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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야블라썸 May 20. 2023

뜻 밖의 부고장

#21. 토요일, 저녁 7시

"어! 이건?"


미처 마시던 커피를 야무지게 머금지 못하고 자신도 모르게 터져 나온 탄성으로, 선우는 입속 커피를 내뿜고 말았다. 흡사 마시던 커피의 카페인이 신체에 즉각 반응을 일으킨 것처럼, 4교시임에도 몽롱하던 선우의 정신이 확 깨어났다.  


광복절 다음날, 중학교보다 일주일 빨리 개학을 맞은 선우의 뇌는 아직도 방학 때처럼 느릿느릿할 뿐이었다. 잠시 멍할 틈도 없이 돌아가는 시정은 선우가 정신 차리고 제대로 챙기지 않으면 여러 전달사항이나 업무들을 놓치기 일쑤라, 커피에 과의존하고 있는 상태였다.


하지만, 방금 확인한 메신저의 부고 알림은 커피의 카페인보다 훨씬 더 강력한 각성 효과가 있었다.


                                                                            - 訃 告-

희망중학교 영어과 이연희 선생님의 부친께2023년 8월 18일 별세하셨기에 삼가 알려드립니다. 

빈 소: 지성대학병원 장례식장 103

발 인: 2023. 8. 21.(일) 10

                                              2023년 819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뭐야? 진짜, 내가 아는 그 연희야?'


내뿜은 커피가 노트북 모니터와 자판에 튀어 얼룩졌지만 다급한 마음에 그런 것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민아가 지금 수업이 있는지 없는지 그런 것조차 헤아릴 겨를도 없이 바로 전화를 걸었다. 다행히도 민아가 금방 전화를 받았다.


- 어, 선배? 왠일이야?


"어, 다행이다. 너 수업 없었구나?"


- 나? 난 중학교라 아직 방학인데? 다음 주 월욜부터 개학이야.  


"아, 그렇지. 다른 게 아니고, 학교 메신저에 부고 소식이 떴는 데, 연희 아버님 부고 소식이 뜬 것 같아서..."


- 어? 정말? 히잉, 연희 언니 어떡해? 학교 메신저에 그런 게 떴으면, 먼저 확인한 과사람들이 연락하지 싶은데, 내가 영교과 친구한테 한번 알아볼께. 근데, 선배 지금 가보고 싶어서 물어보는 거지?


"내가 가보는 게 이상할까?"


- 이상하긴. 우리 여행도 같이 다녀온 사이잖아. 가게 되면 나랑 같이 가보자. 시간 맞춰서...


"그래, 고맙다. 그럼, 알아보고 연락 줘."


선우는 이 부고장의 주인공이 연희 아버지가 아니기를 바랐다. 하지만, 여행 중 엄마에게 미안해하던 연희의 말이 떠올라 어렴풋했던 의혹이 확신이 되었다.


아버지 부재의 의미를 알기에, 선우의 마음이 큰 파도가 일렁이는 바다처럼 슬픔으로 일렁거렸다. 선우가 겪었을 당시만큼 연희가 어린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연희가 아파할 마음이 느껴져 선우의 마음도 덩달아 아팠다. 지금 당장에라도 연희를 꼬옥 힘주어 껴안아 주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검은 상복을 입은 연희를 상상하니 심장이 아리고 자연스레 눈꺼풀이 내려와 눈이 감겼다. 아린 심장이 제대로 뛰기는 하는 지 확인할 요량인 듯 왼쪽 가슴에 조용히 오른손을 얹고 자신의 심장 박동을 느꼈다. 텀블러에 담긴 커피는 한 모금밖에 줄지 않은 채 처음 그대로 얼음이 동동 떠 있을 뿐이었다.


여행 후 한 번도 연락 없던 연희에 대한 이유가 다 설명되는 듯했다. 연락 없던 연희에 대한 원망도 스르르 녹아내려 모두 용서가 되었다. 하지만, 연락 없던 연희의 모습은 더 세밀하고 뚜렷하게 떠올라 못 견디게 보고 싶었다. 그리움이 눈물이 되기 직전, 민아에게서 연락이 왔다.


