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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름빛 Jan 29. 2024

매일 아침밥을 해준다는 것

맞벌이 직장인, 그래도 아침밥을 해주고 싶은 모순된 마음.

누군가와 연애를 시작할 때 마다 내가 날을 세웠던 주제가 있다. 바로 '아침밥' 문제이다.

많은 남자들과 무수히 싸웠다. 이상형이 밥해주는 여자라는 남자를 만나면, 쏘아붙이기 바빴다.


요즘은 여자들도 다 일을 하는데, 돈을 버는데, 대학을 나왔는데- 

왜 너의 아침밥을 책임져야 하니? 


그렇게 말해왔다. 그래서 연애할 때 꼭 아침밥을 먹어야 한다던가, 국이 없으면 안된다는 그런 남자들을 많이도 걸러냈다. '꼭'이라는 것이 싫었다. 사랑을 이유로 나에게 프레임을 씌우는 그 느낌에 반발심이 생겼다. 역할을 구분짓는 그 말이 싫었다. '아침밥'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것이라면 왜 남편은 아내에게 밥을 해줄 수 없는거지? 그게 참 의아했다. 오래된 남녀의 일. 그리고 그 일들을 '본성의 차이'라고 주장하던 사람들도 싫어했다. 인간은 모두 '사회화'되기 마련인데, 그 방향성이 잘못된 걸 지적하지 않고 원래 날 때부터 그랬다고 주장한다고? 싫었다.


그러던 내가 결혼 후에 아침밥을 한다.

신혼여행을 다녀오고 6월부터 11월 30일인 오늘까지.

꼬박 5개월을 하루도 빠지지 않고 계속.

수면 시간을 무려 45분 정도 반납하고, 신랑의 출근 시간에 맞춰 일어나

그렇게 싫어하던 '아침밥'을 한다.


신랑은 수지 맞았다고 좋아한다. 동료들에게 아침을 해주는 아내가 있다는 것을 자랑하고, 자신이 얼마나 행복한지 나에게 말한다. 처음에는 그가 하는 그 행복의 말이 사실은 조금 부끄러웠다. 내가 지향했던 여성상에서 벗어나고 있는 내 모습이 생경했다. 


결혼 전에 나는 분명 절대 아침밥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고, 그에게 단언했다. 그래서 아침을 먹는 사람이지만 먹고 출근하면 부대낀다는 그가 마음이 들었다. 맞벌이하면서 아침 차려달라고 요구하면 안된다고 신신당부하셨던 시어머니도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신랑은 자신의 욕심을 내려놓았고, 나는 적당히 알아서 먹고 다녀야지- 라고 생각하며 함께 살기 시작했다.


왜 아침밥을 싸기 시작했는지는 잘 생각이 나지 않는다. 


내가 기억하는 시작은 '예쁜 도시락을 사는 것'부터이다. 처음에는 드디어 내 부엌에서 내 맘대로 '내 도시락'을 먹고 싶은 것 위주로 쌀 수 있다는 생각에 예쁜 도시락을 샀다. 신랑 것도 살까 하다가 '김밥사서 다닐텐데 굳이?' 라는 마음으로 내 것만 샀다. 그리고 결혼 후 우리의 첫 출근일. 나는 예쁜 통에 과일을 깎아서 담아갔다. 신랑은 친정에서 가지고 온 떡이 맛있다며 얼려놓은 떡을 아침에 가져가겠다고 했다. 그래서 그걸 냉장실에 넣어놨었다. 그렇게 무난한 한주가 시작됐다. 


그런데 새로운 시작에 긴장이 됐는지 아침만 되면 신랑이 일어나기도 전에 내 눈이 먼저 떠졌다. 원래 7시쯤에만 일어나면 되는데 6시 15분부터 눈이 떠진다. 부모님과 함께 살 때는 7시가 돼도 뒤척이느라 일어나는 시간이 늦어지기 일쑤였는데, 책임감이라는 게 이렇게 무섭다. 그렇게 눈을 뜨고 나서 일어난 김에 냉장고에 있는 떡을 아무 통에나 싸줬다. 신랑이 씻는 동안에 멍때리고 뉴스를 보다가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나는 자차로 출근을 한다. 신랑은 우리 친정 근처로 보금자리를 잡은 후 지하철을 타고 1시간 남짓 지하철을 타고 출근한다. 아침을 먹고 출근하면 속이 부대낀다는 그의 말은 지하철이 그만큼 답답하다는 것에 대한 표현이었다. 그래서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그 안쓰러운 마음에 냉동실에서 떡을 꺼내, 전자레인지에 돌리고 도시락에 떡을 넣어서 건넸다.

그런데 신랑이 감격을 하면서 출근을 한다. 아침에 눈뜨기도 힘들어 보이는데 냉장고에 있는 떡을 통에 싸준 것만으로도 '신혼'이라고 생각했는지 고맙다고 여러번 이야기를 했다. 그 말을 듣고 있으니 이상하게도 기운이 났다. 


그렇게 2주간은 떡만 싸줬다. 2주가 지나고 나니, 신랑은 다시 김밥을 사가겠다고 했다. 떡이 물린 모양이다. 그즈음 나는 요리에 재미를 붙였다. 그래서 아침에 샌드위치를 만들어서 주었다. 그 다음주에는 밧드를 산 김에 김밥을 싸보았고 그렇게 한달, 두달이 흘렀다.


나는 안쓰러운 마음 때문에 아침밥을 해주는 아내가 되었다. 그런데 6개월이 지난 지금도 아침밥을 하며 여전히 신이 난다. 그 6개월 동안 아침밥을 할 때 마다 스스로에게 물었다.


 - 너는 왜 아침밥을 하는 거야? 너도 맞벌이를 하잖아. 힘들잖아. 남녀의 역할을 구분짓는 게 싫다고 했잖아.


나는 그 대답을 어느날 일기에 적었다.


 "나는 사실 요리를 좋아한다. 결혼을 하고 처음 발견하게 되었다. 그런데도 신랑이 그걸 당연하게 여겼다면 하기 싫었을텐데 '인정'해주니 자꾸만 하고 싶어진다. 고마워하니 자꾸 예뻐보인다. 고마워하는 것, 인정하는 것. 회사에서도 인정받고, 승진하고 그래야 동력이 생기는 것과 집안일이 비슷한 모양이다. 좋아하는 일인데다가 나의 노고를 알아주니 하고싶어질 수밖에."


사랑으로 아침밥을 하기 시작했고, 그 사랑에 대해 고마워하고 인정해주니 더 표현하게 된다. 게다가 신랑은 부엌일을 제외한 나머지 집안일을 본인이 한다. 그리고 잊을 만하면 말한다. 아침을 해주는 사람이 있어서 행복하고 고맙다고. 


나는 결국 뻔한 여자가 되었다. 내가 싫어했던 여자가 되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출근하는 신랑의 아침 도시락을 싸주는 아내. 


나에게 '사랑의 언어'는 '인정의 말'이다. 그 말들이 나를 움직이게 했다. 올바른 사랑의 언어가, 나를 향한 고마움의 마음이 나를 요리하게 만들었다. 사실은 좋아했는데도, 스스로가 만든 또다른 프레임 때문에 안하고자 했던 그 요리. 한마디의 말로 천냥빚도 갚는다는데, 그는 고마움의 말로 아침밥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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