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lavecin Apr 06. 2024

* 왜 같이 먹어야 하죠? (2024.04.06.토)*

왜 같이 먹어야 하죠? (2024.04.06.) *     


 - 왜 같이 먹어야 하죠?     


   이번 주에 있었던 주제별 체험학습, 일명 수학여행은 작년 10월부터 기획된 프로그램이다. 코로나 이전까지 수십 년 동안 계속 강원도로 갔었는데 간간이 다른 지역으로 바꾸려고 여러 번 논의가 있었으나, 말처럼 쉽지 않았다. 교육적인 의미, 주변 환경과 장소들이 우리 학교가 표방하는 것과 맞아야 했는데 쉽지 않았던 듯하다. 그런데 코로나로 끊어졌던 프로그램을 2023년에 다시 시작하면서 새로운 곳으로 바꾸자는 의견들이 많았고 처음으로 충청도 지역으로 진행했었다.     


   다시 시작된 프로그램이라는 것에 감격하였기에 관계된 모든 것들이 마음에 들었지만, 딱 한 가지, 아이들과 직접 만나는 청소년 지도사분들과의 관계가 어려웠다. 그래서 2024년에 다시 새로운 곳을 물색하게 되었고, 사실 나의 마음은 전라도나 제주도 쪽이었으면 했으나, 너무 먼 거리라는 것과 우리 학교만의 특색있는 프로그램 진행에 맞추다 보니 다시 강원도로 돌리게 되었고, 결국 춘천으로 최종적으로 결정하게 되었다.  

   

   지역을 정하기 전에 제일 먼저 둘러보는 곳은 인근 숙소인데, 전체 모임을 진행하는 강당의 규모와 제반 시설이 적당한지와 무엇보다 아이들이 자는 방의 크기와 시설이 적당한지를 체크한다. 총 3곳을 둘러보았고 그중에 제일 마음에 들었던 A를 숙소로 정하게 되었다. 아기자기했던 작년 숙소와 달리, 좀 더 현대적인 시설을 갖추었기에 아이들이 더 좋아할 듯했는데, 역시 아이들이 만족스러워했다.     


   30평대의 방에 보통 3명~5명을 배정하는데, 각반 담임선생님께서 학급 학생들의 상황에 맞게 배정하고 방장을 정했다. 그런데 보통 방 2개, 거실의 기본 구성에 침대가 1개~4개까지 있는 등, 방의 구조가 다양해서 조금 당황한 아이들이 있었다. 아이들 방 사이에 내 방이 있었는데, B가 내 방을 찾아왔다.     


 - 선생님~ 선생님 방 구조는 어떻게 되어 있어요?

 - 무슨 말일까요?

 - 저희는 3명인데, 침대가 1개 밖에 없는데, 옆 방은 침대가 4개가 있어서 모두 침대를 사용할 수 있고….

 - 제 방에도 침대가 1개인데요.

 - 아?

 - 제 방과 바꾸어 달라는 말일까요??

 - 그건 아니고.

 - 5명이 배정된 방도 있으니, 서로 잘 조절해 보세요.

 - 네~     


   아마 추측하건대, 침대의 문제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한 방에서 3박4일 동안 함께 지내야 하는 아이들로서는, 서로 불편한 점들이 있었을 것이다. 평생 같이 살아온 가족들도 서로를 힘들어할 수 있는데, 생전 함께 지내온 적도 없는 아이들이 같이 생활하면서 어색한 것이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싸우거나 토라지는 일도 있지 않았을까 싶다. 어떻게 참고 견디면서 지냈을까. 같이 지내면서 더 친해져야 할 텐데, 친해지기도 전에 사이가 끝난 것은 아니겠지? 궁금하다.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잠자는 것과 먹는 것인데, 올해 우리가 갔던 숙소는 특히 음식이 최고였다. 최상의 음식 맛을 제공하는 학교 급식에 익숙하여 입맛이 까다로운 우리 학교 아이들이 9번의 식사에 모두 ‘엄지척’을 할 정도로 음식의 종류와 질이 뛰어났다. 아이들은 식사 때마다 나에게 외쳤다.    

