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늦게 결혼해서 행복하면 안되나요?

천천히 나아가고 싶다는 욕망

by 구름빛

우리는 타인의 시선으로 보면 결혼이 늦은 커플이다. 둘 다 첫 결혼이라 아직 어리버리하게 신혼을 즐기며 깨 볶는 중인데, 어느 순간부터 주변 시선이 곱지만은 않다. 비혼이나 딩크가 많아졌다지만, 조금만 가까워지면 자연스레 “아이 가질 거야?”라는 질문이 따라온다. “이제 나이도 있는데 빨리 결정해야 하지 않겠냐”는 걱정 섞인 조언도.


그런데 우리는 둘 다 똑같이, 철이 없다.


마음은 여전히 이십대에 머물러 있었고, 아이를 가져야 할지 말아야 할지 결정을 내리지 못한 채 시간을 보내고 있다. 외면하는 것도, 겁이 나는 것도 아니다. 정말로 별생각이 없다. 그래서 늘 대답은 같다.


“아직 잘 모르겠어.”


주변은 조급하다. “그 나이에 뭘 더 생각해?”, “빨리 결정해야 후회 안 해.”

하지만 나는 내 삶의 속도를 내가 결정하고 싶다. 부부의 속도는 오롯이 우리 둘이 정할 문제다. 천천히 고민하고 천천히 나아가는 게 우리의 방식이다.


결혼 전부터 남편과 대화를 나눴지만 해결되지 않았던 것도 바로 이 문제였다. 임신과 출산. 친구 A는 결혼 후 곧바로 임신을 시도했고, 지인 B는 주변이 임신과 출산으로 분주한 걸 보며 초조함을 느꼈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결혼도 간절하지 않았고, 아이도 마찬가지였다. 이 사람과 함께 사는 지금의 삶은 좋고 행복하다. 하지만 아이를 ‘갖고 싶다’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나의 건강, 경력 단절, 출산과 육아에 따른 무거운 책임감, 경제적 부담… 갖지 말아야 할 이유는 가시적으로 선명했다.


남편도 비슷했다. 예전엔 결혼하면 당연히 아이를 낳는 줄 알았지만, 마흔을 넘겨 결혼하니 아이가 ‘선택’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기자 오히려 미래가 무겁게 느껴졌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는 “되는 대로 살자”는 결론을 내렸다. 확정이 아니라, 보류였다. 아주 솔직히 말하자면 나도 두렵다. 지금의 선택이 훗날 후회로 돌아올까 봐. 남들이 해보는 건 해보고 싶다는 마음도 있다. 신랑 역시 젊은 날 품었던 ‘아이와 함께하는 단란한 가정’에 대한 미련이 조금은 남아 있었다. 그러던 중 근종 수술을 하게 되었고, 자연스레 우리의 선택은 더 미뤄졌다. 그렇게 2년이 흘렀다.


나는 40이 되었고, 마음 한켠이 초조해졌다. 주변 친구들은 기업에서 중책을 맡거나 교수가 되어 20대부터 쌓아온 결실을 조금씩 거두고 있었다. 나도 나름 전국 단위 문항을 출제하고 교과서 검토에도 참여했지만 마음이 허했다. 앞으로 20년을 이대로 달린다면, 내게 무엇이 남을까. 여행하고, 돈을 모으고, 집을 넓히는 것만이 행복일까?


그러던 어느 날, 생리가 조금만 늦어져도 기대하는 남편의 얼굴을 보고 있다가 문득 그 결심이 찾아왔다.


‘아이를 낳아야겠다.’


어쩌면 이건 대단한 결심이 아니라, 아주 사소한 마음에서 비롯된 동기일지도 모른다. 옆집 아이를 보며 귀여워서 어쩔 줄 모르는 그의 얼굴, 잠든 그의 모습을 바라만 봐도 마음이 충만해지는 나의 감정. 이 공허함의 틈을 아이가 채워줄지도 모른다는 생각. 이기적인 마음일 수도 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나를 위해’ 아이를 낳기로 마음먹었다.


기후위기의 시대, 인구 감소의 시대, 절망이 들끓는 시대에 아이를 낳는다는 것은 낭만이 아니라 용기다. 그리고 그 용기는 거창한 대의명분이 아니라 아주 작고 사소한 ‘나의 마음’에서 시작된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그 사랑을 조금 더 확장하고 싶은 마음.


우리는 늦게 결혼했다.


아직도 우리에겐 많은 불안이 있다. 나이와 체력, 경제력, 미래의 예측 불가능함. 하지만 늦게 결혼했다고 해서, 천천히 고민한다고 해서 우리의 행복이 얕은 건 아니다. 늦게 결혼한 사람들의 삶도, 그 속도와 리듬은 모두 제각각이다. 그 다양성을 세상이 인정하지 않을 뿐이다. 내 삶의 다음 챕터는 임신의 기록이 될 것이다. 내 삶에서 가장 어려웠던 첫번째 고비가 결혼이었다면, 다음 언덕은 임신이다. 늦게 결혼한 만큼 내가 책임져야 할 산이기도 하다.



홍콩에 갔을 때,

우리의 원픽은 디즈니랜드였다.

둘다 이런 걸 좋아하니

아이가 생겨도, 체력이 좀 딸려도

열심히 놀 수 있지 않을까..?

얼음왕국.jpg


이전 13화사람, 나를 깎아내는 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