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불려석(朝不慮夕): 절박하여 아침에 저녁일을 알지 못한다는 뜻이다.
<이 글은 28 체질의학의 발견과 연구, 의통의 전수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한민족 고유의 의통을 둘러싼 비밀과 음모, 천고의 비법 등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환단고기에서 동의수세보원에 이르기까지의 한민족 의통이 21세기에 세계 최고의 의학으로 대두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밝힌다. 각종 역병과 괴질, 난치병과 불치병을 고칠 수 있는 '의통과 해인'은 어디에 있는가? 그것을 찾는 사람이 천하를 구할 것이라는 예언이 실현될 것인가? 이 소설은 그 의문과 해답을 동시에 던질 것이다.>
4. 우주의 이치와 인연이 삶을 이끌어간다.
승학은 완전히 기력이 쇠진한 몸으로 죽음의 여행을 결심했다.
서서히 죽어 가는 것보다는 차라리 스스로 생사의 갈림길을 가고 싶었다. 창백하고 뼈만 남은 몰골로 기차에 몸을 싣고 대전역을 향하여 무작정 출발했다. 승학은 간신히 몸을 추슬러 앉아 있었다. 죽기 전에 계룡산을 보고 싶었다.
승학이 저녁 늦게 대전 역에 도착했을 때는 거의 술 취한 사람처럼 비틀거렸다. 조금 가다가 벤치에 앉아있을 때, 계속해서 누군가가 승학을 쳐다보는 것을 느꼈다. 한복을 입은 도인 풍의 사람이 승학의 곁에 왔다.
“학생은 어디가 심각하게 아픈가?”
“예, 폐결핵에 다른 합병증이 있다고 합니다.”
“그 몸으로 여기는 왜 왔나?”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계룡산을 한번 볼까 해서 왔습니다.”
그는 승학을 이리저리 살펴보고는 말했다.
“나를 따라오게.”
승학은 깊이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마치 자석에 끌리는 쇠 부스러기처럼 그를 따라 일어섰다. 그는 근처에서 차를 파킹시켜 놓은 모양이었다. 승학은 그 차를 탔다. 그리고 이내 잠이 들었다.
승학이 의식을 찾았을 때, 희미하게 들려오는 댓잎 흔들리는 소리를 들었다. 아무 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바람소리와 댓잎 흔들리는 소리만 들렸다. 살그머니 눈을 떠보아도 곁에 아무도 없었다.
한참을 기다려도 아무런 소리가 없어 밖으로 나왔다.
승학이 머물던 방은 대나무 숲이 병풍처럼 둘러싼 기와집이었다. 자세히 보니, 약방인 것 같았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늘 가던 약방과는 사뭇 달랐다. 약방의 분위기 자체가 특별했다. 그곳은 약방이라 하기보다는 산기슭의 대나무 숲으로 둘러싸인 조용한 선비의 집 같았다. 대문에는 수선제라는 한문이 음각되어 있었다. 어디를 보아도 한약방 분위기는 나지 않았다. 약초봉지를 여기저기 매달아 놓은 것도 아니고 약 냄새도 나지 않았다. 멀리서 보면 선비의 집 같고 가까이서 보면 대감마님의 집 같았다. 태극무늬가 크게 새겨진 대문과 기와가 특이했다. 기둥 벽엔 여러 가지 한문의 조각들이 고풍스러웠다.
승학은 그곳의 특별한 분위기에 어리둥절해졌다.
많은 곳을 다녔지만 이렇게 특별한 곳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승학은 조용히 마당의 정원으로 나와서 쪼그려 앉았다. 마당에는 때마침 봄을 알리는 개나리가 한창이었다. 노란 꽃잎들이 겨울을 이긴 기쁨을 제각기 나타내고 있는 것 같았다. 개나리꽃잎과 대나무 숲의 무수한 잎들이 편안하고 아늑한 분위기를 자아내게 했다.
한참을 그렇게 앉아 있자 오랜만에 안온한 느낌이 들었다.
그것은 참으로 묘한 일이었다. 2년 동안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안도감이었다. 승학의 가슴에서 아지랑이 같이 미세한 떨림과 희망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이제 일어났나?”
“예, 일어났습니다. 근데, 여긴 어딥니까?”
“여긴 계룡산의 천황봉과 연천봉의 기운이 곧장 내려오는 비천대라는 곳이야. 이 산 뒤가 바로 계룡산 주봉으로 이어져 있지. 자네 좀 전에 여기저기 둘러보았으니 여기가 약방이란 것을 알았을 테지. 나는 여기의 의원일세.”
