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랄: 마구 법석을 떨며 분별없이 하는 행동을 속되게 이르는 말.
강연장에서 청중들과 이야기한 적이 있다. 사랑하면 일어나는 일에 대하여. 상대방을 향해 사소한 걸로 싸움을 일으키고 변덕을 부리고 쉽사리 화를 못 가라앉히고 상대방의 감정은 눈에 보이지도 않을 때. 이 감정이 무얼까에 관하여.
사회에서 이런 사람을 만나도 피곤한데 안식의 대상으로부터 이런 일을 겪는다면 그걸 우리는 무어라고 말할지를 놓고서. 그것이 사랑하기 때문이라 할 수 있을까를 돌아보기로 하면서. 우리는 고민했다.
엄밀히 말하면 이런 일은 사랑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사랑할 줄 모르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에 가깝다. 보다 정확하게는 지랄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다. 사랑할 줄 모르기 때문에 사랑의 대상에 사랑이 아닌 엉뚱한 걸 내밀어 문제를 일으키고 만다. 그러니 지랄이다.
당연히 사랑하는 관계의 헤어짐도 사랑 때문에 일어나는 게 아니라 사랑하는 관계임에도 지랄 때문에 일어나는 거다. 대개의 싸움이 다 그럴 테지만 특히 사랑하는 두 사람 사이에 사랑이 문제였던 적은 별로 없다. 늘 지랄이 문제였고, 지랄이 지랄을 낳아서 문제였다.
물어야 한다. 오늘 나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을 했는가, 지랄을 했는가. 상대방을 사랑으로 품어보려 했는가, 자신의 지랄까지 상대방에게 품어내길 종용했는가. 지랄맞게 사랑한다며 지랄에게도 사랑에게도 뻥을 치며 합리화 했는가, 사랑이 온전히 사랑이 되도록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섰는가를.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들은 그렇다. 자기 사전에 사랑이 없는 사람은 뭐라도 내밀며 그게 사랑이라고 우겨야만 한다. 그것은 허세와 별로 다르지 않은 지점에 놓여 있는 행위이다.
다만 명심할 것은 부와 명예에 관한 허세가 타인에 존중받지는 못할지언정 인생을 나락까지 빠트리는 경우는 드물겠으나, 사랑에 관한 허세는 타인에게 무존중이 아닌 무관심을 유발하며, 다른 인생이 아니라 자기 인생을 나락까지 밀어넣고 만다는 것이다. 이런 감정은 스스로에게 스스로로 하여금 우울감을 일으킨다.
라는 정도로 말이다. 말하고 보니 황작가도 강연장에서 사랑을 말했다기보다는 지랄을 말했더랬다. 강연 원고를 쓰다보니 그날 나는 1년에 쓸 그 말을 하루새 다 쓴 듯하다. 역시 지랄도 유분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