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귀염둥이, 조이를 위
조이가 우리 집에 온 것은 태어나서 며칠 지나지 않아서였다. 과학시간에 애완동물 기르기 체험수업을 하던 딸아이 연서가 수업이 끝난 후 집에서 키우고 싶은 사람은 가져가도 좋다는 과학선생님의 말을 듣고 냉큼 가져온 것이다. 갓 태어난 햄스터 새끼는 전체적으로 연한 갈색 털에 배안 쪽으로는 하얀 털이 포슬포슬했고 눈도 제대로 못 떠 눈에는 눈곱이 끼어 있었다. 그 모습이 귀여워 손바닥에 올려놓으니 내 손가락을 깨물어 흠칫 놀라 다시 가져온 케이지에 내려놓았다.
“아유 징그러워. 저런 쥐새끼를 뭐가 귀엽다고 가져온담. 귀여워하는 모습을 보니 아빠랑 딸이랑 취향이 똑같다니까.”하며 연서를 흘겨보던 아내는 “네가 데리고 왔으니 네가 키워야 해.”하며 연서에게 말하니 연서는 “알았어. 그럼 앞으로 햄스터 키워도 되는 거지. 아이, 좋아라.”하며 엄마에게 애교를 떤다.
“아빠, 햄스터 이름을 뭐라고 하지?”
“글쎄, 한번 생각해보자.”하며 우리는 주말에 보기 위하여 다운로드하여 놓은 영화를 팝콘을 먹으며 감상했다. 제목은 제니퍼 로렌스 주연의 “조이” 평범한 여자가 반짝이는 아이디어로 여성 사업가로 성공하는 스토리로 딸아이와 아내는 대리만족을 느끼는지 영화 속으로 빠져 들고 있었다.
“조이 어때?”영화가 끝난 후 내가 말하자 연서와 아내는 서로를 쳐다보며 “괜찮은데.”동시에 대답했다. 그렇게 조이와 우리 가족의 동거가 시작되었다.
학교에서 가지고 온 케이지는 너무 작아 우리는 예전에 구피를 키우던 플라스틱 박스를 조이의 새집으로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밑바닥에 톱밥을 깔고 이마트에서 쳇바퀴, 물통, 모래 목욕 상자 및 이갈이 옥수수 스톤 등을 구입해서 박스에 배치해주니 그럴싸한 햄스터 집이 완성되었다. 처음에 연서는 아침에 조이에게 먹이도 주고 시간 나면 손에 올려놓고 장난도 치더니 며칠이 지나자 반복되는 일에 흥미를 잃었는지 조이에게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연서의 친구들이 집에 놀러 오면 조이를 보고 모두 신기해했지만 연서는 그때만 잠깐 조이랑 놀아주고 평상시에는 점점 조이를 보는 시간이 줄어들었다.
아내는 그런 모습을 보며 “연서야, 네가 키운다고 해서 받아들여 준 건데 그렇게 신경을 안 쓰면 나쁘지. 저번에 구피하고 초록 복어 분양받아 와서도 며칠만 신경 쓰고 방치해서 아빠 엄마가 그것들 키우느라고 고생한 것 벌써 잊어버린 거야?”하며 연서를 책망했지만 연서는 “알았어. 앞으로 내가 할게.”하며 심드렁하게 대답하더니 연신 핸드폰으로 카톡질만 해댄다.
항상 이런 식이다. 연서가 가지고 온 애완동물들은 결국 나와 집사람이 키우게 되는 공식. 이것은 우리 가족의 전통이 되어가고 있었다. 특히 최대 피해자는 집안일을 주로 맡아하는 아내였다. 정기적으로 톱밥을 갈아주고 아침에 먹이를 주고 또 물통에 물을 갈아주는 시시콜콜한 일들이 그녀의 몫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투덜대면서도 집안으로 들어온 것은 식물이든 동물이든 지극 정성으로 키워 잘 자라게 하는 것이 그녀의 특기이기도 했다. 나는 항상 중간에서 거들어주는 역할을 하면서 애완동물의 귀여움을 즐기는 기쁨이 있어 연서를 크게 나무라지는 않았다. “그래도, 연서야 엄마가 힘들어하니 연서가 엄마를 많이 도와줘야 해.” 연서에게 말하면 “알았다니까, 아빠는 엄마만 생각해.”하며 섭섭해하는 연서의 표정을 보면 더 야단을 칠 수 없게 되는 것이었다.