- 선배가 아직 수업 안 들어가서 다행이네. 알아보니까, 오늘이 금요일이라서 과 동기나 친한 선배들은 모두 오늘 저녁에 방문할 예정인가 봐. 그래야, 오늘 늦게까지 있어도 안 부담스러울 테니까. 선배도 오늘 같이 갈래? 동아리 친구들도 가긴 할 건데, 걔네들은 내일 간다고 하네.


"그럴까? 너도 오늘 빨리 가보고 싶은 거지?"


- 그렇지. 난 빨리 가서 언니 꼬옥 안아줘야지. 선배도 그러고 싶지?


"으응? 나? 응, 그렇지. 여튼, 학교 마치고 연락할 께. 같이 만나서 가자."


- 그럼, 내가 퇴근 시간 맞춰서 선배 학교 쪽으로 갈께.


"그래. 그렇게 같이 이동하면 되겠네. 이따 봐."


- 알았어. 나 볼 때까지 울지 말고, 수업 잘해.


"하아~, 이 순간까지도 빈틈없이 까부냐? 오늘은 좀 봐주지 그래? 여튼, 이제 끊는다."


- 어~ 선배.


민아의 장난에 오늘은 도저히 맞장구 칠 힘조차 없었다. 오로지 연희 생각뿐이었다. 과연, 연희를 보게 된다 해도 많은 사람들 앞에서, 자연스럽게 연희를 안아 위로해 줄 수 있을까? 이럴 때는 어느 정도가 적당한 거리인 걸까? 연희가 걱정되면서도, 다른 사람들에게 보일 두 사람의 관계는 더 신경 쓰였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퇴근 시간이 되어, 민아가 선우 학교 앞 정문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차를 몰고 나온 선우는 정문 앞에 검은색 원피스를 입고 서있는 민아 앞에 차를 세우자, 민아가 얼른 올라탔다.


"선배, 봤어?"


"뭘, 또?"


"어휴, 여학생들이 잘생긴 총각 쌤 차 얻어탄다고 나를 모질게 꼬라보더라."


"그게, 말이니? 방구니?"


"정말 몰라서 하는 소리야? 나 방금 선배 애인으로 오해받을 뻔했다는 거지."


"어휴~. 무섭게 뭔 소리야? 오늘은 좀 봐주라. 농담할 힘도 없어. 그나저나, 조문객은 많을까?"


"아마, 별로 없을 것 같아. 친척도 별로 없다고 들었던 거 같아. 같은 과 사람들과 동아리 사람들, 학교 선생님들이 다수가 아닐까?"


"글쿠나. 아버님이 오래 입원해 계셨던 것 같던데, 연희가 그동안 많이 힘들었을 것 같아서 맘이 많이 그렇네."


"나도 언니 보면 바로 눈물 터질 것 같아."


병원 장례식장으로 가는 길에 둘은 울적해진 마음으로 더 이상 말을 이을 수 없었다. 장례식장에 들어서자, 국화꽃 장식 가운데 자리한 고인이 걱정근심 없이 환한 얼굴로 민아와 선우를 맞이했다. 웃고 있는 고인에게 두 번 절을 올리고 난 후, 맞절하고자 마주한 유가족은 검정 저고리와 치마를 입은 두 여인 뿐이었다. 맞절하고 일어서자마자, 민아가 연희를 꼬옥 안고 엉엉 울었다.


"언니, 어떡해? 언니이~"


연희는 민아의 품에 안긴 채 고개를 파묻고 함께 엉엉 울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김여사도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 선우도 연희와 민아, 두 사람의 등을 토닥이며 눈물을 훔쳤다. 아직 민아와 선우는 이런 장소가 낯설어서, 어떻게 연희를 위로해야 될지 몰라 꾸밈없이 자신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토해내며 한참을 울었다.


이어지는 조문객으로 감정을 수습한 연희는 다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조문객들과 맞절을 하며, 덤덤히 자신의 역할을 수행했다. 민아와 선우는 언제든 연희가 필요로 할 때면 달려갈 수 있도록 빈소가 잘 보이는 위치의 식탁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 때였다.


"어?"


조문객 중 누군가가 자신도 모르게 소스라치게 놀라 무의식적으로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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