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력한 유감

글쓰기에 대한 생각

by 황진혁

우리는 누군가에게 음식을 대접받거나, 그림을 선물 받거나, 기타 예술·기술·의술을 지원(또는 제공)받을 때면 큰 고마움을 느낀다. 그런데 글을 도움받거나 선물 받거나 하면 다른 분야에 비해 온당한 고마움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아마도 문자라는 게 누구나 쓸 수 있는 스킬이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런 점에 있어선 카메라가 기술적으로 발달한 사진 분야도 비슷한 처우를 받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문자에 어떤 걸 담을 수 있는가를 놓고 따지면 사람마다 수준과 실력에 따라 다를 것이다. 글을 직업으로 삼는 사람들 대다수가 이견이 없는 내용이겠지만 대개의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 ‘글 몇 자 써준 것’의 고마움은 그리 큰 감정이 아닌 것이다. 나는 이런 일들에 ‘강력한 유감’을 가지고 있다.


예컨대 요즘은 결혼식에 주례를 두지 않는 추세이지만 성인이 되고 출세에 목매달며 살아온 젊은이들이 결혼을 하면서 주례라도 모시면, 본인의 출세 수준이나 분야·위치에 비해 별 관련도 없는 대단한 사람 불러다 주례를 부탁하기는 쉬울 수 있으나 평생 문학이라고는 문턱도 가보지 않은 무지함으로 문학가에게 멋드러진 주례사를 들어볼 형편은 되지 못할 것이다.


직업 부심을 가진 사람으로 볼지도 모르겠는데, 한번은 친구 몇과 사담을 나누는 자리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다가 일을 내고 말았다.


친구 하나가 “글 몇 자 써준 거 가지고 절이라도 해야 하는 건 아니지 않냐?”는 핀잔을 받은 것이다.


그때는 몰랐는데, 그날 내가 했던 말을 돌이켜보면 나는 그 말에 제법 모욕감을 느꼈던 것 같다.


듣자마자 “넌 음식을 대접받거나 그림을 선물 받거나 기술을 제공 받으면 절할 정도로 고마움을 느끼는 모양이다.”라며 비꼬았고, 그는 “문자는 누구나 쓸 수 있는 건데 다른 것과 같을 수 있냐”고 반박했다. 나는 여기에 “넌 그래서 누구나 쓸 수 있는 문자로 논문을 못 써서 몇백만 원이나 내고 대필 불러다 갖다 썼냐?”고 일갈했다.


그 일이 있은 후 당사자와 현재까지 연락하지 않는다. 솔직히 이 일에 먼저 잘못한 것 같지는 않아서 사과할 생각은 없다. 다만 남의 일에 ‘잘못했네, 잘했네’를 말하려던 것이 아니라 어떤 것이든 남에게 신세를 지면 깊이 고마워할 줄 알아야 됨됨이가 있는 사람이라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이 이렇게 되어 아쉬움은 있다. 나도 글에 그만한 가치를 느낀다면 언어로 남을 아프게 하지는 말았어야 했는데 말이다. 나는 이런 스스로에도 ‘강력한 유감’을 가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