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생유명(死生有命): 죽고 사는 것은 운명에 달려 있다는 뜻이다.
<이 글은 28체질의학의 발견과 연구, 의통의 전수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한민족 고유의 의통을 둘러싼 비밀과 음모, 천고의 비법 등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환단고기에서 동의수세보원에 이르기까지의 한민족 의통이 21세기에 세계 최고의 의학으로 대두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밝힌다. 각종 역병과 괴질, 난치병과 불치병을 고칠 수 있는 '의통과 해인'은 어디에 있는가? 그것을 찾는 사람이 천하를 구할 것이라는 예언이 실현될 것인가? 이 소설은 그 의문과 해답을 동시에 던질 것이다.>
1. 입산수행
비 내리는 저녁 무렵이 되어 선지 어둠이 더 빠르게 몰려오고 있었다.
밤꽃냄새가 짙게 베이는 산등성이 초입에는 수풀이 무성했다. 오후부터 내리기 시작한 빗줄기는 더욱 굵어지고 있었다. 번개가 칠 때마다 순간적으로 앞길이 밝아졌다가 어두워지곤 하였다. 반쯤 열린 차창으로 빗물이 튀겨 들어오고 있었다. 하지만 차 안에 있는 두 사람은 무거운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윈도의 브러시만이 혼자 소리를 내며 창을 닦고 있었다. 승학은 운전대에서 손을 떼며 굳게 다문 입을 열었다.
“중산아, 이제 가야겠다.”
“선생님, 비가 이렇게 오는데, 꼭 오늘 가셔야 합니까?”
“오늘이 경신일이니까, 육경의 도를 통해 동의수세보원의 비밀을 찾아야 해. 저렇게 비가 오지만 구름 위에는 삼태성이 비치는 날이야. 오늘밤 가야 한다.”
승학은 시간을 지체할 수 없는 상황인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지금 가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위험성을 안고 있으면서도 떠나야 했다. 곁에서 지켜보던 중산은 걱정이 되는 눈빛으로 함께 떠날 것을 부탁했다.
“선생님, 꼭 가셔야 된다면 저도 같이 가겠습니다. 차라리 도시가 안전하지 않겠습니까? 산속에 혼자 계시다간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르지 않습니까?”
승학은 중산에게 설명을 해주어야 했다.
“물론 도시가 안전할 수는 있다. 그러나 이 공부는 반드시 산의 정기를 얻어야만 할 수 있는 것이야. 태극의 도를 깨치려면 금계포란형의 형세를 가진 산에서 자궁혈을 찾아야 해. 내가 이산에서 수행을 하면서 일찍이 그 자리를 찾아두었어. 아마 그곳은 그 누구도 찾을 수 없을 것이야. 레이더망에도 걸리지 않을 거야. “
“선생님, 그 자궁혈이 바로 이산 어딘가에 있다는 말씀인가요?”
“그래. 일찍이 스승님께서 내게 알려주신 거야. 단, 그 자궁혈은 그 누구도 함께 가서는 안 된다는 당부말씀이 있었어. 왜냐하면 수많은 정충이 있지만 단 하나의 정자만이 난자를 만나서 자궁혈에 가게 되어 있거든.”
중산은 신기한 듯이 물었다.
“그런 의미심장한 뜻이 있었군요. 그런데 정자는 양의 기니까, 남성을 의미하지만 자궁혈에 난자가 있나요?”
“있지. 뚜렷이 난자의 형상이 있고 동굴 안이 물이 흐르고 있어. 텐트를 치지 않으면 안 돼. 또한 거기에선 절대로 불을 피워 음식을 만들어 먹으면 안 돼.”
중산은 뭔가 알겠다는 듯이 말했다.
“그래서 초나 라이터를 가지고 가지 않는군요. 음식도 콩과 쌀, 말린 솔잎으로 만든 환만 드시는군요.”
“산에서 수련할 때는 일체의 화식을 해선 안 되는 거야. 생식을 해야 하지. 아마 화식을 한다 하면 내가 짐이 무거워 혼자 갈 수도 없을 거야. 또 산에 가서도 음식 준비한다고 수시로 내려와야 할 거야.”
승학은 중산의 걱정을 덜어주려는 듯 긴장감을 떨치고 자세한 설명을 하였다.
그러나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다. 내면에 깃들어 있는 소명감이 활시위처럼 단단히 당겨져 있는 상태에서 긴장감이 팽팽했다. 더욱이 어느 날부터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은 유림에 대한 생각들이 의식사이를 맴돌았다.
