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8월 나는 강원문학 신인상에 당선되며 소설가로 문단에 데뷔하였다. 등단 발표가 있던 8월 15일은 마침 음력으로 나의 생일이었다. 나는 많은 지인들로부터 생일 및 등단 축하를 받으며 남다른 감회에 젖어들게 되었다. 지천명의 나이가 지나서 하는 늦깎이 등단에 이렇게 감격해하는 것이 약간은 우습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7년 전 나는 한창 일할 40대 중반의 나이에 직장생활을 접고 생명의 위협을 느껴야 하는 위기에 처해 있었기에 건강을 회복하고 취미로 시작한 문학에서 등단의 영광까지 차지한 것이 더욱 감사하고 감격적으로 다가왔다.
2013년 2월 1일 그날은 직장상사의 송별회 일정이 잡혀있었다. 나는 며칠 전부터 몸살감기 기운과 숨찬 기운이 있어 오후에 외출을 달고 직장 근처 내과의원에서 진료를 받고 휴식 차 침대에서 포도당 주사를 맞으며 누워있었다. 아무래도 증상이 심상치 않다는 의사의 권유로 엑스레이 사진을 찍어본 결과 심장근처에 물이 차있고 폐에도 염증이 발견된다는 소견으로 의사는 늑막염이 의심된다며 빨리 큰 병원으로 가보라고 하였다. 나는 상사와 직원들에게 의사의 소견을 전하며 송별회에 참석할 수 없음을 알린 후 집 근처 상계백병원 응급실로 집사람과 딸아이와 함께 급히 가게 되었다.
병원 응급실에서 산소호흡기를 달고 응급치료를 받고 나니 조금은 증상이 호전되는 듯했지만 산소호흡기를 떼면 여전히 숨이 차고 답답해 죽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병원에서는 여러 검사를 해보더니 심내막염이 의심된다며 입원 치료를 받을 것을 권하였다. 평소 심장이 약하고 병약한 체질이던 내가 최근에 치과에서 시술하였던 임플란트 치료 시 병균이 심장 쪽으로 들어가 염증을 일으키고 승모판막에 이상을 주어 판막이 손상되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충격적인 사실도 같이 알게 되어 입원 치료는 불가피한 상태였다. 임플란트 치료 시 치과의사가 동의서에 사인을 받으며 수술 시 나타날 수 있는 부작용에 대하여 설명했던 말이 그제야 떠올랐다.
백병원 9층의 6인실인 901호에 입원을 하게 되어 6명의 환자들과 가족들이 같이 생활하는 병실 생활이 시작되었다. 입원 초기에 심장에 이상이 와 혈압이 위험 수준 이하로 떨어지는 아찔한 상황이 발생되었다. 중환자실로 급히 이송되어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심장 전기 충격을 두 번 이상 하는 등 나와 가족들에게는 악몽과 같은 상황이 발생하였지만 다행히 병원 측의 급한 대처로 응급상황은 모면하고 다시 쇼크가 올 경우를 대비하여 중환자실에서 계속 치료를 받게 되었다.
나의 주치의는 유능한 흉부외과의사인 장지민 박사로 나에게 승모판막수술을 권하였다. 승모판막이 많이 손상되어 정상적인 심장판막으로 기능을 못하여 피가 역류하는 폐쇄부전 상태로 계속 방치하면 심장마비로 죽을 수도 있다는 말에 수술을 결심하게 되었다. 병원에서는 수술동의서를 받으며 수술시간 동안 심장을 멈추기 위하여 인공심폐기를 폐와 대동맥에 연결하여 인위적으로 혈액을 순환시키고 손상된 판막을 인공판막으로 교체하거나 손상된 부위를 복원하는 대수술로 수술 후 5% 정도는 사망에 이르고 인공판막으로 교체한 경우에는 평생 와파린이라고 하는 혈액응고 방지제를 먹어야 한다고 말하며 동의 여부를 다시 한번 확인하였다. 그 말에 혹시나 하는 걱정도 있었지만 이미 나는 수술 외에는 방법이 없음을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어 다른 더 큰 병원으로 옮겨서 검진을 받아 보라는 지인들의 충고를 외면하고 빠른 수술이 나의 살길이라 생각하여 수술을 감행하게 된 것이다.
