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질병증(體質病症): 체질에 따라 나타나는 병증을 뜻한다.
<이 글은 28 체질의학의 발견과 연구, 의통의 전수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한민족 고유의 의통을 둘러싼 비밀과 음모, 천고의 비법 등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환단고기에서 동의수세보원에 이르기까지의 한민족 의통이 21세기에 세계 최고의 의학으로 대두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밝힌다. 각종 역병과 괴질, 난치병과 불치병을 고칠 수 있는 '의통과 해인'은 어디에 있는가? 그것을 찾는 사람이 천하를 구할 것이라는 예언이 실현될 것인가? 이 소설은 그 의문과 해답을 동시에 던질 것이다.>
5. 정신과 육체의 고통은 그 자체가 질병이다.
승학은 텅 빈 기와집을 지나 대나무 숲을 걸었다.
그 근처의 황토 집은 별천지를 보는 것 같았다. 그곳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아늑한 기운이 느껴졌다. 무릉도원처럼 편안하고 아늑한 느낌이 들었다.
그곳은 뜻밖에도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황토로 만든 몇 개의 작은 방들에 사람들이 대기하고 있는 것 같았다.
마당에는 닭들이 모이를 쪼고 있고 작은 호수에는 오리 떼가 먹이를 찾고 있었다.
승학은 마음이 놓이는 느낌이 들었다. 앞의 기와집에서 느낀 편안함과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승학이 여기저기를 다 돌아보기도 전에 종소리가 들렸다. 승학은 종소리가 울리는 쪽으로 갔다. 기와집 한 채가 식당인 것 같았다. 대략 20여명 정도가 식사를 하려고 앉아 있었다. 승학은 그 주변에서 잠시 멈추었다.
그 때 뒤에서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실컷 다 돌아본 거야.”
“예, 선생님, 여기 저기 보았습니다.”
“그럼, 이제 나와 함께 식사를 하도록 하게.”
그를 따라 승학은 식당의 한 구석에 앉았다.
승학은 그와 마주앉자 비로소 그를 바로 볼 수 있었다. 그는 60 대의 중후함이 느껴졌으나 50대 초반 정도로 젊게 보였다. 눈이 빛나고 피부가 밝았으며 하얀 한복을 입고 있었다. 그는 무슨 이야기를 해도 받아줄 것 같은 푸근한 느낌이 들었다.
그곳에서 식사가 준비되자 그가 승학을 바라보며 말했다.
“식사를 하게나. 음식을 오래 오래 씹으며 천천히 하는 것이 중요해.”
“예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승학은 그에게 인사를 하고 식사를 시작했다. 식사는 단촐 했다. 오곡으로 지어진 밥은 반 공기 정도였고 육류는 없었다. 채식이 주를 이루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식사 중 누구하나 시끄럽게 말을 하는 사람이 없었다. 너무나 조용했다. 승학 역시 그 분위기에 따라 아무 말 없이 밥을 먹었다. 밥을 다 먹고 나자 그가 말했다.
“자네는 나를 따라 오게.”
"예. 알겠습니다."
승학은 짧게 대답하고 그를 따라 갔다. 그는 기와집을 나와서 대나무 숲을 가로질러 걸었다. 그는 아무런 말없이 외따로 떨어진 초가집으로 갔다.
“여기 눕게, 팬티만 입고 나머지는 다 벗게.”
바닥엔 들깨 기름으로 만든 장판이 깔려 있었다. 승학은 아무 말 없이 옷을 벗고 자리에 누웠다. 그가 어떻게 할지는 알 수가 없었지만 편안한 느낌이 늘었다. 하지만 그 짧은 순간에 생사의 갈림길이 머릿속에 희미하게 그려지기 시작했다.
“음, 아주 심각한데, 언제부터 이런 상태였나.”
그는 맥을 짚어보고는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2년 3개월쯤 전에 처음 피를 토하며 쓰러졌습니다. 그 후 계속 이 상태로 낫지를 않습니다.”
“자넨 체질이 참으로 특이하네. 이 상태로 몇 년을 버틴 것이 용해. 보통 사람 같으면 이미 저승에 가 있었을 거야. 자네 명이 이렇게 긴 것을 보니, 뭔가 세상에서 할 일이 있나 보군.”
그는 손으로 승학의 몸 여기저기를 누르며 기록을 했다. 그리고 종이와 펜을 찾아서 승학에게 내밀었다.
“자네에 관해 알아볼 것이 있으니, 자세히 적어보게.”