그는 승학의 궁금증을 한꺼번에 다 해소시켜 주었다.
“그럼 저 산이 제가 그토록 보고 싶어 했던 계룡산이란 말인가요?”
“그래. 자네는 차에 타자말자 곧 의식을 잃었지. 자네를 자리에 눕히느라 힘이 들었네, 허허허, 깡마른 사람이 축 늘어지니까 무겁기만 하더군. 혜린이가 없었다면 혼자서는 어림도 없었을 뻔했어.”
승학은 깜짝 놀랐다.
혜린이라면 여자이름이었기 때문이었다. 축 늘어진 몸을 여자가 내렸다니, 갑자기 부끄러워졌다.
“그럼, 선생님, 혜린이라면 여자 이름 같은데요.”
“허허 왜 사내가 여자한테 신세를 진 것 같아 부끄러운가. 혜린은 여기 가끔씩 와서 수련을 하는 여대생이야. 어젠 수련생도 없고 때마침 혜린이 와있어서 함께 자네를 옮겼지.”
“아. 그러신가요. 제가 의식이 없었지만 좀 부끄럽습니다.”
승학이 부끄러워하며 고개를 숙이고 대답했다.
“살다 보면 그럴 때도 있는 거야. 그럼 혼자서 조용히 산책이나 하게나. 아침식사는 조금 후에 할 테니까 종소리가 들리면 저기 식당으로 와.”
승학은 그가 돌아서려 할 때에야 인사를 하지 못했음을 퍼뜩 깨달았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초면인데, 이렇게 까지 폐를 끼치게 되었습니다. 선생님 존함을 좀 알 수 있을까요?”
그는 웃으며 말했다.
“나는 일개 시골에 묻혀 사는 이름 없는 의원이야. 함자랄 것까지 없고 손계환이라고 하네, 자네는 말씨가 경상도 같은데, 고향이 어딘가?”
“예, 포항입니다. 제 이름은 유승학입니다.”
“그래, 유승학, 이름 하나 좋구나. 공부를 참 많이 해야 할 이름이네.”
그는 그렇게 말하며 잠시 승학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 순간 승학은 불현듯 왜 그가 자신을 여기 데리고 왔는지가 궁금해졌다. 어떻게 말할까를 생각하다가 조심스럽게 운을 뗐다.
“한 가지 궁금한 점이 있습니다.”
“그게 뭔가? 말해 보게”
승학은 숨을 한번 들이키고 천천히 말했다.
“왜 저를 이곳으로 데리고 오셨는지요? 저는 유명하다는 병원이나 의원을 다녔지만 가능성이 없다고 들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생사를 하늘에 맡기고자 계룡산행을 결심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와 있다는 사실이 너무 놀랍습니다.”
그는 승학의 말을 들으며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다가 말했다.
“우주의 이치는 단 한 치의 허점도 없다네. 자네가 여기 왔다는 것은 깊은 인연의 끈이 있음을 뜻하는 것이야. 우연이란 것은 없다네. 우리 삶의 모든 것이 우주과학에 속해 있지. 아무리 과학이 발달해도 그것을 밝히기는 어렵지. 우리가 만난 이유는 때가 되면 천천히 설명해 주겠네.”
그는 알 듯 모를 듯한 미소를 지으며 떠났다.
그가 가는 뒷모습을 물끄러미 보며 승학은 ‘우주와 인연’이란 말을 생각했다.
‘우주의 이치와 인연이란 것이 과연 있는 것일까?’
잠시 생각을 하는 사이에 승학은 다시 마음이 불편해졌다. 죽기로 각오하고 나선 길이지만 생면부지의 사람을 만나 폐를 끼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승학은 마음을 다 잡고 우선 집 근처를 산책하기로 했다.
복잡한 생각은 나중에 하기로 했다.
약방은 멀리서 보기와는 다르게 이중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며칠 뒤에 안 사실이지만, 앞의 기와집은 사람이 사는 곳이 아니었다. 명상이나 참선수행을 하는 곳이었다.
약으로도 안 되는 마음의 병을 치유하기 위한 일종의 수련센터인 것이었다. 그 구조 역시 특이하게 태극을 형상화해서 앞쪽의 수련하는 기와집은 조용했다. 반면 뒤쪽의 한약방은 시끄러운 분위기였다.
자세히 보면, 멀리서 볼 때는 대나무 숲에 싸여 있는 기와집만 보였다. 하지만 내부의 대나무 숲 뒤편으로 길이 연결되어 실제 한약방이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