2013년 2월 13일 수술 당일 수술을 위한 전신마취를 위하여 마취실로 향하는 중 딸아이한테 웃으면서 아빠 수술 잘 받고 올게 하며 눈을 마주쳤다. 그 전날 불길한 예감에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평소 엄마처럼 의지하였던 누나에게 혹시 수술이 잘못되면 집사람과 딸아이를 잘 부탁한다는 유언 아닌 유언을 했고 누나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하늘에서 어머니가 둘째 아들인 너를 지켜줄 것이니 쓸데없는 걱정하지 말고 수술 잘 받을 생각만 하라고 나를 위로하였다. 혹시 가족을 다시 못 볼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엄습해왔지만 그런 기분을 떨쳐내려고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는 아버지와 집사람에게 걱정 말라고 말하며 마취실로 들어가게 되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당초 5시간 정도로 예정되었던 수술은 수술 후 지혈이 안 되어 5시간이 연장되었다. 내가 10시간 이상 수술실에 있게 되어 아버지와 집사람은 수술실 밖에서 거의 초주검이 되어 수술 결과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수술 후 마취상태에서 천천히 깨어나며 주위의 이런저런 얘기가 들려왔다. 수술을 한 장지민 박사는 나에게 수술이 아주 잘되었고 다행히 판막 손상상태가 심각하지 않아 인공판막으로 교체하지 않고 자연 판막을 최대한 복원하는 수술을 하였으며 혈액응고 방지제인 와파린은 3개월 정도만 먹으면 된다는 희망적인 얘기를 해주었다. 나는 새로운 생명을 얻은 듯한 고마움에 인공호흡기와 석션이 입에 고정되어 말은 못 하고 연신 눈만 깜박이며 장지민 박사의 하얀 손을 잡고 감사의 표시를 하였다.
수술 후 중환자실에 처음 방문한 집사람의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다. 하지만 다행과 안도의 눈물로 병약한 나와 결혼해 준 아내에게 새삼 고마움을 느끼면서 다시는 건강문제로 고생시키지 않게 열심히 몸 관리를 할 것을 마음속으로 다짐하였다. 이어서 아버지가 면회 와서 눈물을 보이시는 데 팔순 노인을 맘고생시킨 게 너무 맘이 아팠다. 딸아이는 너무 어려 중환자실로 들어오지 못하고 한참 후에 일반병실인 901호로 옮긴 후에야 보게 되었다. 딸아이를 볼 수 있다는 평범한 사실에 무한한 기쁨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옆의 환자가 밤사이 죽어나가는 공포스러운 중환자실의 분위기는 숙면을 취하기 힘들게 만들었고 나는 의사의 수면제 처방으로 간신히 잠이 드는 어려움이 있었다. 나는 신경이 예민해져서 간호사들에게 짜증을 내며 내 어려움만 호소하는 경우가 많았다. 중환자실에 근무하는 간호사들은 이런 나의 짜증을 잘 받아주고 친절하고 자상하게 불편한 부분을 해결해 주었다. 이러한 도움으로 일주일간 중환자실에서 무사히 회복하고 일반병실로 옮기게 되어 이젠 괜찮은가 싶은 순간 또 한 번 위기가 다가왔다.
수술 시 지혈이 안 되어 다량의 혈액을 수혈하였는데 이의 부작용으로 흉선에 문제가 생겨 유미흉이라는 수술 후유증이 생긴 것이다. 이로 인해 당초 1주로 예정되었던 중환자실 치료기간이 3주로 연장되었고 유미흉의 후유증인 혈관 내 지방 유출로 인한 염증을 방지하기 위하여 겨드랑이에 구멍을 내어 흉관을 연결하는 시술을 받았다. 당초 복부에 연결되었던 2개의 흉관과 함께 내 몸에 세 개의 튜브가 연결되는 상황에서 지속적으로 고인 피와 고인 지방을 몸 밖으로 배출하는 상태가 2주 정도 지속되어 나는 신체적, 정신적으로 고통스러운 상황에서 치료를 받게 되었다.
하지만 옆의 환자는 나와 비슷한 상황에서도 절망하지 않고 흉관이 연결된 상태에서도 시간 날 때마다 일어나서 맨손체조를 하는 등 회복을 위하여 끊임없이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다. 면회시간에 그 모습을 유심히 본 집사람은 회복에 대한 열정이 있으니 저 환자는 금방 퇴원할 것이라고 말하며 너무 누워있지만 말고 조금씩 몸을 움직여보라고 말하였다. 그 환자가 회복하여 중환자실을 나가 일반병실로 전원 하는 모습을 보며 나도 용기를 얻었다. 천천히 몸을 움직이기 시작하며 기력을 조금씩 회복하게 되었고, 무지방 식사로 시간이 지나며 유미흉 증세도 사라지고 흉관도 떼어낼 수 있어 훨씬 더 편안하게 치료를 받게 되었다.
중환자실에는 나와 내 옆의 환자처럼 회복이 잘 되어 일반병실로 전원 하여 퇴원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회복하지 못하고 증세가 악화되는 안타까운 모습도 많이 있었다.
