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lavecin Sep 22. 2024

* 자기 자리가 있나요? *

자기 자리가 있나요? (2024.09.21.()) *     


 - 자기 자리가 있나요?     


  A 영화관만을 가는 우리 가족은 늘 비슷한 자리에 앉는다. 앞에서 4번째 줄. 너무 뒤도 아니고 너무 앞도 아니고, 딱! 적당하다. 호수가 변하더라도 늘 이 자리를 예약한다. 앞에서 4번째 줄. 물론 B는 너무 앞이라고 투덜대지만, 딱! 우리 자리다. 다른 자리로 예약할 생각은 전혀 없다.     

  급식실에서도 내가 앉는 자리는 거의 비슷하다. 어른이 앉기에는 약간 좁은 식탁인데, 많은 양을 가지고 와서 오래 먹는 나로서는 오른손을 좀 더 자유롭게 움직이고 싶어서 오른쪽 끝에 앉는다. 가운데 자리가 비어있어도 가능하면 오른쪽 끝에 앉으려고 한다. 그리고 식당 안쪽을 바라보아야 한다. 그게 마음이 편하다. 자리가 없어서 문 쪽을 보면서 앉게 되거나 중간에 앉게 될 때는 내가 지금 무엇을 먹는지, 지금 무슨 이야기를 하면서 먹는지 감을 잡을 수 없을 정도로 불편하다. 거의 C 위치 식탁의 오른쪽 끝에 앉는데, 그냥 내 자리라고 이름표를 붙여 놓고 싶다.     

  처음 학교에 왔던 D가 질문했다.    

 

 - 학교 주차장에 자기 자리가 있나요?

 - 아뇨.

 - 주차장에 교장선생님이나 교감선생님 자리가 정해져 있지 않나요?

 - 정해져 있지는 않아요.

 - 그렇군요.

 - 자기 자리가 정해져 있지는 않지만, 주로 주차하는 구역들이 있죠. 저도 그렇고요.     


  운전하는 것을 ‘무척’ 즐기는 사람으로서 출퇴근 시간이 길고도 먼 길인 것을 굉장히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핸들을 이리저리 돌리면서 내가 가야 할 길을 내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멋진 일인지! 그날 해야 할 일을 생각하면서 출근하고, 그날 있었던 온갖 일들에 대한 감정을 풀면서 퇴근하는 그 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나만의 작은 공간, 운전석, 차 안이야말로 나를 치유하는 놀라운 곳이라 할 수 있다. 

  하루에 2시간 30분의 운전하는 시간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어떤 상태였을까. 하루에 2시간 30분 정도의 운전하는 시간이 없는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지내는 걸까. 어떻게 그 많은 감정들을 해소하는 걸까. 언제 생각하고 언제 풀고 언제 회복되는 걸까.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 걸까. 궁금하다. 

  운전하는 것을 너무도 좋아하지만, 차가 있는 사람의 가장 큰 고민은 주차하는 것일 것이다. 어느 장소를 방문하기 전에 주차장이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 필수이고, 주차하기가 쉬운지를 문의한다. 만약 주차장이 없거나 주차하기가 어려운 곳이라면 능숙하게 주차를 잘하는 사람의 차를 얻어 타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한쪽에 구겨져서 상당히 불편하더라도 말이다.

  학교 주차장은 넓지만, 어느 정도 걷느냐에 따라 주차하는 구역이 달라질 수 있다. 이때라도 운동해야 한다며 먼 곳에 대고 많이 걷는 분도 계시지만, 나는 가능하면 입구 가까운 쪽에 대고 몇 걸음만 걷는 (게으른) 편에 들어가는 사람이다. 입구와 가까운 쪽은 늘 만석이어서 이곳에 주차하기가 쉽지 않은데, 이 구역 어느 곳이라도 일단 자리가 비어있으면 웬만하면 그냥 주차해야 한다. 출근을 빨리하시는 분들이 많아서 자리가 다 차버리지만, 가끔은 안쪽에 빈 곳이 있었던 경우도 있어서 용기를 가지고 밀고 들어가기도 한다. 그러나 끝까지 들어갔지만, 주차할 곳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200m가 넘는 거리를 벌벌 떨면서 후진한 채로 나왔던 적도 자주 있다. 그런데도 가끔 찾아오는 그런 행운을 바라며 아직도 그냥 밀고 들어가고 있다. 그러면서 속으로 이렇게 기도한다.     


 - 하나님, 저를 위하여 준비된 곳이 있겠지요.     


  이 기도가 응답될 때도 있고, 응답되지 않을 때도 있지만, 늘 이렇게 기도하며 주차할 곳을 찾는다. 재미있다. 집에 있는 주차장은 조금 수월하다. 보통은 원하는 곳에 주차할 수가 있는데, 아주아주 가끔 내가 원하는 곳이 아닌 곳에 힘들게 주차해야 하는 때도 있다. 

