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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름빛 Jun 29. 2023

신혼? 달달함과 현실의 경계 그 어딘가

맞벌이 부부의 신혼은 현실 적응 과정이다.

“신혼이니 요즘 행복하지?”

“어때? 매일 깨가 쏟아지나?”


요즘 자주 듣는 물음들이다. 나도 예전에는 가볍게, 그런 질문을 인사치레로 던졌던 것 같다. 그런데 결혼을 해보니 그 모든 말이 농이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나는 열심히 깨를 볶고, 짜고 그러고 있다. 신랑의 출근 시간에 맞춰 함께 일어나주고 함께 침대에 누워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다가 잠이 든다.


그런데, 만만치 않게 힘들다. 결혼, 이사 등의 거사는 한 해에 동시에 진행하면 많이 힘들다더니… 그런 말이 그냥 나온 것이 아니구나 새삼 느낀다.


나는 다르겠지 생각했다. 나이도 있으니 신혼이라고 특별히 유난 떨지 않을 것이라 자신했고 적당히 살면 되지 뭐가 힘든가 싶었다.


경험해 보니, 힘들다. 마음이 아니라 몸이!

오늘도 가구를 받기 위해 조퇴해서 소파에 잠깐 눕는다는 것이 1시간 반이나 보내버렸다. 등짝이 아파서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기에 쓰러지듯 잠이 든 것이다. 뭐가 이렇게 힘드냐고..?


우리는 맞벌이 가정이다. 내 경우 7:30에 일터로 출발하고, 저녁 6:00에 집에 도착한다. 꽤나 이상적이고, 쾌적한 루틴이다. 문제는 아침을 준비하기에 내 몸이 너무 무겁고, 저녁을 준비하고 치우면 밤 9시가 넘어버린다는 사실이다. 하루라는 시간이, 밥 세번 먹으면 끝나는 덧없는 시간처럼 느껴진다.


거기에 청소와 빨래라는 복병도 숨어 있다. 중간 중간 아직 정리하지 못한 옷을 정리해서 수납하거나 늦게 구매한 서랍장 조립 등의 일 또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여기에 현재 학교는 학기말 평가 마무리로 매우 바쁜 시즌이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눈코뜰새 없이 바쁘다.


주말에도 밥은 세끼 챙겨 먹어야 한다. 냉장고에 넣어두기만 하면 만사 오케이인 줄 알았는데 내가 무엇을 그리 잘못하는지 중간 중간 콩나물 무침이 상하거나 오이가 무른다. 호기롭게 사둔 처치 곤란의 과일도 주말을 틈타 먹어야 한다. 그러다 보니 주말도 순식간에 사라진다.


오늘 친한 선생님에게 물었다.


“언제쯤이면 저녁을 먹고 다 치워도 9시가 넘지 않나요?”


슬프게도 이제 결혼 4년차인 선생님도, 10년차인 선생님도 저녁을 사먹지 않는 이상 8-9시쯤 되어야 끝날 거란 비보를 전해 주셨다. 결혼 전에 밥을 먹고 7:30에 운동을 가던 내 생활이 엄마의 도움으로 인한 사치였다는 걸 이제서야 깨닫는다.


그래도 신혼이라 즐겁다.

체력이 달려서 점심 시간마다 졸고 몸살 기운을 달고 살지만 그래도 밤 9시까지 매일 저녁을 해서 먹는 이유는 함께 지지고 볶으면 실수하기도 하는 그 시간에 느끼는 소소한 행복 때문이다. 내가 실수할까봐 신랑이 칼질을 하고, 가끔은 남은 치킨으로 치밥을 만들기도 한다. 거의 매일 밤 맥주나 와인을 곁들이면서 가족들과 함께 살던 때에는 해보지 못했던 사치스런 밤을 보내고 있다. 그 행복, 즐거움은 엄마의 따뜻한 밥상이 주는 그것과는 또 다르다. 함께 삶을 ‘이루어 나가고 있다.’는 성취감, 누군가를 위해 나를 조금씩 내려놓는 느낌이 싫지만은 않다.


결혼 전의 나는 맞벌이 하는 여성이 아침을 하는 것이 싫었다. 함께 돈을 버는데 왜 여자만 희생해야 하는 것인가 하는 생각도 있었다. 그런데 지금의 나는 좀 달라진 것 같다. 가끔 일찍 일어나 신랑을 위해 도시락을 싸기도 하는 기염을 토한다. 저녁 때에도 본인이 식사 준비를 하겠다는 신랑을 밀어내고 내가 힘듦을 자초하기도 한다.


이 모든 것의 이유는 나의 배려로 그가 행복해하고, 고마워 하는 모습에서 만족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가 고마워 하고, 미안해 하는 동안에는 나만 희생한다는 생각은 접어둘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힘들고 아침에 일어나지 못할 때면 그가 기꺼이 밥을 해 주고 청소를 하니까.


결혼은 나의 또 하나의 자아를 발견하게 해준다. 내가 이런 사람이었나 싶은 순간들이 많다. 위치가 변하니 새롭게 보이는 것도 생긴다. 과거에는 길거리에 커플만 득실거리는 것 같더니 요즘은 눈에 보이는 사람들마다 신혼부부 같다. 이제 인생의 새로운 길로 들어서고 있는 것 같다. 무사히 이 길에 적응도 하고, 달달함도 잃지 않는 가족으로 성장할 수 있기를 바란다.


(아, 3040의 신혼부부도 달달하다. 어디가서 신혼이라고 말하기엔 나이가 너무 많나 싶다가도, 우리도 못지 않게 풋풋하다 싶은 순간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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