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앞에 몰래 반찬놓고 가는 우리엄마
딩동딩동-
오전 11시 30분, 토요일 남편과 아점을 먹고 낄낄거리며 티비를 보고 있던 시간 갑자기 벨이 울렸다. 순간 정적이 흘렀고, 올 사람이 없는데 누구냐며 모니터를 보았는데 그 속에는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던 엄마가 있었다. 나시티(라고 쓰고 속옷이라고 읽을만한) 한장 걸치던 신랑은 반팔로 갈아 입고 나는 문을 열어주러 나갔는데, 엄마가 왜 전화를 안받냐며 있는 거 봤으니 됐다는 이야기만 남긴채 재빠르게 엘레베이터 문을 열었다.
"엄마, 이거 뭐야?? 더운데 땀이라도 식히고 가."
"아냐 안들어갈거야. 아빠 점심주러 가야돼."
"엄마 들어오지도 않을건데 왜 여기까지 왔어."
"(닫힘버튼을 누르며)나 간다~!!!"
엄마는 인기척이 나자, 우리가 집에 있음을 알았고 내가 문을 열기 전 이미 엘레베이터 호출을 해두었다. 문을 열었더니 현관앞에는 쇼핑백이 하나 있었다. 엄마는 내 얼굴을 보자마자 엘레베이터를 탔다. 남편이 뛰어 나와 애타게 장모님을 불렀지만 엄마가 있던 자리에는 엘레베이터 문만 닫혀 있었다.
자주 있는 일이다. 그나마 오늘은 양반이었다.
우리 엄마는 가끔 퇴근 시간에 맞춰 집 앞에 쭈꾸미 볶음을 두고 가거나, 가을이 되면 주말 점심 시간에 맞추어 전복, 오징어, 대하 등을 놓고 간다. 생물을 갖다줄 때면 문 앞에 놓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전화를 하시기도 한다.
"엄마는 대체 왜 와서 같이 먹지도 않고, 그냥 그렇게 두고 가??"
"내가 남의 집엘 시도 때도 없이 왜 가니. 볼일만 보면 되지."
딸과 사위가 살고 있는 집도 엄마는 '남의 집'이라며 먹을 것만 딱 놓고 돌아서기 일쑤다. 나는 오늘 그런 엄마가 땀을 닦는 모습을 모니터 속에서 새삼 확인하고 나니 마음이 울렁거린다. 신랑이 저녁 시간에 맞추어 팥빙수를 친정 집에 배달해 주었고 맛있는 것들 많이 사주셔서 감사하다고 인사를 여러 번 하니 엄마가 이야기 한다.
"전복 먹고 싶거나 대하 먹고 싶으면 언제든 얘기해. 내가 요리를 잘 못해서 해주진 못해도, 맛있는 거 많이 사다 줄게."
친정 엄마의 마음이 이런걸까. 사십이 된 딸이, 전복 손질 하나 제대로 못하는 게 걸려서 그래서 비싼 해물들 좋아하면서 먹지 못할까봐 때맞춰서 문 앞에 두고 가는 마음. 나는 사실 상상도 못하겠다. 그게 어떤 사랑에서 비롯된 마음인지. 그래서 더 맛있게 먹었다. 오징어 버터구이, 전복 버터구이를 해서 저녁에 포식을 했고 내가 열심히 요리하고 있을 때 옆에서 사진을 찍던 남편은 그 사진을 엄마에게 보냈다. 엄마 덕분에 즐거운 우리의 저녁을, 우리가 누리는 이 호사를 알려주고 싶었다.
엄마는 땀이 나도록 더운 날, 전철을 타고 돌아가면서도 단 한번도 나에게 힘든 내색을 하지 않는다. 오히려 웃으며 먹고 싶을 때는 언제든 말하라고 한다. 사실 같은 집에 살 때도 그랬던 게 아닐까. 우리집 문 앞은 엄마에게 함께 살던 시절의 식탁같은 걸까. 시장에서 맛있는 먹을거리를 발견하면 식탁에 올려, 가족이 맛있게 먹는 것을 기대하던 엄마는 이제 우리 집 문 앞에 그것들을 가져다 준다. 함께 살 때는 엄마가 어떤 마음으로 저녁밥을 지어주었는지 몰랐다. 내가 기분이 안좋으면, 식탁 위에 진수성찬이 차려져 있어도 밥 안먹는다고 방문을 닫은 채 이야기 하곤 했고 어떤 날에는 먹고 싶은 게 없어서 밥을 대충 먹기도 했다. 늘 오늘의 밥상에 내가 원하는 게 있는지 없는지, 맛은 어떤지 생각했고 그것들은 모두 '나'를 위주로 한 생각들이었다.
결혼을 하고, 엄마가 차려주는 밥상을 문앞에서 받아보면서 이제야 생각한다. 엄마가 그간 어떤 마음으로 나에게 밥을 차려주었을지. 시장에서 야채를 살 때, 과일을 고를 때 어떤 생각을 했을지. 그 마음의 한 조각도 나는 제대로 알 수 없을테지만 그래도 이제 엄마의 입장도 생각해볼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사십년만에. 엄마는 나에게 위인이다. 세상의 시각에서는 평번한 한 사람에 불과하겠지만 나에게는 여전히 세상이다. 얼마전 친구가 그런 말을 했다. 아이를 낳고 나서 그 아이를 보면, 갓난쟁이인 그 아이의 온세계가 나라서 책임감이 강해진다고. 그 아이가 온힘으로 나를 사랑하는 게 느껴져서 지켜주고 싶어진다고. 그런 마음으로 엄마도 나를 사랑했겠구나 생각해 본다. 그러면서 사랑이 세상에 어떻게 퍼지는지, 그 사랑이 가족 안에서 어떻게 전해지는지 조금이나마 느껴본다. 사랑이란 말의 무게를 느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