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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lavecin Mar 23. 2024

* 숫자는 중요하지 않아 (2024.03.23.토) *

숫자는 중요하지 않아  (2024.03.23.) *     


 - 숫자는 중요하지 않아     


   선생님들과 대화하던 중이었다.     


 - A, B와 C 선생님이 모두 동갑이신가요??

 - 아뇨. A와 C는 OO 년 생, B는 OO 년 생입니다.

 - 아, 그럼, B는 저와 동갑이네요.

 - 그런가요?

 - 몇 월 생이에요?

 - O 월인데.

 - 아, 오빠네요. 저는 만 5세에 학교 들어갔어요.

 - 그런 경우가 있더라고요. 고등학교 때 전교 1등이 2살 어린 친구였는데….

 - 저도 어릴 때는 나름 똑똑했는데. *^_^*.     


   만 나이 계산하는 법이 새로 나왔지만 무언가 복잡해서 요즘에는 몇 년생인지, 또 몇 월생인지로 그 사람과의 나이 차를 가늠하게 되었다. 생각해 보니, 초등학교 때부터 대학교 때까지, 친구들 모두 나보다 1살이 위였음에도 함께 지내는 데에 전혀 불편함이 없었다. 공부 내용이 어렵게 느껴지지도 않았다. 왜 그랬을까?? 아마도 나의 인지적 수준이 높았기 때문이 아니라, 1~2살 차이는 학습이나 생활에서 크게 영향을 주는 나이는 아니기 때문이리라 생각해 본다.     


   직장에서는 나이로 대하는 것보다 입사한 시기로 나뉘는 경우가 많다. 우리 학교가 개교할 때 함께 했던 사람들을 일명 ‘개교 멤버’ 또는 ‘1기’라는 명칭으로 부르는데, 가장 어린 나이였던 나부터 10년 연상이신 분까지 다양한 나이대의 사람들로 구성이 되었다. 지금은 이곳을 떠나 다른 곳으로 많이 옮겨갔지만 비슷한 나이대로 나누기보다 같은 기수로 어려움을 함께했다는 의식이 더 강해서 우리는 지금도 서로에게 물어본다.   

  

 - 선생님은 몇 기이시죠??

 - 아, 저는 O기입니다.


   물론 30년의 세월이 지나가면서 더 이상 기수를 따지지 않지만 1기, 2기와 3기까지는 좀 더 다르게 생각하는 것이 사실이다. 개인적인 호불호 감정은 있을 수 있지만, 함께 고생해 왔다는 마음으로 서로를 좀 더 애처롭고 안쓰럽게 생각하는 마음이 베이스에 깔려 있다는 것이 감사한 일이다.     


   주로 나보다 나이 많은 사람들과 함께해오다 보니, ‘어른은, 선배는 이러이러해야 해’라는 나름의 생각을 하고 있다. D가 나에게 물었다.     


 - 선생님은 고등학교 때 어떤 학생이셨어요?

 - 흠, 저는, 겉으로는 모범생이었지만 머리로는 여러 생각을 하는 학생이었죠.

 - 아, 그래요?

 - 저 선생님은 왜 저러지? 저 집사님은 왜 저러지? 이런 생각을 많이 했었던 것 같아요.

 - 얌전하셨을 것 같은데.

 - 네. 당연히 얌전했지만, 어른이라고 다 고개 숙이지는 않았어요.

 - 진짜요?

 - 어른답지 못하면 인사하지 않았는데요. 그건 지금도 그렇고요.

 - 와~

 - 그래서 아이들을 보면서 생각하죠. 저 녀석이 고등학교 때의 내 모습을 가지고 있구나 하고요.      


   무언가 ‘센 언니’ 같은 말이지만 사실, 말랑말랑한 아이들의 순수한 모습을 보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다. ‘어떻게 저렇게 착하지?’라는 생각에 고개가 갸우뚱해질 때가 있다. 이번 주 30기 클래스 서포터즈(임원들) 모임에서 이렇게 말했다.     


 - 학년장과 부학년장은 저와 잘 맞아야 하는데요, 제가 좀 못됐거든요.     