몇 주일이 지나자 조이는 아내의 보살핌에 보답이나 하듯이 무럭무럭 자랐다. 몸집이 커진 조이는 부지런히 쳇바퀴를 돌리며 놀아 밤에 우리 집 거실에는 항상 “드륵드륵”하는 조이의 쳇바퀴 돌리는 소리가 시끄럽게 울려 퍼졌다. 밤에 잠에서 깨 물이라도 먹을라치면 들리는 그 소리에 처음에는 놀랐지만 점점 익숙해져 둔감해갔다.
그렇게 체력을 키워가던 조이가 사고를 친 건 그 해 여름이었다. 물통 위로 몸을 옮겨 뚜껑이 열려 있던 케이지를 탈출하려고 뛰어오르는 시도를 한 것이다. 그 장면을 본 아내가 나에게 “조이가 나오려고 해. 빨리 뚜껑 닫아!”하고 소리쳐 그쪽을 바라보니 조이는 박스의 모서리를 잡고 밖으로 빠져나오기 직전이었다. 나는 재빨리 조이를 밀쳐내어 바닥으로 떨어뜨리고 뚜껑을 닫아 조이의 탈출 시도는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자유를 위하여 빠삐용처럼 탈출을 시도한 조이가 얻은 전리품은 그 전보다 높이가 두배 이상 높아지고 면적도 넓어진 새집이었다. 우리는 이마트에서 도저히 탈출이 불가능한 높이의 새 플라스틱 박스를 사 와 조이의 새집을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 새로운 놀이기구도 설치해 주어 조이가 덜 심심하게 집을 꾸며 주었다. 상추 등 신선한 야채를 사료와 함께 자주 넣어주어 먹는 것에도 조금 더 신경을 써 주었다.
조이는 처음에 물통 위로 올라오는 등 몇 번 더 탈출을 시도해보는 것 같았지만 이내 탈출이 불가능한 것을 알았는지 더 이상 탈출 시도는 없었다. 대신 우리는 볼 형 기구에 조이를 태우고 방안을 돌아다니게 해서 바깥 구경을 시켜주었고 처갓댁에 갈 때 케이지를 갖고 가서 새로운 집도 구경시켜 주는 등 일상의 지루함을 덜어낼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그런 노력에 조이도 고마워했는지 더 이상 탈출 시도를 하지 않아 조이와 우리 가족의 동거는 그 이후로도 쭉 평화롭게 지속되었다.
나는 쇼핑을 할 때마다 조이를 위한 이갈이 스톤을 구입하는 등 가족 같은 느낌으로 조이를 생각했고 아내는 “조이 아빠”라고 나를 부르며 이런 나의 조이 사랑을 놀렸지만 나도 집에 들어가면 “조이야 아빠 왔다.”하며 조이 아빠임을 은근히 과시했다. 어린 시절 집에서 고양이를 키운 경험 때문인지 나는 애완동물을 좋아했지만 바쁜 일상 속에 엄두를 못 내었다. 조이를 보면 옛 추억과 고양이를 키우던 엄마 생각이 나서 왠지 감상에 젖어들곤 했다.
영원할 것 같았던 조이와 우리 가족의 동거가 위기를 맞이한 건 조이를 데리고 온 지 3년째 되는 해였다. 가족여행을 가게 된 우리는 조이에게 식량과 물을 충분히 먹을 수 있게 해 주고 집을 나섰다. 여행 내내 나는 조이가 잘 지내는지 궁금했지만 너무 유난을 떠는 것 같아 말을 하지는 않았다. 여행에서 돌아와 집의 문을 열고 “조이야, 아빠 왔다.”하며 조이의 케이지를 살펴본 순간 조이의 모습이 이상해 깜짝 놀랐다. 오른쪽 다리에 털이 많이 빠져 앙상한 살이 드러나 있는 게 아닌가. 케이지 안을 자세히 살펴보니 물통의 물이 모두 빠져나와 근처가 물로 흥건하고 습기에 약한 햄스터의 생리상 조이의 피부에 안 좋은 영향을 준 것 같았다.
