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이 자네 내 얘기 좀 들어주려나?”
벤치에 앉아 책을 읽고 있던 나에게 은행나무는 조용히 속삭였다. 마른 가지에 걸려있던 노란 은행잎이 쌕쌕 소리를 내며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이제 얼마 안 있으면 내 나이 천살인데 이 정도 살았으면 나도 죽기 전에 사람들한테 하고 싶은 말 속 시원히 해도 되겠지.
사람들이 내 나이 갖고 말들이 많은데 800살이라고도 하고, 600살이라고도 하는 데 사실 언제부터인가 나도 내 나이를 세어보지 않아 정확히는 모르겠어. 하지만 나비와 벌이 씨를 물어와 방학동, 아니 예전에는 양주였지. 양주 땅에 뿌린 것을 생각하면 천년은 된 것 같아.
무수히 많은 씨앗이 뿌려지고 수천 번의 실패를 거듭하다가 내가 수정이 되었을 때가 이성계가 위화도 회군을 하던 해였지. 몇 년 후 나는 조선의 건국과 함께 처음 땅 밖으로 고개를 내민 거야. 그게 나와 세상과의 첫 만남이었지.
내가 사람들이 알아볼 수 있는 크기의 어린 묘목이 되었을 때 나는 내가 서 있는 땅이 범상치 않은 기운이 있는 곳이라는 곳을 처음 알게 되었어. 그렇지만 그때만 해도 내가 겪을 세월이 얼마나 모질고 매서울지는 알 수 없었지. 그러기에 그때 나는 너무 어리고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만발했거든.
성군 세종대왕의 둘째 딸인 정의공주의 무덤이 생겼을 때 사람들은 이 땅이 명당이라고 말했어. 왕족의 묘가 모셔졌다고. 덩달아 나를 찾아주는 사람들도 늘어났지. 나도 그런 말들을 들으니 어깨에 힘이 들어가 힘 빼는 데 한참이나 걸렸어. 아직 어릴 때라 겉멋이 들었거든. 다 지난 일이지.
왕족의 마지막을 장식하기도 했지만 이곳은 원래 파평 윤씨들의 집성촌이었어. 그들이 내 앞에 있는 우물을 중심으로 마을을 이뤘고 우물의 이름이 원당샘이었기에 원당마을이라고 불리었지. 윤씨들이 번성하고 전국에 퍼지면서 이곳이 그들의 본거지로 여겨지기도 했었어.
좋은 기운만 모인 곳으로 생각했던 이곳에 불길한 일들이 생기기 시작한 것은 500년 전쯤일 거야. 강화에 있던 연산군의 묘가 이곳으로 옮겨왔지. 부인 신씨가 처가 쪽 인맥을 이용하여 묘라도 길지에 모시자고 이장을 하게 된 거야. 그 후 신씨와 연산군의 딸과 사위도 이곳에 묻혔어. 폐위는 됐어도 왕족이니까 나야 왕족의 릉이 생긴 거라 역시 길지의 기운이라고 생각했어.
원래 태종의 후궁인 의정궁주 조씨의 묘터였는데 그 위로 연산군과 부인 신씨의 묘가 자리 잡고 제일 밑으로 연산군의 사위와 딸이 묻히게 된 거야. 세종대왕의 4남인 임영대군의 외손녀였던 신씨의 간곡한 청을 조정에서 들어준 거지.
그 이후로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발길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어. 가끔 찾아오는 사람들도 내가 있는 곳으로는 잘 오지 않고 에둘러 세종대왕의 둘째 딸인 정의공주의 묘만 참배하고 가는 거야. 어쩌다 연산군묘를 지나가는 사람들은 어머니 때문에 할머니를 죽인 천하의 패륜아라고 손가락질하며 침을 뱉고 가곤 했지. 그러다가 나를 보면 이런 자리에 있는 이 나무도 재수 없다며 발로 내 배를 차기까지 했어. 나는 짐짓 아프지 않은 척하며 몸을 털었지만 그때부터 내 몸에 옹이가 생기기 시작했지. 사람처럼 나무도 마음의 상처가 암으로 변할 수 있다는 걸 처음 알게 되었던 거야.
