고 있다. 특히 외국인 대상의 체질의학 연구는 말레이시아에서부터 호찌민에서도 계속하고 있다. 베트남 내에서도 서양인이 가장 많이 거주하는 2군 타오디엔에서는 체질의학 연구가 매우 효과적이다. 매일 서양인들과 베트남인들이 내원하여 체질의학 치료를 받기 때문이다.
나는 베트남에서 체질의학을 연구하고 전파할 것이다. 외국인들은 체질의학에 높은 관심을 가지고 신뢰를 보낸다. 나는 앞으로 호찌민시를 28 체질의학을 세계화하는 베이스캠프로 삼아 연구 성과를 높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