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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도연 Apr 07. 2021

참치 한 캔의 사치

가난은 돈이 정하는 게 아니었구나

대학시절 이 군은 늘 술자리에 없었다. 방에서 혼자 저녁 대신 소주 한 병과 새우깡 한 봉을 깠다. 자취생의 가벼운 지갑 사정 때문이기도 했거니와, 과한 음주를 즐길 여유가 없었다. 노력한계를 느끼면서도 싸우는 걸 멈추지 않았다. 소주와 새우깡은 의지를 되새기는 의식이었는지도 모른다. 소주가 썼겠다, 싶다. 때문인지 그가 취한 걸 본 일이 없다. 늘 단단한 부산 남자, 의 이미지를 365일 지켰다.


3학년 2학기에는 휴학하고 부산에서 피자 가게 알바로 꼬박 천만 원을 모으기도 했다. 매일 도시락을 싸 들고 출근했고, 회식 자리 한 번 가지 않았단다. 당시 부산의 소주와 새우깡에는 어떤 의미가 담겼을까.

   

복학한 그가 방을 찾아왔다. 손에는 소주 세 병과 새우깡 한 봉, 그리고 참치 한 캔이 들려 있었다. 소주와 새우깡은 그러려니 했지만, 참치라고? 당시 그에겐 꽤 사치였다. 그 사치만큼이나, 그날은 그와 유독 오래 속 얘기를 나눴던 기억이다. 이후 그는 알바로 번 천만 원 중 기십만 원을 250cc 중고 오토바이를 스스로에게 선물하는 데 썼고, 친구 중 가장 빠른 오너 드라이버가 됐다. 푸르락, 푸르트락, 그 고집 넘치는 엔진 소리가 지금도 정겹다. 그리고 그는 다시 소주 한 병과 새우깡 한 봉의 생활로 돌아갔다.

   

언젠가 회사 동료가 참치를 상추에 싸서 먹으면 고기 맛이 난다기에 저녁상에 올려 봤다. 참치 한 캔 2000원. 상추 한 봉 1600원. 가격도 구색도, 단출하기 그지없는 한 끼다. 전체적으로 보쌈의 육중함보다는 샐러드의 상큼함이 강하긴 하다. 그래도 쌈장을 올리면 고기의 식감이 조금은 더해지고, 입안 가득 채우는 상추의 폭력적인 질감은 안에 무엇을 품었건 '아 됐고 이건 고기야', 라고 강하게 최면을 거는 것 같기도 하다. 고기는 먹고 싶은데 지갑 사정이 변변치 않거나 체중조절이 필요할 때 효과가 있겠다.

   

그러나 고백하자면 이후로도 냉장고를 열어 하염없이 또 무언가 입에 처넣어야만 했다. 정체 모를 허기가 입안에 남았다. 몇 년 전만 해도 고기 맛을 모르는 촌놈에다 참치가 주식이었지만, 또 많은 게 변했구나 싶었다. 그리고는 이 군의 참치가 떠오르는 것이었다. 지금과는 많이 다른 무게다. 나 역시 가난하게 살았다 생각해 왔지만, 실은 오래전부터 그릇이 넘쳤던 건 아닐까. 그리고 참치 한 캔을 누구를 위해 따느냐가, 생활의 진짜 품격을 정하는 건 아닐까 하는, 소화불량의 상념이 드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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