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체질의학 소설> 위약조로

위약조로(危若朝露): 위태롭기가 마치 아침이슬과 같다는 뜻이다.

by 백승헌

<이 글은 28 체질의학의 발견과 연구, 의통의 전수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한민족 고유의 의통을 둘러싼 비밀과 음모, 천고의 비법 등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환단고기에서 동의수세보원에 이르기까지의 한민족 의통이 21세기에 세계 최고의 의학으로 대두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밝힌다. 각종 역병과 괴질, 난치병과 불치병을 고칠 수 있는 '의통과 해인'은 어디에 있는가? 그것을 찾는 사람이 천하를 구할 것이라는 예언이 실현될 것인가? 이 소설은 그 의문과 해답을 동시에 던질 것이다.>


2. 과거의 사건 속에 미래의 나침반이 있다.


승학은 길게 한숨을 내 쉬며 눈물이 비치는 심정으로 혼자서 중얼거렸다.

나는 왜 이 길을 가는가?’

심연 깊숙이 하나의 의문을 던졌다.

승학은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고 싶어 했다. 하지만 남들처럼 살 수 없는 운명이었다. 남들과 다르게 살아야 했던 지난 시절이 그랬다. 설명할 수 없는 그 무엇이 끝내 이 길을 선택하게 했다.

승학은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산등성이의 굽어진 길을 돌아섰다. 그 길은 갑자기 컴컴해졌다.

숲의 눅눅한 향내와 빛을 가린 잎사귀들의 그림자들이 일렁거렸다. 승학은 후렛쉬를 꺼내 불을 켰다. 그러자 후렛쉬 빛이 영화관의 영사기 빛처럼 어둠을 밝혔다. 어둠에 묻힌 사물들이 후렛쉬의 빛이 통과하는 부분에서는 제 모습을 드러냈다. 비취는 것만 볼 수 있는 후렛쉬의 빛은 인간의 운명과 비슷하다고 승학은 생각했다.

운명은 선택을 통해 결정이 된다. 어떤 일에도 원인이 있고 결과가 있다. 승학을 여기까지 오게 했던 까마득한 기억들이 떠올랐다. 운명적 사건들이 하나의 점이 되어 일직선으로 승학의 뇌리로 연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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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캄한 밤이었다.

초저녁부터 시작된 심한 비명소리가 어둠을 가르고 있었다.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고통의 신음소리에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극한의 비명으로 피울음소리가 섞여 있었다.

더 이상은 견딜 수 없다는 한계선에 도달한 울음소리였다.

승학은 눈을 뜨고 천장을 바라보았다. 누이의 고통을 곁에서 느끼지만 어찌할 수가 없었다. 고통스러운 흐느낌을 따라 눈물이 흘러내렸다. 어머니는 곁에 앉아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아파. 엄마 아파 죽겠어. 엄마, 엄마, 나 좀 살려줘.”

“조금만 참아라. 날만 밝으면 병원에 가자. 조금만 참어.”

“엄마, 아파. 빨리 병원에 가. 빨리 병원에 데려다줘.”

“그래. 조금만 참아.”

다급하게 소리치는 누나보다 곁에서 달래는 어머니의 목소리에 더한 아픔에 얼룩져 있었다.

아픈 누나도 간호하는 어머니도 같이 죽어 가는 것 같았다.

새벽의 끝자락이 다가올 때, 어머니는 밥을 하러 부엌으로 나갔다. 아버지는 차편을 알아보러 바깥으로 나갔다. 소도시에서 100리 길이나 떨어진 산골에서 교통수단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아버지는 10리쯤 떨어진 읍내까지 걸어가서 전화로 차를 불러야 했다.

승학은 비명이 잦아들면서부터 조금씩 잠이 들어가려던 참이었다. 그때였다. 애타게 엄마를 찾던 목소리가 잦아들었다. 대신에 이상하고 불길한 숨소리가 들여왔다.

“꺼엌, 으윽, 꺼엌, 으윽”

너무나 불규칙적이고 불길한 예감을 일으키는 소리였다.

면도칼을 시멘트 바닥에 대고 깎아 내는 듯한 그 소리에 잠이 확 달아났다. 승학은 벌떡 일어나 앉아 그녀를 보았다. 그때,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입을 반쯤 벌리고 마지막 거친 숨을 몰아쉬는 누나의 모습을 보았던 것이다. 눈은 이리저리 어지럽게 돌아가고, 입은 벌려진 채 의식이 없는 상태였다. 한 번도 인간이 죽어가는 모습을 본 적은 없었지만 죽음의 느낌이었다. 승학은 고함을 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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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큰일 났어. 엄마 큰일 났어.”

황급히 어머니가 들어왔다. 그리고 이제 신음소리도 그친 몸을 사정없이 흔들었다.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어머니는 숨이 넘어갈 듯이 울며 소리쳤다..

“숙아, 숙아, 진숙아, 눈뜨고 말을 해라. 너 왜 이러고 있냐. 빨리 눈뜨고 말해.”

울음소리는 통곡으로 바뀌어 하늘과 땅을 울리고 있었다. 승학도 함께 울었다.

좁은 시골 동네에서 울리는 소리들은 바로 옆집으로 전해진다. 이웃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제각기 혀를 찼다.

“어허, 이 일을 어찌하나.”

아버지는 날이 완전히 밝아진 연후에야 낡은 터럭 한 대를 타고 왔다. 집 가까이 오면서 울음소리를 듣고 이미 예감한 듯 눈이 붉어있었다. 겨우 낡은 터럭 하나를 빌려왔지만 늦었던 것이다.

아버지는 이미 저세상으로 떠난 여식을 보며 땅을 치고 통곡했다. 짐승의 울음소리 같은 통곡이 초가집을 흔들 듯이 울렸다. 그날, 한 생명이 간 것이었다. 해가 뜨기 직전에 바쁘게 세상을 떠난 것이었다.

누나의 나이 13세, 피지도 못한 꽃송이가 진 것이었다. 그때 승학의 나이 11세, 죽음이 뭔지도 몰랐었다.


그날 승학은 무덤까지는 따라가지 못했다.

충격을 받을지도 모르기 때문에 집에 혼자 남겨졌다. 승학이 마지막으로 본 것은 목관에 시신을 넣어 못질하는 것이었다. 승학은 그날 저녁이 될 때까지 홀로 그 큰집을 배회했다. 눈물로 범벅이 된 집안의 구석구석에 추억들이 귀기 어리게 기어 다니는 것 같았다. 승학은 뒷마당에 숨어 혼자 울었다. 그날 승학은 혼자 소리로 중얼거렸다.

'누나가 죽었다. 누나가 죽었어. 못질 한 나무 관에 갇혀 흙 속에 묻히면 다시는 못 보는 것이겠지.’

그날 이후 통곡소리는 한 달간을 계속해서 흘러나왔다. 승학은 외롭고 무서웠다. 밤에는 누나의 귀신이 찾아올 것 같은 두려움에 시달렸다. 늘 곁에서 함께 했던 따뜻한 느낌들이 음산한 기운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세상에 아무도 없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죽음의 고통을 일찍 알아버린 인간은 끝없는 의문을 가지게 되어 있다. 승학이 그랬다. 인간의 삶과 죽음에 대한 의문을 풀 수 있는 독서와 명상을 했다.

승학은 죽음을 통해 중학교에 들어가기도 전에 이미 수행자가 되어 있었다. 삶과 죽음에 대한 생각들이 하나의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것은 운명의 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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