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자존감 수업

그대에게 거는 최면이 아니라, 그대에게 걸린 최면을 푸는 중입니다.

by 황진혁

지인과 전화를 나눴다. 그는 요즘 자존감이 낮아진 것 같아 고민이라는 말을 했다.


“너, 요즘의 문제가 아니라 평소 ‘자존감’이라는 말 되게 자주 쓰는 거 알아?”


자존감이라는 말은 90년대부터 생긴 단어로 알고 있다. 학계에서도 이 단어가 옳은 표현인가 아닌가 논란이 좀 있는 편인데, 적어도 내 사전에는 이런 용어가 없다. 독자들께도 가급적 이런 단어는 머릿속에서 지우시라고 권한다. 자존감이 낮아진 것이 아니라 다만 ‘좀 덜 행복한 상태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편이 좋다.


자존감을 회복하는 데는 시일이 짧든 길든 얼마간 걸릴 수 있지만 단지 좀 덜 행복한 상태라면 회복의 개념이 아니라 좋아하는 걸 하거나 싫은 걸 달리 생각하거나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자존감이 낮아졌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면 우울해지거나 심지어는 비참해질 수 있지만 좀 덜 행복함을 느꼈다고 비참해지는 상황까지 내몰리는 사람은 없다.


아주 행복하지 않은 상황도 있지 않냐고? 그땐 내려갔다고 느낄 자존감 같은 것도 존재하지 않을 뿐더러 그냥 그 자체로 재앙이다. 자존감 내려간 게 재앙과 비교할 문제는 아니지 않은가?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자존감이 자주 낮은 사람은 내성적인 성향에 자주 겸손한 사람일 수 있다. 이런 경우 칭찬을 받을 만한 일이 있어도 ‘받아도 되는 칭찬이 아닐 것 같아’ 그렇지 않다며 쉬이 받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자기PR 시대에 겸손은 미덕이 아니다. 약간의 자뻑은 스스로를 긍정적이게 한다.(심지어 구원도 한다.) 그때도 자존감이 올라간 것이라기 보다는 마음이 좀 들뜬 것에 불과하다. 즉 자존감이 오르고 내리는 상황에 따라 감정에 휩싸여 끌려다니는 것이 아니라, 감정의 변화에 따라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주체적인 태도가 중요하다.


감정에 휩싸이면 사람은 마음에 여유를 갖지 못한다. 사실 무엇이든 누군가에게든 끌려다니면 심적으로 생길 수 없는 것은 여유이고 생길 수 있는 것은 스트레스뿐이다. 이는 당연한 이치이다. 거꾸로 말하면 자신이 스스로를 리드할 수 있는 사람은 자유로운 사람이다. 자유는 곧 여유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자유는 곧 책임이지 않으냐고? 맞다. 그래서 자유로운 사람은 강한 사람이기도 하고 여유가 있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그냥 한가롭기만 하여 앞가림도 못하는 부류와는 또 다른 부류이다.


자존감이 낮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다시 한번 잘 생각해보라. 아마 단지 좀 덜 행복한 상태일 뿐일 거다. 그러니 내일은 당신이 행복해지는 걸 하셨으면 좋겠다. 그때는 내 말을 확실하게 실감할 테다. 당신이 느끼는 행복 앞에서 그 '낮아진 자존감'이라는 게 얼마나 아무 것도 아닌 생각처럼 사라지는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