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을 선택하며 고개를 드는 두려움
나는 아이를 키우고, 가정을 이루기 좋다고들 이야기 했던 그래서 한때는 최고의 신붓감이라는 실없는 소리도 종종 듣던 직업을 가지고 있다. 실제로 교직에 와보니 워라밸이 좋다. 정시 출근, 정시 퇴근은 물론이고 육아시간과 모성보호시간, 육아휴직까지 법적으로 보장받아야 할 것들이 명확하다. 보장받을 것을 보장받기 위해 싸울 필요도 없고, '충분한 근거'를 바탕으로 '결재'를 받으면 모든 일은 일사천리이다.
그런 직업을 가졌는데도, 요즘 걱정이 많다.
나는 임신을 준비하고는 있지만 무엇 하나 정해진 것이 없는 삼십대와 사십대 사이 어딘가에 걸쳐 있는 여성이다. 십년이 넘게 하나의 직업군에서 일하고 있기에 나름 분야의 전문성을 갖추고 있고, 함께 일하는 선생님들께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아 기피 업무와 담임 업무를 도맡아 했다. 무려 세 개의 학교에서 고3 담임을 6년 했고, 전체 담임은 약 10년을 했다. 기피 업무가 아닌 비담임 업무는 전 교직생활을 통틀어 올해가 처음이다. 승진을 해야 할지, 아니면 평교사로 남는 게 좋을지, 진로 진학 쪽으로 방향을 잡을지 그 무엇도 명확하지 않았기에 다양한 경험을 해보고 싶었고 아이들과도 적극적으로 소통해보고 싶었다. 그래야 내가 원하는 것이 보일 것 같았다.
그 과정을 거치며 가족을 이루고 싶다는 마음으로 뒤늦게 임신을 시도하고 있는데 막상 걱정되는 것들이 많다. 학기 중간에 인수인계를 해야 하고, 가르치던 아이들도 선생님이 바뀌어 새로 적응해야 한다. 예전에는 이 모든 일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나의 권리라고 믿었다. 더 정확히는 '인간으로서, 여성으로서의 권리'라고. 그런데 이것이 내 일이 되니 왠지 미안함이 앞선다.
얼마전 스레드에서 '갑자기 담임이 교체된 썰'을 읽었다. 댓글에는 영문도 모른 채 담임이 교체된 것이 얼마나 불편한 일인지 빼곡하게 쓰여 있었다. 아파서 교체된 경우에도, '미리 알릴 수 없었냐'는 질타 섞인 댓글이 있었다. 학부모의 불안함과 아이들의 불편함이 잘 느껴졌다. 당연히 그들은 불안하고, 불편하다. 사람이 바뀌는 것은 그렇다. 그런데 교사도 사람이기에 그리고 여성이기에 질병, 임신, 결혼 등의 이벤트로 일을 쉬어야 할 권리를 지닌다. 미리 관리자와 의논해서, 수업에 빈자리가 생기지 않도록 빈틈없이 계획을 짠다. 그렇지 못한 경우라면, 학교에서도 '속수무책'인 정말 '문제가 될 만한' 일인 확률이 높다. 사람이 구해지지 않았거나, 갑자기 사고를 당한 것이거나. 그러니 우리의 권리는 보호받아야 한다. 다들 그렇게 사회를 살아가고 있으니까.
그래서 미안함을 내려놓고 싶은데 잘 되지 않는다. 아직 임신을 하지도 않았는데, '계획적'으로 임신이 되었으면 바라게 된다. 될 수 있으면 12월쯤 임신이 되었으면 싶고 맘 편히 방학을 맞이하여 극초기 기간에 푹 쉬고 싶은 마음도 생긴다. 막상 우리 학교는 내가 사라져도 잘 굴러갈 것이다. 아이들은 어쩌면 나보다 더 어릴 새로운 선생님을 좋아하겠고, 일을 잘하는 그 선생님은 업무도 곧잘할 것이다.
아이를 낳고 학교에 돌아오면 나는 마흔 중반이 되어 있을 것이다. 여전히 승진의 꿈도 있고, 문제 출제나 컨설팅 같은 전문적인 일도 놓고 싶지 않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하다. 아이를 키우느라 체력은 부족하고, 육아시간을 쓰면서 일찍 집에 가야 한다면 동료에게 미안한 마음이 또 고개를 들 것이다. 공무원이라서 보호받는다고 하지만, 결국 일하는 여성이라면 누구나 경력 단절의 불안은 안고 사는 셈이다.
우리나라는 아이를 낳기 힘든 나라가 되어가고 있다. 권리를 행사하는 일조차 죄책감을 동반해야 하고, 고마움 대신 미안함을 먼저 말해야 한다. 나는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자녀'를 계획하고 있다. 그래서 그 미안함을 내려놓기 위해 연습할 것이다. 내 삶을 지켜내기 위해, 그리고 언젠가 나의 아이에게 서로 미안해 하기 보다는 고마워 하는 세상을 물려주기 위해.
자꾸만 이상한 눈이 온다.
비도, 눈도 오지 말아야 할 것 같은 순간에 오니
임신을 준비하면서도 계속 걱정이 된다.
교사는 그럴 때도 늘 출근을 한다.
지난 겨울 눈이 하도 와서 나무 하나가 부러졌다.
선생님들이 모두 모여 눈을 치웠다.
기숙사에 있는 아이들과 선생님들이 모여
하나의 학교를 다듬어 가는 과정은 참 멋있었다.
서로를 배려하면, 그렇게 아름다운 사회를 만들어나갈 수 있는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