  학교에서나 집에서나 내가 선호하는 주차 공간은 어떤 곳일까. 내가 선호하는 곳은 오른쪽이나 왼쪽에 기둥이 있거나 비어있는 공간이다. 주차할 칸이 3개가 있다면, 가장 선호하는 것은 운전석 쪽에 기둥이나 공간이 있는 곳, 그다음은 오른쪽에 기둥이나 공간이 있는 곳, 가운데 공간은, 그곳밖에 자리가 없다면 모를까 선택하지 않는다. 이유는 운전석 문을 마음껏 활짝 열 수 있는 공간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신기한 것은 나와 같은 사람이 많은 건지, 집에 있는 주차장에는 3칸 중 가운데 칸만 비워놓고 주차해 놓은 곳들이 많다는 것이다. 모두 나처럼 운전석 문을 활짝 열고 싶은 걸까.

  학교에서나 집에서나 주차된 차들을 보면 대부분 주차하는 곳들이 정해져 있다. 선호하는 구역이 있는 것이다. 나처럼 바깥에 대는 것을 즐기는 사람도 있고, 신기하게도 늘 가운데에 대는 사람들도 있다. 언젠가는 주차할 곳이 비어있었지만, 늘 B라는 차가 세우는 곳이어서 어쩔 수 없이 그곳을 피해서 다른 곳에 세웠던 적도 있다. 또 ‘왜 저곳에 세울까’하고 생각하게끔 하는, 언제나 통로에 마음대로 세워놓는 차도 있다. 어떻게 할 것인가. 선호하는 구역이라는데.

  그런데 몇 달 전 집에 있는 주차장을 돌다가 새로운 곳이 보이는 경험을 했다. 지금까지 전혀 고려 대상이 아니었던 곳이었는데 갑자기 내 눈에 확 들어온 것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이용하던 곳보다도 훨씬 더 좋았다. 주차장에 내려와서 가운데만 바라보았던 내가 살짝, 아주 살짝 옆으로 눈을 돌린 것뿐인데, 한 칸의 간격도 넓었고 다른 차들도 놓친 구역이어서 비어있을 때가 많았다. 역시 운전석의 문을 아주 활짝 열어도 넉넉한 공간이었다. 한 곳만 바라보던 내 시야가 갑자기 확 터진 느낌이라고나 할까. 그동안 왜 이곳을 보지 못했을까. 왜 바라보던 곳만 바라봤을까. 왜 하던 일만 계속했을까. 왜, 다른 것은 생각해 보지 못했을까.     


 - 자기 자리가 있나요?


  ‘여기는 당신 자리입니다’라고 누가 정해주지 않았지만, 영화관에서도 앉는 자리가 늘 똑같고, 급식실에서도 앉는 위치가 늘 정해져 있는 나라는 사람은, 새로운 경험을 하는 것을 불안해하고 불편해해서 잘 하지 않는다. 그리고 늘 습관대로 같은 루틴을 반복한다. 그리고 같은 사람을 비슷한 시간에 만나서 비슷한 일을 한다. 그것을 성실하다고 말할 수도 있겠고, 지루하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갑자기 새로운 주차 자리를 발견한 것처럼, 어떤 변화가 찾아오면 또 그것에 금방 빠져서 잘 적응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나의 자리’로 만들어 버린다. 그리고 나의 삶으로, 내 사람으로 만들어 버린다. 어딘가에 한 번 빠지면 진득하니 꿈쩍도 안 하지만, 또 어떤 변화가 찾아오면 거기에 또 흠뻑 빠져버린다는 것을 알기에, 쉽게 눈을 돌리지 않는 것 또한 나의 특징이다.

  추석 연휴가 끝나니 어느새 9월 하순이 되어버린 지금, 나의 삶에서 달라진 것은 새로운 주차 자리 하나를 발견한 것뿐이지만, 무언가 새로운 변화가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본다. 또 다른 ‘나의 자리’ ‘나의 삶’ ‘나의 사람’은 어디에 있을까….


 *****************     


*** 2025학년도 학교 설명회가 있었다. 어제부터 내리는 비로 인해서 사람이 많이 올까 걱정했지만, 밀려드는 인파로 인해 성황리에 잘 마치게 되었다. 

  올해 내가 맡은 부분은 여자 기숙사였는데, 아주아주 오래전에 기숙사에 들어가 보고 오늘이 처음이었기에 30분 전에 미리 가서 사감 선생님의 설명을 들으며 기숙사 탐방을 먼저 했다. 또 선생님과 많은 이야기도 나누면서 의미 있는 시간이 되었다.

  우리 학교에 ‘자기 자리’가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기숙사를 보러 온 중3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 내년에 보아요!     


  자기 자리를 확보한 31기가 누비고 다닐 2층과 4층의 여자 기숙사. 벽면에 붙어 있는 시트지 색채가 매력적이다.      


#자기_자리#주차장#운전#주차#선호#다른_것#내_자리#루틴#습관#변화#적응#나의_자리#나의_삶#내_사람#나의_사람#새로운#학교_설명회#기숙사#여자_기숙사



작가의 이전글 * 혼자서도 잘 살 수 있어! *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