   (약간은 과장된) 나의 말에 선배로 참석한 29기 학년장과 부학년장이 강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을 보고 30기 아이들이 모두 웃었다. 나쁜 29기 놈들! *^_^*     


   아이들에게는 모범이 되는 선배의 모습을 강조하고 선배를 잘 따르는 후배로서 태도를 말하지만, 정작 나는 좋은 선배도, 좋은 후배도 또 좋은 동료도 아니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가면서 ‘나 자신은 내가 지켜야 한다’라는 생각이 강해지고 있는 나를 ‘좋은 사람’이 되고 싶게끔 만들어 주는 사람들이 가끔 내 눈앞에 나타나서 나를 혼란스럽게 하기도 한다. 마음이 말랑말랑해지게 한다고나 할까. 문제점과 함께 해결책을 시원하게 제시하는 E도, 무엇이든지 긍정적으로 잘 받아내는 F도, 또 넓고 깊이 생각해서 생각의 관점 자체를 바꾸게 하는 G도, 나이나 경력과 상관없이 내 인생에 나타나서 나의 가치관을 흔들어 놓은 좋은 선후배들이다.    

  

 - 숫자는 중요하지 않아      


   야간자율학습 인원수를 체크하며 좀 더 많이 남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를 걱정하는 나에게 H가 했던 말이다. 많이 남아서 공부한다고 공부를 잘하는 것도, 남지 않는다고 공부를 못하는 것도 아니라는 말이었는데, 나는 이 말을 들은 후 매월 야간자율학습 인원수 정리하던 일을 그만두었다. 그리고 가끔 이 말을 되뇌인다. 숫자가 중요하지 않다는 말은 곧, 표면으로 나타나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는 말과 같은 말이라고 해석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말이 얼마나 다행인지도 늘 생각한다. 나타난 숫자나 어떤 평가가 예상했던 대로 그대로 진행이 된다면 사실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기대가 아예 없을 것이다. 이미 결과가 뻔하게 나와 있는데 변화를 위해서 무슨 노력을 한단 말인가.     


   하지만, 우리가 이미 알고 있듯이, 숫자는 숫자일 뿐, 예상은 예상일 뿐, 진단은 진단일 뿐, 그것을 넘어서는 놀라운 일들이 인생에서 펼쳐진다는 것을 알고 있고 경험했으며 그렇게 살아온 무수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우리에게 널려져 있다는 것.     


   그러니, 언젠가의 I에게 말해본다.     


 - 숫자는 중요하지 않아. 너에게 나타난 그 모든 것들도. 쉽지는 않겠지만 같이 넘어가 보자. 이 놀라운 시기를 함께 겪고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되어줄게. 얼마 지나지 않아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날이 올 거라는 거 알고 있잖아. 숫자는 중요하지 않다고 네가 말했잖아.     


   선물같이 주어진 인생의 시간을 명쾌한 숫자나 글자 몇 줄로 또렷하고 정확하게 나타낼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렇게 할 수 없는 일들로 가득 찬 것이 우리의 인생이라는 것을 다행으로 생각하며, 만 5세에 초등학교에 들어가나 좀 늦은 21살에 대학교에 들어가나 아니, 40세에 새로 수능을 보나, 우리 각자의 삶에는 눈에 보이는 문자로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오묘하고 거대한 계획이 있다는 것에 감사한다.      


   내 삶의 한 부분을 통과하는 동안에는 비록 깨닫지 못하더라도 결국은 걸어온 그 길을 한눈에 보게 되리라는 것을 기대하며, 숫자를 바라보며 한정되어 있던 나의 눈과 생각을 무한한 그림이 펼쳐질 거대한 하늘로 옮겨본다.     


***************     


*** 바코드 입 퇴실과 핸드폰 수거 등 새로운 야간 자기주도학습 시스템으로 바꾸었던 3월, 기대만큼 많은 아이가 남지는 않았지만, 공부하는 분위기가 정착된 것 같다.     


   2주 동안의 야간 자기주도학습 일지.     


   ‘숫자는 중요하지 않아’라는 말을 다시 한번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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