강릉에서 왔다는 환자는 당뇨합병증이 심하여 오른쪽 다리를 절단하였는 데 한밤중에 면회를 와 그 모습을 바라보며 혼자 숨죽여 흐느끼던 부인의 뒷모습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또 어떤 환자는 세 번이나 갑상선 암이 재발하여 백병원에만 세 번 입원한다는 말로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였다. 결국 성대까지 암이 침범하여 수술 후 목소리를 잃고 하루 종일 천장만 응시하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중환자실에서 우연히 아들의 면회를 온 동료직원도 만나게 되었는 데 자신의 아들이 군대에서 신장이 안 좋아 의가사 제대하여 중환자실에 입원하였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러나 제 때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하여 신장이 망가질 대로 망가져 신장투석까지 하게 되고 생명을 보장할 수 없는 상태라는 마음 아픈 사연도 듣게 되었다. 간경화가 악화되어 황달 증세로 병원에 온 내 옆의 환자는 사업 때문에 고생하다가 최근에 사업이 잘 풀려 이제야 살만하게 되었는데 간암 4기로 판명되어 절망적인 상태라며 밤마다 잠들지 못하고 한숨만 쉬었다.
많은 사람들이 병으로 죽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새삼 생과 사의 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하게 되고 건강이 인생에서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유미흉 증세가 잡히고 나서도 약간의 부정맥이 있어 걱정을 하였지만 심장수술 후 일시적으로 발생하는 증상으로 점차 사라지게 되었다. 일반병실로 옮겨 회복 치료를 3주 정도 더 받은 후 장지민 박사는 나에게 퇴원을 축하한다는 말로 수술의 성공을 확인시켜 주어 다시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게 되었다.
퇴원과 동시에 지불해야 할 병원비가 실손 보험으로 지불 가능한 것 이외에도 많이 나와 아내와 나는 걱정을 하였지만 아버지는 통장을 주시며 병원비를 내라고 우리에게 말씀하였다. 농사를 지으시고 농산물을 지인들에게 판매하고 받은 돈을 모은 것이라며 나에게 말하는 아버지에게 아무 말도 못 하고 조용히 속으로 불효자의 눈물만 흘렸다. 퇴원하면 아버지에게 잘해야지 생각했지만 마음뿐 아직 효자라고 말하기에는 너무 부족한 나의 모습에 오늘도 반성하게 된다.
일상으로 복귀한 나는 직장내상담센터에 복직하였고 관리자분들과 직원분들의 배려로 무리하지 않고 상담을 하면서 점차 건강을 회복하였다. 2016년에 업무실적이 좋아 팀장급으로 특별 승진한 나는 3년 전에 광화문에 있는 지금의 사무실로 발령을 받아 근무하게 되었다. 건강을 되찾은 나는 운동뿐만 아니라 그동안 취미로 즐기던 시와 소설 쓰기를 계속하며 직장 내 문예전에 작품을 출품하는 등 즐거운 마음으로 직장생활을 영위하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였다. 그리고 2020년 나는 직장내 문예전 시분야에서 고대하였던 대상이라는 결과물과 함께 영광스럽게도 소설로 등단하는 기쁨을 맛보게 되었으니 7년 전만 하여도 등단은커녕 20년을 채우지도 못하고 직장생활을 접어야 하는 건강상의 위기를 맞이하였던 나로서는 너무도 감개가 무량한 한 해였다.
돌이켜 보면 젊은 나이에 큰 수술을 받게 된 건 심장이 약한 병약한 체질임에도 불구하고 건강을 관리하지 않고 하루 2갑씩 흡연을 하며 스트레스를 날려버리려 했던 나의 생활 방식 때문이었다. 의사와 간호사, 가족들이 옆에서 도와주어 혼자서 넘을 수 없는 위기를 무사히 넘기고 다시 살 수 있었다. 그리고 우리 사회가 지켜 낸 선진적 의료체계와 의료기술 등의 도움도 컸다. 심장판막수술 후 나는 자연스럽게 금주, 금연을 실행에 옮기고 매일 근력운동과 유산소 운동을 1시간 이상 하는 등 규칙적인 생활을 하였다. 식사도 저염식과 현미밥 등 건강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바꾼 후 나의 건강은 지속적으로 좋아지게 되었고 업무에 집중하여 특별승진이라는 영광도 얻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렇듯 나를 다시 살 수 있게 해 준 의료기관 및 주변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뜻을 전하고 싶다.
돈을 잃으면 잃는 것이 적고, 사람을 잃으면 잃는 것이 많고,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 것이라는 말처럼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이 건강하고 무탈하게 9988(99세까지 팔팔)하게 사시길 진심으로 기원드리며 이 글을 마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