유림은 승학과 함께 미국에 가기를 원했다.
“우리는 이제 막 서로를 찾았고 확인했어요. 이젠 헤어지지 말아요. 우리 미국으로 가요.”
승학도 그렇게 하고 싶었으나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제가 할 수 있는 말은 기다려달라는 말밖에 할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이해하시기 어려우시겠지만 저는 이미 천년동안 당신을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타고난 소명을 마쳐야만 또 다른 소명이 이루어집니다. 당신이 소중하지만 또 다른 소명을 팽개칠 수는 없습니다. 기다려주십시오.”
그렇게 말하며, 승학은 소명감을 자세히 말해주었다. 사실 승학은 유림에게 맘속으로 이렇게 말했다.
'나 역시 떠나고 싶다고, 당신과 함께 있고 싶다고'
그 말은 끝내 꺼낼 수가 없었다. 유림은 내색은 않았지만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승학은 고개를 저었다.
유림의 마음을 느끼고 있었지만 대의를 따라야 했던 것이다.
자신도 어찌할 수 없는 깊은 그리움이란 것이 있다.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슬픔처럼, 마치 어느 날 폭탄의 미세한 파편 한 조각이 뼛 속에 박힌 것처럼, 풀 수 없는 그리움은 고통을 우러나게 하는 것이다. 승학은 유림을 고통스럽게 떠나보내야 했다. 어쩔 수가 없었다. 승학은 유림에게 간절하게 말했다.
“이번 세기의 천년은 지나가야 합니다. 밀레니엄이 오면 우리는 함께 뜻을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녜. 그렇게 믿고 있을게요. 영혼의 파장이 함께 한다면 거리나 시간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겠죠.”
승학은 그렇게 유림을 보낸 뒤 혼자 말로 한동안 똑같은 말을 반복해서 중얼거렸다.
‘설명되어질 수 없는 것, 해소되지 않을 갈증들, 다 무엇이란 말인가’
키워드를 검색하듯 그 말을 깊이 생각하곤 했다. 하지만 승학은 그런 생각보다 더 중요한 천명을 떠올렸다.
승학의 상황과 맞물린 시간은 촉박하였다. 동의수세보원이 쓰인 날로부터 100년 후의 첫 경신일은 대스승과의 첫 번째 약속이었다. 입산수도를 하면서 숨겨진 비의를 연구하라는 대스승의 엄명이 있었다. 경신일 수도는 음력 달력에 표기되는 경신일에만 행해진다. 경신일은 60일마다 돌아오며 수행 시에는 24시간 잠을 자지 않고 집중해야 하는 우리 민족의 수련법이다. 그날은 잠시 졸아서도 안되고 정신이 흩트려져도 안 된다는 것이다. 고도의 정신력을 가졌을 때야만 통과되는 엄중한 의식의 하나이다.
잠시 생각을 하는 순간에 중산이 걱정 어린 눈빛으로 다시 말했다.
“선생님, 제가 근처까지 따라갔다가 다시 오면 안 되겠습니까?”
“수행자의 길은 언제나 혼자 가야 하는 거야. 너는 앞으로 49일 후에 바로 이 자리에 다시 오도록 해라.”
“알겠습니다. 명하시는 대로 하겠습니다. 저는 선생님이 이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비 오는 밤길을 어찌 가실까 걱정이 됩니다.”
중산은 걱정을 했다. 하지만 승학의 마음은 확고부동한 것이었다. 언제나 혼자서 이 길을 걸어 올라가서 수행을 했었기 때문에 익숙한 터였다. 중산의 걱정 어린 눈빛을 뒤로하고 승학은 산속으로 들어갔다.
도로에서 접한 길을 벗어나자 길게 자란 수풀들이 뱀의 혀처럼 날름거리며 길을 막고 있는 것 같았다.
축축한 비 내음이 온몸으로 파고 들어왔다. 승학은 자신이 나아가야 할 길이 마치 생과 사의 갈림길같이 적막해져 옴을 느꼈다. 그러나 내쳐진 길에서 머뭇거릴 수는 없었다.
승학은 터널 같은 어둠 속을 걸어 들어갔다. 비는 여전히 추적거리며 내렸다. 무거운 배낭의 무게를 지탱하는 몸이 가파른 경사 길에 비척거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