우리는 마른 톱밥을 다시 갈아주고 물통도 새 물통으로 갈아주어 습기를 제거해주었지만 조이의 상태는 좋아지지 않고 며칠 후에는 오른쪽 배 부위에 혹 덩어리가 생기더니 점점 커져 갔다. 동네 수의사에게 사진과 동영상을 보여주며 물어보니 암 같은데 정확한 것은 검사를 해봐야 안다고 했다. 그리고 햄스터의 수명이 3년 정도인데 조이는 이미 3년이 지나 언제 죽어도 이상한 것은 아니라고 말하며 위로의 말을 건넸다. 나는 그 말을 아내와 연서에게 전했다. 아내는 거실에 있던 조이의 케이지를 안방으로 옮기며 톱밥도 자주 갈아주고 먹이도 신선하고 맛있는 것으로 자주 넣어주었다. 움직임이 둔해지기는 했지만 조이도 먹이를 잘 받아먹어 우리는 조이의 상태가 그렇게 심각한 건 아닐 거라고 생각하며 상황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려고 노력했다.
혹 덩어리 때문에 잘 움직이지 못하고 자빠지면 일어서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긴 했어도 조이는 그 이후에도 잘 먹으며 몇 개월을 살아냈다. 하지만 그 해 가을 일요일 아침 늦잠을 자고 있는 나를 깨우며 아내는 “조이가 이상해. 먹이를 줘도 움직이지 않아.”하며 말했다. 내가 조이가 숨어있는 나무상자를 들어내고 보니 조이는 웅크린 채 아무 움직임이 없었다. 몇 번 나무상자로 조이의 등을 밀어 보았지만 이미 딱딱해진 조이의 몸은 조이의 죽음을 알리고 있었다. 나는 연서에게 조이의 죽음을 알렸다. “우리 때문이야. 우리가 여행을 가서 조이가 죽었어.”하며 연서는 눈이 빨개지도록 울었지만 “연서야, 조이는 생명이 다해서 죽은 거야. 그동안 우리에게 많은 즐거움을 주었고 우리도 최선을 다해서 키워주었으니 조이도 고마워할 거야.”하며 연서를 위로하고 종이상자에 조이를 넣고 톱밥을 넣어 밀봉하였다. 밀봉한 종이상자를 가지고 집 근처 화단에 가서 나무 밑에 묻어주고 나는 조이에게 다음 생에는 사람으로 태어나서 행복하게 살길 바란다고 기원해주었다. 조이의 죽음. 평생 우리에게 즐거움을 주고 간 한 애완동물의 일생은 그렇게 처연하게 끝나가고 있었다.
조이가 죽은 후 몇 주일이 지난 어느 날 직장에서 귀가하자 연서와 아내가 다투는 소리가 들렸다. “아니 주인 없는 강아지를 함부로 데리고 오면 어떻게 해.” 아내는 황당해하며 연서를 바라보았다. “아니, 우리 집 입구 앞에서 계속 서성이고 있는데 어떻게 해?”방문을 열고 들어오는 나를 보며 연서는 구원군이라도 만난 양 나를 쳐다보며 말한다. 마룻바닥에 연한 브라운 색깔의 피부에 검은 눈동자를 가진 푸들 한 마리가 불안한 듯 거실을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아내는 “여보 내일 강아지를 동사무소에 맡겨야겠어요. 목줄도 없는 것을 보니 누가 버린 것 같은 데 유기견은 함부로 데리고 오면 안 되고 신고해야 하는 데 연서가 그냥 데리고 왔네요. 나참 어이가 없어서...”강아지를 보니 나도 황당했지만 “일단 경비실에 얘기해보고 내일 동사무소에 신고하지 뭐.”하며 대답했고 연서를 보며 “오늘은 어쩔 수 없으니 네가 강아지를 돌 봐.”하고 말했다. 나의 이 말을 반가워하며 연서는 말했다. “알았어 아빠, 그런데 이 푸들 이름은 뭐라고 하지?” “조이 2.”라는 나의 대답에 활짝 웃고 있는 연서를 아내는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