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 자는 함무라비의 코털을 건드렸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에 관한 고찰

by 황진혁

우리의 DNA는 아주 오래전부터 ‘주는 만큼 갚는다’는 이치에 익숙해져 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법을 만든 함무라비는 지금으로부터 4천 년 전의 인물이니 그 이상의 근거도 필요 없는 이야기다.


때문에 사람은 상대방이 화를 내면 나도 따라 화를 낸다. 우리는 그렇게 나도 모르게 상대방보다 더 크게 화를 내야 제압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해선 화난 상대방을 제압할 수가 없다. 때로는 부드러운 것이 단단한 것을 이길 수도 있다. 유약한 것이 강함을 이길 수도 있다. 부족한 것이 완벽함을 이길 수도 있다. 불을 더 큰 불로 제압하는 것이 아니고 물이 다스릴 수 있듯, 또는 물을 더 큰 물로 제압하는 것이 아니고 바람이 다스릴 수 있듯 상대방이 화를 내면 왜 화났는지를 살피고 그 문제를 해결해주는 방향이 화난 상대방을 다스리고 순한 양으로 만들 수 있다.


상대방이 내게 화를 내는 경우와 마찬가지로 인생도 우리에게 화를 들고 찾아오는 경우가 있다. 당연하지만 이럴 때 자신의 인생에게 더 큰 불행을 안겨서 화를 제압하는 바보는 없다. 그런데 여기서 평범한 사람과 영민한 사람의 태도는 분명 다르다. 범인(凡人)은 화를 화로 대하겠으나 대인은 인생에 찾아온 화를 복으로 대한다. 화 속에 분명 복이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반대로 눈 앞에 좋은 것이 있어도 범인은 마냥 좋은 것인 줄만 알고 경계를 풀고 방심하지만 대인은 그것을 경계하며 돌다리 두드리듯 신중하게 대한다. 역시 복 속에 화가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눈에는 눈이 아니라 상대방의 눈에는 먼저 다가가고자 하는 나의 손으로 반응하고, 이에는 이가 아니라 상대방의 이에는 하고자 하는 말을 들을 준비가 된 나의 귀로 반응하여 확실한 내 사람이 되도록 해야할 필요가 있다. 같은 말이다. 우리의 인생도 화를 복 같은 친구로 만들고, 복을 확실하게 내 것이 되도록 주의하여 가질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적어도 기원전 16세기의 인류와 우리는 좀 달라야 할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