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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의선 Jul 02. 2023

혁신가가 되기 위한 길

악법도 법이다.

오래되진 않았지만 약 1년 6개월 전 신사업 파트로 이동하여 새로운 서비스를 출시해 보고 현재도 신기술을 활용한 사업추진 부서에 근무하다 보니, 나라는 사람에 대해 '혁신가'라는 이미지가 포지셔닝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근무하는 회사가 국가의 규제를 많이 받는 금융산업 카테고리에 속해있으므로 외부 인터넷과 차단된 망분리법의 적용을 받게 되고, 이로 인해 임직원 전체가 외부 환경에 격리되어 본인의 업무를 수행한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급변하는 IT환경에 둔감해지게 된다. 따라서 신사업 파트에 근무하거나 하는 특수환경에 처한 몇몇 사람들에 대해 바라보는 시선이나 기대감이 남들보다는 조금 다른 것 같다.


이러한 환경적 조직적 특수성으로 인해 내가 받는 장점이 있기는 하다. 위에서 언급한 혁신 가라는 이미지, 새로운 기술을 선도적으로 적용해 볼 수 있는 기회, 자기 주도적으로 일할 수 있는 분위기 등등..


하지만 사람 사는 세상에 모든 일이 그렇듯이 장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신사업 또는 신기술을 추진하는 부서 사람들의 어려움은 어떤 것이 있을까?



1. 자원이 공평하게 분배되지 않는다.


일반 부서에게 많은 자원이 할당되는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지금 당장 변화하지 않는다고 해서 회사가 위기에 처하거나 하는 것이 아니기도 하고, 신기술 추진 부서가 지금 당장 엄청난 성과를 내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빠른 성과를 추구하는 한국 사회에서 경영진의 의지에 따른 장기적이고 일관성 있는 투자가 지속되는 것도 기대하기는 힘들다.



2. 대부분의 사람들은 변화를 싫어한다.


새롭고 편리한 기술이라고 해서 사람들은 변화를 곧바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사람들에게는 관성이라는 것이 존재하므로 새로운 기술에 적응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시간이 걸린다. 그 시간은 1년이 걸릴 수도, 10년이 걸릴 수도 있으므로 기술을 선도하는 사람들에게는 인내심이 필요하다. 

미국의 발명가 헨리 F.필립스처럼 말이다.


1930년대 초반 미국인 발명가 헨리 F. 필립스는 (지금은 보편적으로 쓰이는) 십자나사와 십자드라이버를 발명했다. 그가 내놓은 발명품은 기존에 사용하던 일자 나사보다 확실히 뛰어났다. 간혹 오래된 일자 나사를 접할 때마다 느끼겠지만, 일자 나사는 드라이버가 자꾸 미끄러져서 일하다 보면 입에서 십 원짜리(?)가 튀어나온다. 반면, 필립스 드라이버는 중심을 잡아주며 미끄러지지 않는다.

새로운 발명품이 확실히 뛰어났지만, 황당하게도 사람들은 계속해서 일자 나사를 사용했다. 필립스는 굉장히 곤혹스러웠으리라. 더 나은 발명품이 찬밥 신세였으니까. 나중에야 보편적으로 쓰이게 되었지만, 당시 필립스는 그 사실을 알 리가 없었다. 현재를 아는 입장에서 1930년대로 돌아간다면 필립스를 격려하고픈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다.

"조금만 더 참고 견디세요."라고 필립스에게 말한다. "역사는 당신 편입니다. 새로운 제품에 일자 나사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 날이 옵니다. 필립스 나사가 널리 쓰이게 됩니다.” “그래요? 그게 언제죠? 얼마나 더 기다려야죠?"

“흠, 몇 년만 더 기다리면 됩니다. 그때만 되면.......”

“몇 년이라고요? 1935년이나 1940년이 되어야 사람들이 내 발명품을 쓴다는 말입니까"

"사실은 1985년이나 1990년이 되어야 합니다."

“으악!"



3. 법과 제도가 변화를 가로막는다.


엘빈 토플러는 기업은 시속 100마일로 변화하고 시민단체가 90마일, 가족이 60마일, 노동조합이 30마일, 정부가 25마일, 공교육이 10마일, UN을 비롯한 다국적 기구가 5마일, 정치조직이 3마일, 법과 법기관이 1마일로 변화한다고 말했다. 


그만큼 법과 정치조직 차원에서 새로운 변화를 도모하기 어렵다는 뜻일 것이다. 기업이 100마일로 움직인다고 나와있지만 내가 몸담고 있는 기업의 경우 공기업 성격을 갖고 있는 금융 산업에 속하기도 하고, 내부규율이 엄격한 조직이기 때문에 촘촘하게 얽힌 규제 및 내규망을 뚫고 혁신을 추구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법과 정치는 혁신가가 넘어야 할 가장 큰 산이다. / 출처: 매일경제-[집중토론] 앨빈 토플러 신작 `부의 미래`



법과 제도의 벽에 가로막혀 실패한 혁신의 사례로는 '타다'가 대표적이라고 볼 수 있다. 2018년 10월 출시된 렌터카 기반 승차 공유 서비스 타다는 당시 차별화된 서비스로 돌풍을 일으켰지만 국회에서는 법망을 교묘히 피해간 꼼수로 치부했고 결국 타다금지법을 만들어 서비스를 중지시켰다. 


발전을 위해서는 혁신이 필요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당시에는 규제개혁에 소극적인 상황이었고 특히 택시업계에 미치는 우려가 당시에는 더 컸기 때문에 정치권에서도 이러한 결정을 했을 것이라고 본다..라고 하지만 타다의 사례는 아쉬움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그만큼 법과 제도는 변화를 가로막는 매우 큰 요인이라는 뜻이다.


반대로 법과 제도망을 뚫고 혁신을 일군 사례로는 단연 '토스'의 사례를 들 수 있다. 

2014년 3월 개시한 간편 송금 베타 서비스는 초반부터 흥행했지만 금융당국의 결정에 의해 한 달 반 만에 셧다운 됐다. 하지만 2015년 대통령의 금융 규제 완화 주문 이후 당국은 토스 서비스를 사실상 허용하는 유권해석을 내렸고, 같은 해 5월 23일 토스는 다시 서비스를 재개했다. 


토스와 타다의 사례는 새로운 서비스가 성공하는 데 있어서 법과 정치권의 역할이 얼마나 막강한지를 알게 해 준다. 두 서비스 모두 법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불법 딱지가 붙을 수도 있는 생사의 기로에 있었음을 감안하면 말이다.




나는 신기술 추진부서에 근무하면서 항상 생각하는 것이 있다.

바로 "'타다'의 사례가 되지 말고 '토스'의 사례가 되자."는 것이었다.


새로운 기술과 서비스는 기존의 법과 제도의 모호한 경계선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들게 되고 이를 해석하고 승인하는 것은 '사람'이다. 그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도록 계속해서 설득하고 동기를 유발해야 한다. 절대로 우리가 진리인 양 그들과 싸우려고 해서는 안된다. 그들의 요구를 계속해서 들어주지만 때가 왔을 때를 대비해서 신중하게 칼을 갈고 있어야 한다. 


아무리 좋은 의도로 만든 서비스와 기술이라도 중지된 서비스는 아무 의미가 없다. 


꿈을 이루기 위해, 

새로운 시대를 열기 위해, 

이보 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를 생각해 보자.


나는 '타다'와 같은 사례가 되고 싶지 않다. 소크라테스가 했던 말을 기억하자.


악법도 법이다. 나는 법률을 이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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