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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lavecin Jul 07. 2024

* 왜, 걷고 있는 거야! (2024.07.06.토)

걷고 있는 거야! (2024.07.06.) *     


 - 제 인생의 기조는 ‘허무함’입니다만….     


  인생이 허무하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모든 것이 사라져 버린다는 것을 모르지 않지만, 그런데도 하나님을 믿고 진실한 삶을 살려고 한다는 A가 저 말을 했을 때, 왜 내심 기분이 좋았을까. 인생이 헛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내 보려 한다는 말이 왜 기억에 남았을까.     


  매년 5월경에 열리는 학교 체육행사는 오전 8시 30분부터 오후 3시30분경까지 진행된다. 줄다리기와 같은 학급별 경기도 있지만, 대부분은 팀별로 진행되기에 학년과 학급이 달라도 서로 응원하고 아쉬워하며 같은 마음을 가지고 함께 할 수 있는 행사다. 오전부터 진행되는 프로그램을 내내 보고 있을 수는 없어서 놓치고 싶지 않은 경기를 표시해서 보는데, 아마도 모든 사람이 꼭 보고 싶어 하는 하이라이트는 계주가 아닐까. 행사의 제일 마지막 순서인 계주경기는 언제나 손에 땀을 쥐게 한다.     


  1학년 여자, 1학년 남자, 2학년 여자 그리고 2학년 남자 순으로 진행되는 계주를 보면서, 같은 색상으로 옷을 맞춰 입은 아이들이 바통을 주고받으며 뛰는 모습은 교실에서 보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들이어서 늘 새롭고 신선하며 때로는 경탄을 자아내기도 한다. ‘땅’ 소리와 함께 총알처럼 온몸을 던져서 달리는 아이, 신발을 벗고 맨발로 달리는 아이, 바깥에서 달리다가 안쪽으로 들어오는 아이, 달려오는 앞 주자의 바통을 재빨리 받기 위해 미리 앞서서 달려 나가는 아이 등 팀의 승리를 위해서 아이들은 물불을 가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준다.     


  발이 꼬여서 넘어지거나 받았던 바통을 놓쳐버리는 등 안타까운 일들도 있는데 가장 속상한 일은 맨 앞에서 달리다가 추월을 당하는 모습이지 않을까 한다. 또 그와 다르게 뒤에 있었지만, 앞 사람을 차례로 추월하여 앞으로 쭉쭉 나오는 모습은 보는 이들을 더 즐겁게 해주기도 해서 함성을 지르며 응원하게 되기도 한다.     


  보통 4명의 주자가 한 팀이 되어 뛰는데, 얕은 지식을 가진 내가 보기에는 앞 차례로 뛰는 주자가 어느 정도 앞서 나가주어야 그 팀이 승리하게 되는 경우가 많아 보인다. 아마 주자의 순서도 그렇게 정할 것 같은데, 첫 번째 주자와 마지막 주자는 좀 더 스피드가 있어야 할 듯싶다. 마지막 주자가 뛰기 전에 어느 정도 팀의 승부가 결정 나 있을 수 있는데, 팀의 순위가 너무 많이 뒤떨어져 있으면 즉, 5위나 6위가 되어 있으면 마지막 주자는 힘을 내기가 어려울 듯싶다.     


  1등에게만 허락된 결승점 테이프를 끊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5위나 6위의 마지막 주자는 어떤 자세로 계주에 임해야 할까…. 아무리 열심히 뛰어도 1등은커녕 2등도 되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달리게 되는 마지막 주자는 어떻게 해야 할까…. 달려야 할까…. 멈춰야 할까…. 아니, 열심히 달리지 않아도 용서가 되는 걸까. 멈추거나 걸을 수는 없으니….     


