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외를 깎다가 뭉그러지는 나를 바라본 날
술을 마시면 꼭 지인들에게 문자를 보내던 습관이 20대에 생겨버렸다. 주변에서는 나에게 '술만 마시면 귀여워 지더라.' '술을 마셔야 너는 네 이야기를 해.'라고 말했던 걸로 보아, 나는 술을 마셔야 마음을 조금이나마 여는 사람이었던 것 같다. 사람의 본질은 어디가지 않는다.
결혼을 했는데도, 술을 마셔야 친구들에게 카톡을 먼저 보낸다. 사람을 만나는 걸 싫어하는 것도 아닌데 먼저 누군가에게 만나자고 연락을 하려고 할 때마다 아마도 바쁠 친구의 계획을 가늠하게 되고 갑자기 읽어야 할 책이 생각나기도 한다. 그래서 수많은 핑계를 대며 연락하기를 미룬다. 그렇게 혼자 있는 것이, 혹은 가족들과 있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
그런데 외롭다. 그래서 술을 마시면 그동안 부채처럼 쌓여있던 연락을 여기저기 던진다. 소심하고, 조심스럽게. 전여친도 아닌데 '뭐해?' 혹은 '우리 한번 봐야지!' 그렇게 만날 약속을 잡고 다음 날 아침에 카톡을 다시 확인하면 갑작스럽게 사람을 만나야 할 약속이 가득 차 있다.
그 날도 그랬다. 정말 오랜만에 어떻게 살고 있는지 질문을 던졌는데 많은 답이 여기저기서 왔다. 두 아이를 케어하느라 정신없는 친구들도 있었고, 상급지에 집을 사서 이사를 앞둔 친구들도 있었다. 교수가 되었다던 동창생의 소식도 들렸고, 누군가는 훌륭한 학자가 되어 신문에 났다는 링크를 보내기도 했다.
그렇게 카톡으로 마음을 전하다가 술도 깰 겸, 괜히 배고픈 속도 채울 겸 속이 곪기 전 참외를 깎았다. 카톡은 편하다. 내 표정을, 내 마음을 숨기고 칭찬할 수 있다. 미묘한 내 감정선을 읽지 않고도 대화가 이어진다. 겉은 멀쩡한데 안이 물러 있는 그 과일처럼, 다행히 SNS 는 질투심과 아쉬움에 범벅이 된 나의 감정을 보이지 않고도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괜찮은 시간을 보낼 수 있게 해주었다.
그렇게 여러 대화를 마무리짓고, 약속을 잡고 나니 정말 괜찮아졌다. 늦었지만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을 했고, 자가도 마련했다. 친정과 가까이 살며 부모님도 자주 찾아뵈었고 취미 생활을 이해해 주는 남편 덕에 내 일상도 결혼 전과 크게 변하지 않은 상태로 잘 흘러가고 있었다. 객관적으로 보면 ‘이 정도면 괜찮다’ 싶은 삶이다, 그렇다. 그런데도, 사실 나는 매일 묻는다. 사십대가 되면, 내 가정이 안정되면 사라질 줄 알았던 못난 질문들이 매일 내 마음 속에서 소용돌이 친다.
나보다 일찍 결혼을 해서, 아이를 일찍 낳았으니 이제 자기 커리어를 찾아 가는거겠지?
십여년 일에만 매진했는데 그 대신 공부를 했다면 내 삶이 달라졌을까?
나에게는 작가의 꿈이 분명 있었는데 그동안 더 책을 많이 읽었다면,
매일 글을 썼다면,
내가 게으르지 않았다면,
결혼을 일찍 했다면-
내 안에서 자산과 가치를 비교하는 작은 전광판이 멈추질 않는다. 계속되는 질문을 멈추고 싶지만, 사실 그 고민을 하는 모습이 곧 나다. 버리고 싶은 내 모습이지만 쉽게 떨쳐버릴 수가 없다. 조금씩 어긋나 있는 내 모습을 가지치기해서 좀 더 나은 '나'를 만들고 싶은데 가지치기를 하다가 다시 질문더미 속으로 떨어진다.
그럴 때 나는 나의 질문을 매우 싫어하는 남편에게 질문을 던진다.
"오빠, 내가 좀 힘들었더라도 박사 과정에 도전했어야 할까?"
"오빠, 지금이라도 빚을 좀 더 내서 집을 살까?"
"오빠, 우리 서울로 이사라도 가야 할까? 여기서 계속 사는 게 맞을까?"
남편은 그런 질문을 듣다가 답을 한다.
"지금 박사할 수 있겠어? 예전에도 하려다 말았는데, 결혼하고 지금? 힘들지 않겠어?"
"집을 사면 살 수는 있는데 그럼 우리 갚아야 할 원리금이 지금보다 늘어날텐데 괜찮겠어? 한 사람 월급은 거기 다 들어가야 할걸?"
"서울로 이사가면, 친정이랑 멀어질텐데. 그래도 아직 아이를 우리가 생각하고 있어서 그게 괜찮을지 모르겠네. 지금도 아파트 A/S나 급한 배달은 어머님이 와서 확인해주시잖아."
..... 다 맞는 말이다.
"오빠는 왜 그렇게 현실적인 말만 해? 혹시나 지금이라도 내가 공부한다고 할 수도 있잖아. 돈은 우리가 둘이 버니까 불가능한 건 아니잖아."
"그럼 해. 원서 언제 넣을건데."
"아, 당장 컨택을 해보겠다는 건 아니고."
"?? 그럼 왜 물어봤어."
현실주의자 그 자체인 남편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짜증은 나지만 내 질문들은 사라져 버린다. 지금의 나를 인정하고, 현재 나의 삶을 확실히 응시하게 된다. 아쉬운 마음과 섭섭한 마음, 부러운 마음을 올곧게 바라본다. 곯아 버린 참외는 되살릴 수 없다. 좀 더 오래 먹을 수 있도록 아끼고 보살펴 주는 것이 최선이다. 20대에 할 수 있는 선택과 30대에 할 수 있는 선택이 다르고, 40대의 선택이 다르다. 물론 도전이 가능한 부분도 분명히 있다. 그래도 가지치기는 해야 한다. 모든 일에는 적절한 시기가 있다. 공부하기에 적절했던 시기가 지났고, 지금도 여전히 공부를 시작할 수는 있지만 그 목표는 30대의 내 목표와는 다를 것이다. 서울로 이사를 갈 수는 있다. 대신 현재 집을 먼저 팔아야 리스크가 적다. 아직 확실한 '딩크'가 되기로 합의하지 않았기에 아이를 갖게 된다면 부모님과 가까이 살아야 도움이 된다.
오늘 나는, 곧 곪을 참외를 조심스레 깎았다. 아직은 단단한 그 속을 바라보며 내 마음도 함께 들여다봤다. 복잡한 내 감정을 분리하고, 내 현재 상황을 나열하고 최선의 선택을 생각하고. 모든 삶에는 '후회'가 남는다는 것을 다시 되새기며 앞으로 후회하지 않으려면 내게 남은 선택들 중 무엇을 바라보아야 할까. 어떤 선택이 최소한의 후회를 남기는 결과를 남길까. 그런 생각들과 함께 조금씩 조금씩 나를 깎아 나갔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술을 마실 땐 행복한 마음이 드는 순간이 더 많다.
그래서 술을 좋아하는 모양이다.
최근에는 와인에 빠졌는데, 맛있다 생각되는 와인을 마구잡이로 찍어두었다.
콘테 포스코 꾸베는 최근 나의 최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