승학이 종이를 보았을 땐, 별 것이 없었다. 타고난 생년월일시, 태어난 고향, 과거의 질병, 몸의 상태, 등의 항목이 있었다. 승학은 펜을 들고 자세히 기록하여 그에게 주었다. 그는 종이를 받아서 가만히 뭔가를 분석하고 있었다. 한문으로 된 두꺼운 책을 펼쳐 보며 붓으로 글을 쓰기도 하였다. 그러다가 다시 승학의 손목을 잡고 진맥을 하고 나서 뭔가를 생각하듯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한참을 가만히 있는 그를 보고 기다리다 못해 승학이 먼저 말을 꺼냈다.
“선생님, 무엇이 잘못된 건가요? 제가 불치의 병에 걸린 것 맞죠. 있는 그대로 속 시원하게 말씀해 주세요.”
그는 헛기침을 한번하고 난 뒤에 천천히 입을 열었다.
“자네의 병색은 상당히 깊으나 그 원인은 마음에 있네. 체질로 보면 깊은 슬픔의 기질이 병의 근원이 되었어.”
“선생님, 그게 무슨 말씀인가요?”
“말 그대로야. 병이 마음의 충격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일세. 학생은 원래 뇌신경이 약하기 때문에 충격이나 슬픔, 고통에 약한 체질이야. 게다가 상기증이 심해서 정신적 고통에 대한 감수성이 높은 편이야. 혹시 예전에 정신적인 충격이나 고통을 강하게 받은 적 있지 않았는가?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이렇게 여러 가지 질병이 겹칠 수 있겠어.”
승학은 그가 마치 족집게처럼 말하는 것을 듣고 눈물을 흘렸다.
“선생님 그래요. 맞습니다. 제가 어릴 때 세상의 유일한 끈인 친누나가 죽는 것을 보았습니다. 중, 고등학교 때는 극심한 가정불화를 겪어 고통이 심했습니다.”
“아, 그런 일이 있었군. 그래서 이토록 심하게 병사가 뼈 속까지 스며들었어.”
승학은 지난날을 돌이키며 눈물에 젖었다.
정신적인 상처란 묘한 것이었다. 깊은 외상처럼 마음속에 새겨져 있어 지울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세상으로 이어진 유일한 끈이라고 생각했던 한 존재의 죽음이 주는 충격은 엄청났다.
그것도 죽어 가는 순간을 생생하게 목격했을 때 느꼈을 충격은 상상이상이었다. 그런데다 누나의 죽음 이후에 매일 같이 통곡하는 어머니의 눈물도 고통스러웠다. 그 와중에 알콜 중독이 된 아버지의 주사도 극심했다.
그 죽음의 상처를 어머니와 아버지는 악다구니로 푸는 것 같았다. 매일 술이 떡이 된 아버지의 폭언과 폭력은 지옥의 아귀다툼과 같았다. 그것은 화상으로 문드러진 상처에 소금을 뿌린 듯한 통증이었다. 승학보다 10살 이상 나이가 많은 누나들과 형은 결혼을 했거나 외지에 있었다. 승학은 언제나 지옥의 아귀다툼을 혼자서 말려야 했고 감당했다. 어린 승학이 할 수 있는 것은 울부짖음과 두려움에 떠는 것이 고작이었다.
승학이 그 악몽 같은 기억에 진저릴 칠 때 그가 승학을 보며 말했다.
“육체적인 충격처럼 정신적인 충격도 반드시 몸으로 나타난다네. 육체적인 충격을 받았을 때도 그래. 며칠 간, 혹은 몇 달, 몇 년은 멀쩡했다가 갑자기 심한 후유증이 나타날 수도 있다네. 육체적인 충격이나 정신적인 충격은 사실상 동일한 것이라네. 예를 들면 5년 전 교통사고의 고통을 정신은 쉽게 잊어간다네. 하지만 몸속에는 잠재된 상태가 되지. 심지어 정신적 고통도 마찬가지야. 몸은 깊이 인식하고 있다가 나중에 후유증으로 나타나지. 자네의 경우에는 그런 충격과 선천적인 체질이 결합되어 병이 된 것이야.”
그는 잠시 생각하다가 다시 말했다.
“보통의 폐결핵이나 신장염, 위염 등은 이즈음 약이 좋아 빨리 치유가 되네. 하지만, 자네처럼 뇌의 신경쇠약이 겹칠 경우 치료는 참 힘이 들어.”
그는 침착하게 말하며 승학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승학은 다시 절망을 느꼈다. 가느다란 희망이 보이는 것도 같고 다시 벼랑 끝에 선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