가끔 연산군묘를 바라보며 “임금님 왜 그러셨어요?”하고 물어보면 연산군은 미안해하며 “내가 간신 임사홍과 요부 장녹수의 꾐에 빠져 실성했던 게야. 임자까지 욕보여서 미안 하이.”하며 나를 달래주곤 했지. 그래도 나는 인간적으로 연산군이 밉지 않았어. 어머니를 얼마나 사랑했으면 그렇게까지 했을까 하는 생각에... 아 참 내가 얘기 안 했나? 내 나이 500살이 넘으면서 난 귀신들과 대화를 시작했어. 자네 옆에 처녀귀신은 작년에 북한산에서 목 매죽은 귀신이야.”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라 나는 내 옆을 바라보았지만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세월을 견디며 살아가던 나에게 위기가 찾아온 것은 흥선대원군이 집권하기 시작하면서부터야. 왕권강화를 위하여 경복궁을 재건하는 사업에 목재가 부족하자 대원군은 전국의 은행나무를 징목 대상으로 지정했지. 그 징목 대상에 내가 들어간 거야. 나를 베기 위하여 장정 여남은 명이 도끼와 톱을 들고 왔을 때는 이제 죽는가 보다 하고 나는 눈을 감고 말았어. 장정들이 도끼로 내 발목을 내려치려는 순간 마을 주민들이 달려와 장정들을 말렸지. “이 은행나무는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입니다. 제발 이 나무만은 살려주세요.” 외치는 데 장정들도 마을 주민들의 기세에 눌려 서로 눈치만 보고 있더군. 이 일이 상부에 보고되자 민심은 천심이라며 대원군이 대인배답게 양보했다는 소식이 들려왔어. 나는 나를 살려 준 주민들에게 은혜를 갚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여름엔 푸른 가지로 주민들이 쉴 그늘을 만들어주고 가을엔 은행열매를 간식거리로 제공해 주었지. 은행잎을 떨어뜨려 농부들에게 거름을 마련해주는 일도 행복했던 기억들이야. 주민들도 대원군 대감이 살려주었다고 나를 대감 나무라고 부르며 좋아했지.
하지만 평화롭고 행복한 시간이 오래가지는 않더군. 신식 군대를 우대하고 구식군대를 차별하는 민씨 일가의 처사에 구식 군인들이 반발하여 임오군란을 일으키고 명성황후를 책임자로 여겨 찾으려고 하자 명성황후는 여주로 피난을 갔어. 그 와중에도 왕족들이 묻혀있던 이곳에 들러 왕족의 안녕과 조선의 번영을 기원하는 고사를 지냈지. 어떤 시련 앞에서도 의연했던 국모의 기개를 나는 그때 보았어. 하지만 을미사변으로 왜놈들에게 억울한 죽음을 당했던 해 내 몸은 서럽게 통곡하는 것 외에 어떤 것도 할 수 없음에 슬펐지. 그때부터였을 거야. 내 몸에 있던 옹이들이 점점 커지고 내 몸에서 은행과 푸른 잎들이 눈에 띄게 줄기 시작한 게.
자네 나를 그렇게 불쌍하게 쳐다보지 말게. 내 인생이 불행했던 것만은 아니야. 자네 김수영이라는 시인을 아나? 그렇지 워낙 유명한 시인이니까. 책을 읽고 있는 자네의 모습에서 시인의 자태를 느낀 거야. 그래서 말을 걸게 됐고. 김수영 시인이 여기 근처에서 살았어. 배우 양조위를 닮아 잘 생기고 키도 훤칠했지. 그는 집에서 시를 짓다가 막히면 나에게 와서 영감을 얻곤 했지. ‘풀’이라는 시와 ‘폭포’라는 시를 읽으면서 온몸을 전율하던 시인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해. 그의 말처럼 온몸으로 밀고 사랑으로 시를 짓더군. 하지만 그도 교통사고로 죽으면서 너무 빨리 내 곁을 떠나갔지.
그가 떠나고 장군님들이 우리나라를 지배했어. 장군님들은 잘 먹고 잘 살게 해 주면 국민들이 불만이 없을 줄 알았지만 그 과정에서 많은 젊은이들이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해서 잡혀가고 고문을 당했지. 그 원혼들이 나에게 와서 하소연을 할 때 내 마음은 찢어지는 듯했어. 그들이 다시 살아날 수 있다면 차라리 늙은 내가 불타 없어지길 바랬지. 그래서였을까 내 안에 불씨가 진짜 불길이 되어 나를 집어삼키려고 했어. 마침내 곁을 지나가던 주민이 119에 신고해서 불을 끄지 않았다면 아마 그때가 나의 제삿날이 되었을 거야. 질긴 목숨 그렇게 또 이어나가게 되더군.
왜 자네에게 이런 얘기를 하냐고. 한 가지 부탁이 있어서야. 자네 얼마 전부터 퇴직 후에 하기 위하여 목수 일을 배우고 있지? 이제 나는 열매도 맺지 못하고 잎도 열리지 않고 불에 탄 화상만 있는 늙고 흉측한 나무야. 그래도 마지막 소원이 있다네. 진통제와 거치대로 진행되는 연명치료를 중단하고 썩기 전에 나의 몸통을 베어 아이들의 침대로 만들어주게. 이게 자네에게 전하는 나의 마지막 유언일세. 아이들의 은행나무침대가 되어 아이들이 새근새근 잠드는 숨소리를 들으며 나도 이제 잠들고 싶어. 영원히...”
나는 책을 덮고 벤치에서 일어났다. 멀리 보이는 북한산 인수봉 아래로 뉘엿뉘엿 해가 저물고 붉은 노을이 늙은 은행나무를 다정하게 보듬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