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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도연 Apr 19. 2021

아내 문자를 받은 유부남

이응(ㅇ)이라는 언어의 마법

내의 문자가 왔다. 누군가에게는 이 한 문장이 공포다. 사랑하는 아내가, 문자를 주셨다는데 왜, 왜 때문에. 내가 설거지를 안 했나, 고양이 밥을 잊었던가, 화장실은 치웠나, 창문은 닫았나, 어젯밤 취해서 헛소리한 건 아니지? 그저 아내라는 두 글자 앞에서 급행으로 인생을 돌이켜본다.

“여보...”

불길하다. 건조하다. 완전 무결한 표준어다. 그 완전 무결함에 입술이 마른다. 드라이클리닝. 게다가 마침표 세 개의 말줄임은 과연 수명을 줄이는 기분이다. 내 앞으로 생명보험이 있나 기억을 더듬는다. 용건이 쓰여있지 않아 더 조바심 난다. 카톡 알람 앞에서 주저한다. 창을 열어도 될까.  

그래,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 남양유업 사태도 반면교사다. 정신을 추스른다. 충분히 반가움을 비쳐야 하지만, 너무 경박을 떨다 혹시 다가올 참사를 만나면 퇴로가 막힌다. 말이 너무 길어져도 무언가에 쫓기는 듯한 인상을 준다. 홍보실 시절 감각을 살려 조심스럽게 한 문장을 꺼낸다.

“넹!”

기념할 게 있어 저녁에 고기를 쏜다는 답이 돌아온다. 오옷. 이제 맘껏 척추를 흔들어도 좋을 차례다. 엉덩이를 좌우로 흔드는 이모티콘 대방출. 손은 눈보다, 이모티콘은 문자보다 빠르니까. 아귀는 아래서 한 장, 아내는 위에서 한 장. 그날 저녁 한우 꽃등심을 혀로 녹이며 찰나의 걱정도 녹았다.

며칠 후 아내의 문자를 받았다. 무려 술자리에서였다.

“자걍 자걍”

안심이다. 용건 따위 몰라도 좋다. 무장 해제한 채 즐겨도 괜찮은 흐름이다. 완전 무결하게 젠체하는 표준어에 이응(ㅇ)이 붙 때문이다. 게다가 무려 두 번의 외침. 이건 반갑게 전할 소식이 있어 숨이 가쁜 모양새다. 역시나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는 얘기였다. 또 ‘ㅇ’이 이어졌다.

“여봉봉 내가 말양”

이응은 이토록 사람을 안심시킨다. 그 모양 자체도 말랑말랑하다. 완전 무결하게 빠져나갈 곳도, 비집고 들어갈 틈도 주지 않는 획의 가두리 이음새이면서도, 딩굴딩굴 어디로도 굴러가기 좋고, 말랑말랑 어떻게도 일그러질 수 있는 유연함을 갖춘 듯 보이는, 동그라미. 담배를 물고 기분 좋게 도나쓰를 날릴 때도 입술을 동그랗게 말고, 만화에서 상대방 모르게 혼자 지껄이는 속마음에는 동글동글 양떼구름 같은 말풍선이 따른다.

같은 연구개음(ㄱ, ㅋ, ㅇ)과 비교하면 더욱 부드럽다. ‘ㄱ’은 마치 북한 병사가 “기래? 간나가 아직도 수령 동지 카톡을 읽디 않았단 말이디” 따위 겁박이 나올 것 같고, ‘ㅋ’하면 중학생 남자애들이 단체로 “읽씹하다 그럴 줄 알았ㅋㅋㅋㅋㅋㅋ” 비웃을 것만 같다. 하지만 ‘ㅇ’은 오늘도 아내의 말을 말랑말랑하게 감싸 준다. 사고 친 게 많아 납작 엎드린 남편의 처지에도 동글동글 어깨 뽕을 더해 초라함을 덜어주는 느낌.

표준어에 진심이던 20대에는 문자에 살갑게 ‘ㅇ’ 따위 붙이지 않았다. 지금은 쓰기도 많이 쓰고, 그 스펙트럼 넓은 효능에 늘 감탄한다. 동글동글 양파처럼 눈에 잘 띄지 않지만 음식에 생동감을 더하고, 빠지면 어딘가 허전하다. (주의: 양파와 마찬가지로 메인 식재료 없이 “ㅇㅇ”만 내놓으면 성의 없다고 타박받을 수 있다. 적어도 “옹옹”처럼 찍어 먹을 소스라도 곁들여야 한다.)


서비스업에도 ‘ㅇ’의 출현이 잦아졌다. 최근 자주 가던 미용실 쌤이 퇴사했다. 이제 내 머리는 누가 구원해 주나, 처진 어깨로 동네 미용실에 들어서는데 ‘ㅇ’의 습격이 시작됐다. 어서 오세용, 샴푸실 안내해 드릴게용, 기장은 괜찮으세용, 제대로 안 말리면 탈모 와용. 삼 년은 알고 지낸 듯 친근함이 느껴진다. 머리도 동글동글 괜찮게 나왔다. 맘에 들어 2+1 이용권을 결제했다. 그러자 선생님은 ‘ㅇ’을 더욱 키우며 추가 할인권까지 내왔다. 홍보 마니 해주세용! 그래, 다시 구원이 시작되는 거다. 호갱님 비긴즈

이토록 ‘ㅇ’은 세계를 좀 더 맛있게 만든다. 사르르 눈이 감기는 음식을 만나서도 셰프에게 “솜씨가 꽤 좋으시군요, 후훗” 보다는 “오왕 맛있엉, 응헝헝헝헝헝”이라 외치는 게 보다 큰절을 올리는 예에 가까운 것 같다. 그러니까 때로는 맞춤법이나 원칙 따위 틀은 잠시 내려놓고, 이응이라는 양념에 푸욱 적신 말들을 마구 남발해도 좋지 않을까. 차카게 살지 못한 유부남들도 더욱 안심할 수 있게.

‘사랑’도 ‘사람’의 네모가 동글동글해지는 과정인지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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