  하지만, 바라보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천지개벽이 일어나기 전에는 절대 바뀌지 않는 6위의 마지막 계주 주자라도 열심히 달리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한다는 것을 이번 학교 체육행사를 보고 깨달았다. 당연히 승리할 수 없지만, 2위도 어렵지만, 적어도 ‘열심히 뛰는 모습’을 보면서 손뼉을 치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았다. 꼴찌가 확정되어 있다고 ‘뛰지 않고 걸어가는 마지막 주자의 모습’은, 나를 슬프게 한다는 것을 알아버렸다. 1등이 아니어도 달렸어야 하지 않았을까…. 모든 사람이 테이프를 끊는 1등 주자에게 손뼉을 치고 있을 때 내 눈은 걸어오고 있는 마지막 주자 B를 계속 바라보면서 생각했다.     


 - 왜, 걷고 있는 거야!

 - 꼴찌라도, 뛰어야지!     


  그가 뛰는 것이 의미가 없는 일이었을까. 그가 뛰었어도 1등을 할 수 없었으니, 그냥 걷는 것도 괜찮았던 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B는 뛰었어야 했다.     


 - Meaningless! Meaningless! Everything is Meaningless!     


  성경의 전도서 1장 2절에 나오는 말씀,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라는 말씀이다.

   

 - Meaningless 

 1. (목적·가치 등이 없어서) 의미 없는[무의미한] (=pointless)

 2. 중요하지 않은, 아무 의미가 없는 (=irrelevant)

 3. (이해할 수 있는) 의미가 들어 있지 않은     


  전도서의 1장 초반부터 나오는 이 말씀은, 마지막 장인 12장 8절에도 나오면서 ‘vanity(헛됨)’, ‘futile(소용없는)’ 등과 같은 의미로 ‘인생의 허무함’에 대하여 계속 반복하고 있다. 살아보았자 결국 허무하게 끝나는 인생을, 살아가야만 하는 걸까…. 어쩔 수 없이 살아야 한다면 과연,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걸까…. 허무함으로 끝나버릴 텐데….     


  ‘Meaningless’를 반복하여 외치는 전도서에서의 ‘인생의 허무함’에 대한 질문에, 타락한 세상에 살고 있는 짧은 인생이지만, 우리의 평범한 삶에서 기쁨을 찾고 누리라는 것이 인생에 대한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학자들은 말한다. 결국은 모든 것이 허무하고 헛되지만, 그래도 짧고 평범한 삶에서 기쁨을 찾으며 살라는 것이라는 말일까….     


 <누구보다도 아내와 아이들을 사랑했고, 재능이 있었고, 열심히 살았고, 한때 행복을 거머쥐었지만, 결국 시대의 파도에 휩쓸리고 만 페르메이르, 죽을힘을 다해 살았는데도 그의 이름은 사후 까맣게 잊혔고, 남긴 작품 대부분은 빚을 갚기 위해 팔려나갔습니다. 아내는 남편이 죽고 혼자 어렵게 아이들을 키우다 12년 뒤 세상을 떠났습니다. 자식들은 뿔뿔이 흩어져서 어떻게 됐는지 알 수 없게 됐습니다. 그래서 그의 삶에 대한 연구 대부분은 법원 문서 등 공문서에 남은 몇 줄의 기록에 의존합니다.

  그나마 페르메이르는 작품이라도 남겼습니다. 사실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이 맞을 운명은 그보다 훨씬 허무할 겁니다. 운이 좋으면 유전자 몇 조각은 남길 수 있겠지만, 세상을 떠나고 난 뒤에 금세 잊히겠지요. 우리가 무슨 날씨를 좋아했고, 어떻게 웃었는지, 주말이면 뭘 했는지 기억하는 사람은 아무도 남지 않을 겁니다. 우리가 존재했다는 사실을 증명할 수 있는 자료는 건조한 공문서들 속 숫자, 아무도 들춰보지 않는 몇 줄의 기록뿐일 겁니다. 아등바등 산 결과가 그뿐이라니, 어찌 보면 시시합니다.