 

 - 선생님, 오늘 점심, 완전 맛있어요!

 - 선생님, 오늘 저녁에 스파게티랑 돈가스 나왔는데, 최고였어요!     


   식당에서 잠깐 인사를 나눈 주방장이 이렇게 말했다.     


 - 아이들의 먹는 양이 대단하던데요. 스파게티 500인분을 준비했었는데 1,200명분 넘게 먹더라고요.

 - 진짜요??     


   아침에 모닝콜을 듣고 일어나서 대부분 같은 방 아이들끼리 또는 같은 학급끼리 식당에 오게 될 텐데 가끔 혼자서 밥을 먹는 아이들이 눈에 띄었다. 사실 아침잠에 취해서 좀 더 늦게 나올 수도 있고 아예 잠을 더 자버리는 아이들도 있을 수 있어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 수도 있을 텐데, 이를 본 C가 나에게 말했다.    

 

 - 왜 혼자 밥 먹는지 이해가 되지 않아요.     


   나는 그 말이 이해되지 않아서 질문했다.     


 - 왜 같이 먹어야 하죠?

 - 왜 혼자서 먹는 거죠?

 - 혼자 먹는 아이가 잘못이라는 건가요?

 - 이해되지 않는데.

 - 아님, 다른 사람이 먹자고 해야 한다는 건가요?     


   C도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이었다. 내가 다시 말했다.     


 - 혼자 있는 것이 잘못인 것처럼 바라보는 것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해요. 

 - 언젠가 D 아이가 와서 말했어요. 수다 떠는 친구들의 이야기에 호응하고 싶지 않지만, 그 무리에 속하려면 그 말에 수긍하는 ‘척’ 연기해야 하는데, 이제는 그게 지친다고. 그래서 제가 말했죠. ‘좋은 척 연기하지 말고, 그냥 그 무리에서 나와.’

 - 누군가를 의지하게 되니까, 그 누군가가 없으면 우울하게 되는 거죠.

 - 혼자서도 건강하게 지낼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하지 않을까요.

 - 지능이 높은 아이들은 혼자서 지내는 것이 더 편하다고 해요.


   물론, 혼자 있는 아이들이 지능이 높은 것도 아닐 것이고, 다른 사람과의 불편한 관계를 잘 견뎌내는 것이 사회성을 기르는 것이겠지만, 기본적으로, 혼자서도 건강한 자아를 갖출 수 있어야, 더 건강한 사회가 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런데, 전체 모임 후 늘 혼자 다녀서 내 눈에 밟히는 E를 F가 끌고 가면서 말하는 소리를 들었다.     


 - 이리 와. 아이들하고 같이 기도하자.     


   E를 끌고 가는 F에게 얼마나 고마움을 느꼈는지 모른다. 아마도 E가 혼자서도 건강하기를 바라면서도, 누군가와 함께 있는 E를 마음속 깊이 바라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폐회 예배 때 이런 문구를 넣어서 기도했다.     


 - 입학하여서 한 달 동안 많은 친구를 사귀지는 못했지만, 신기한 아이들을 많이 만난 것 같아서 때로는 놀랍고 정말 즐겁습니다. ‘세상에 이런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어요. 하지만 많은 학생이 아직 단짝을 찾지 못해서, 나와 맞는 친구를 계속 찾고 있는 것 같습니다.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하는 것 같이 사람이 그의 친구의 얼굴을 빛나게 한다는 잠언 27:17의 말씀을 기억하며, 내가 빛나게 해 줄 친구를, 나를 빛나게 해 줄 친구를, 고등학교 시절에 잘 만나게 해 주세요. 그리고 누군가를 기다리기보다, 다른 사람에게 먼저 손 내미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용기를 주세요.     


