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 시절 어쩌다 라면과 케첩을 비벼 먹던 이야기를 꺼내면 선배들 첫 반응은 ‘WTF, 이런 미친’ 일색이었다. 아무도 어떤 맛이 나는지, 과연 맛이 있는지 따위는 묻지 않았다. 그건 취향 차이라기보다는 어떤 공포나 의도한 무시에 가까웠다. 다들 평소 좋은 음식을 즐겨 라면에 싸구려 조미까지 더해지는 걸 이해 못한 때문인지도 몰랐다. 맞다, 슬라이스 치즈 두 장 얹는 것도 타박을 듣곤 했구나.
라면만도 셀 수 없는 종류가 있거니와 토마토는 국적을 망라한 인기 요리들의 베이스가 되곤 한다. 토마토만 끓여도 꽤 괜찮은 수프가 나오니까. 한데 라면과 케첩의 만남은 타이거즈와 자이언트의 합작도 아니고 어쩜 그리 한 치 망설임 없는 반대가 튀어나왔던 걸까.
촉촉이 육수를 머금은 라면 한 젓가락을 접시에 올려 케첩 서너 방울과 비벼 주면 ‘농심 스파게티’와 지난 세기 유명을 달리한 ‘케챂범벅’의 경계에 선 묘한 맛을 띤다. 종류에 따라 다른 맛이지만 짜고 매운 라면일수록 잘 어우러지는 편이다. 이 정도 강한 조합은 아니어도 라면 끓일 때 토마토 홀이나 케첩 반 컵 정도를 더하면 또 재미있는 맛이 오른다. 케첩과 야채참치를 함께 쏟은 것도 괜찮은 반응이었다.
사람의 감각은 간사해서 날씨나 상대의 눈빛,의상, 포즈에 따라 헐크의 그것처럼 셔츠를 찢고 솟아오르거나 분리수거되는 깜장 봉다리처럼 쪼그라들기도 한다.하여 아주 오래된 연인처럼 익숙해 그 어떤 기대도 품게 되지 않는 라면과 케첩의 조합도, 가끔은 작은 차이로 서프라이즈한 케미를 만들어내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냥 그런 말이 하고 싶었다. 취향에 따라 좋아할 수도, 싫어할 수도 있겠지만, 그게 무지 또는 편견은 아니었으면, 당신이 전혀 닿을 수 없는이상한 나라는 아니었으면, 하고 말이다. 그러니까 나를 키운 건 팔 할이 라면회사인 데다 집에서도 가까운데 어디 자리 없습니까 농심? 따위의 헛소리로 오늘을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