  하지만 페르메이르의 생각은 달랐던 듯합니다. 그가 그린 <우유 따르는 여인>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우유를 따르는 일 자체는 그저 매일같이 반복하는 아무것도 아닌 일입니다. 하지만 달리 생각하면 이런 평범한 일상 하나하나가 쌓여 삶을 구성하고, 이 세상을 돌아가게 하고, 비록 조그마할지언정 다음 세대에 흔적을 남기며, ‘나’라는 존재를 더 크고 위대한 무언가와 연결시킵니다. 그 어떤 신화나 종교의 그림보다도 숭고하게 느껴지는 이 작품은 이 같은 진리를 백 마디 말보다 더 잘 전달합니다.> 

- <명화의 탄생 – 그때 그 사람(성수영 지음> 중 (p278~280)     


  미술사에 이름을 남긴 화가 27명의 삶, 인생, 사랑 그리고 작품에 얽힌 이야기를 서술한 <명화의 탄생 – 그때 그 사람>을 읽으며 깨달았던 사실 하나는, 행복했던 순간이나 시절뿐만 아니라, 죽을 것같이 힘들고 괴롭고 지치는 삶의 어느 지점 또는 일평생 내내, 이들은 모두 그 어느 것에도 흔들림 없이 묵묵히 그림을 그렸다는 것이다. 붓을 꺾고 삶을 포기하고 싶을 때도 일단은 물감을 잡았다는 것이 너무나도 감동이었다.     


  350여 페이지의 글에서 몇 번을 더 읽게 만들었던 부분은 요하네스 페르메이르 즉, 베르메르(네덜란드, 1632~1675)에 관한 글이었다.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로 유명한 페르메이르는 15명의 아이를 키웠던 생활인이었기에 43세로 죽기까지 고작 35점의 그림밖에 남기지 못했지만, 천문학에도 관심이 있었던 실력 있는 화가였다. 


  그에 대한 저자의 서술이 나에게 유독 뚜렷하게 다가왔던 것은, ‘우리가 무슨 날씨를 좋아했고, 어떻게 웃었는지, 주말이면 뭘 했는지 기억하는 사람은 아무도 남지 않을 겁니다.’라는 슬픈 글귀 때문. 또 우리가 죽고 난 뒤 아무것도 남지 않고 허망하지만, 우유를 따르는 것 같이 반복되는 평범함이 모여서 삶이 구성되고 세상이 돌아간다는 말이 가슴을 울렸기 때문이다. 저자가 의도한 바는 아니었을 텐데 왜 저 문구가 마음에 남았을까.     


 - Meaningless! Meaningless! Everything is Meaningless!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라는 말이 사실이고 진실이지만, 아무리 뛰어도 꼴등인 것이 사실이고 진실이지만, 어떤 일을 한다고 결과가 뚜렷한 것도 아니고, 인정을 받는 것도 아니며, 어쩌면 거꾸로 욕을 들을 수도 있지만, 지금 너무 힘들어서 모든 것을 내려놓고 눈을 꼭 감고 고개를 돌려버리고 싶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하는 일을 하려고 책상에 앉아보려 애쓰는 너와 나의 모습이, 우리의 모습이 결과론적으로는 헛될 수 있어도, 지금을 살아가는 나의 삶에서는 ‘가치’가 있는 일이기를, 시간이기를, 의미 없음이 아닌 ‘유의미함’이기를 간절히 바라보며 소망해 본다. 그것이 보잘것없고 평범한 그 무엇일지라도….     


 - 왜, 걷고 있는 거야!

 - 꼴찌라도, 뛰어야지!     


  뛰기를 포기하고 걸었었던 B에게, 아니 어쩌면 B가 나로 보였기에 더 안타까웠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몇 마디를 덧붙여 본다.     


 - 움직이라고!

 - 욕을 먹더라도 뛰라고!

 - 다른 사람을 위해서가 아니라, 바로 너를 위한 거니까!     


****************     


*** 2024학년도 1학기 2차 지필고사까지 마친 1학년 아이들이 이런 말들을 한다고 한다.     


 - 내신 포기!

 - 정시 올인!     


  어떤 선택을 하건,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기를….     


* (2024.05.14.(화)) 한마음 운동회 계주에서 달리고 있는 아이들.     


  1등이 아니어도, 뛰어야 하는 자리에서 열심히 뛰고 있는 모습이 아름답다.     


  꼴등이 확실하더라도 뛰고 있으니, 의미 없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 의미 있는 일이라는 것을 믿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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