   하지만, 혼자 있어도 당당하고 자존감 있는 아이들로 잘 성장할 수 있도록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만나 주시고, 건강한 자아관을 가질 수 있도록, 또한 나에 대해 스스로 인내심을 가질 수 있도록, 다른 친구들을 기다릴 수 있도록, 힘을 주세요. 그리고 서로를 따뜻하고 불쌍하게 바라볼 수 있는 깊은 눈매를 주세요. 



   이제부터 본격적인 학교생활을 시작하게 되는 아이들이 친구 문제, 인간관계로 힘들어하지 않기를, 그 힘듦을 잘 이겨내고 단단하게 성장하기를, 공부에 집중하면서 그 문제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기를, 그래서 건강한 한 사람으로 성숙해지기를 진심으로 바라며.     


   눈을 감으면 끝나 있기를 바랐던 주제별 체험학습, 수학여행을 무사히 끝내고 꿀맛 같은 토요일 저녁을 감사한 마음으로 보낸다. 이제부터 좀 놀아야겠다.     


****************     


*** 4교시 수업을 끝낸 뒤, 음악실을 정리하고 3층 교무실까지 올라갔다가 천천히 내려온 식당. ‘아마 내가 마지막이 아닐까’라는 생각으로 줄을 서 있는데 내 뒤에 G가 온다.      


   속으로 ‘G와 먹어야겠군’ 하고 생각하며 군데군데 비어있는 자리들을 스쳐서 새롭게 자리를 잡았는데, G가 내 옆으로 오지 않고 비어있는 다른 선생님들 자리에 앉는다. 깜짝 놀라서 외쳤다.     


 - G! 내 옆으로 와야죠!

 - 저, 일찍 가야 해서요.

 - 앗!     


   깜짝 놀라서 10여 분 동안 혼자 밥을 먹고 있는데 늘 늦게 내려오시는 H 선생님이 오셔서 내 앞에 앉는다.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밥을 먹고 올라왔다. 올라오면서 G에 관한 생각은 잊었다. 그런데 교무실에서 I가 말한다.     


 - 선생님~ 4교시가 있으셨어요? 다음에는 기다려서 같이 내려갈게요! 

 - 아까 있었어요??

 - 네~. 선생님 뒷자리에.

 - 그럼, 내 옆으로 왔어야죠!

 - 아니, 밥을 먹고 있어서~

 - (모두) 하하하~

 - 기획이 부장을 챙겼어야지!

 - (모두) 하하하~

 - 저, G 때문에 화났어요!

 - (모두) 하하하~     


   그리고 티룸으로 나왔는데, 글쎄, G가 있었던 것! 그래서 다시 소리를 꽥 질렀다.     


 - G!!!!

 - 앗, 선생님! 죄송해요! 제가 일찍 와야 해서!

 - 아까 일찍 올라가지도 않더구만!

 - (모두) 하하하~


   혼자 있는 것은 괜찮지만, 혼자서 밥을 먹는 것은, 힘든 일이다, 사실.      


   그러니, 누가 혼자서 밥을 먹는다면, 그 옆에 가서 살며시 앉아 줄 것! 밥을 먹고 있는 중이라도, 또는 다 먹었더라도. 그냥 바라만 보지 말 것!     


   * (2024.04.05.(금)) 체험학습 때 찍은 2024학년도 30기 단체 사진.     


   이 중에서 같이 밥 먹을 친구 1명은 발견하기를.     


#같이_밥먹기   #주제별_체험학습   #수학여행   #강원도   #춘천   #강촌   #친구   #식사   #혼자_밥먹기   #혼자   #혼자_있기   #건강한_자아   #철이_철을_날카롭게   #잠언_27:17   #친구의_얼굴을_빛나게   #먼저_손_내밀기   #건강한_자아관   #혼밥



작가의 이전글 *어느 파트를 먼저 연습할까요? (2024.03.30)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