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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기 Oct 19. 2023

가스라이팅으로 가부장제를 유지하는 오빠들에게

조남주 현남오빠에게

조남주 소설가의 단편소설 '현남오빠'는 '82년생 김지영'으로 페미니즘의 대표주자로 공인받는 그녀의 작품세계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작품이다. 주인공이 여성으로서 주체적인 내면세계와 현남오빠로 대표되는 가부장제 사회의 압박 사이에서 자아를 발견해내가는 여성의 심리를 탐색하는 이야기다. 작품은 혼자만의 공간에서 현남오빠라는 외부적 제약을 극복해 나가는 여성서사를 통하여 남성중심 사회에서 여성의 성장을 방해하는 남성들의 기술적 제약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전달하고 있다. 이 작품은 조남주 소설가의 작품들에서 소설가로서 그녀의 작품세계를 관통하는 테마를 담아내고 있는 것이다. 


왠지 오기가 생기더라고요. 저는 오빠 손을 잡아끌고 길을 건너 카페에 들어갔습니다. 규연이에게 직접 자신은 오빠의 동아리 후배이고 저와 다른 과라는 대답을 들었어요. 그런데도 제가 울었던 건 오빠가 우겼던 일이 화가 나서도, 그래놓고 착각할 수도 있다고 별것 아닌 듯 넘겨서도 아니에요. 사실 규연이를 만나러 가면서 정말 내가 틀린 거면 어떡하지, 내가 헷갈리고 있는 거면 어떡하지, 저 자신을 계속 의심했기 때문이에요.
(소설 본문 중에서)


'현남오빠'가 주인공에게 준 가장 큰 심리적 폐해는 그녀가 그녀 자신을 믿지 못하게 가스라이팅했다는 것이다. 한 여성이 자신만의 눈으로 세상을 보지 못하고 혼자만의 세계 안에서 현실에 대항하는 능력을 상실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주인공은 가부장제가 만들어 놓은 프레임 안에서 외로움과 혼란함을 겪으면서도 상상력과 창조력을 통해 여성으로서 자아를 보완하고자 노력한다. 그리고 이러한 내면세계와 외부 세계 간에 발생하는 충돌과 갈등을 통해 자신을 발견하고 점점 존재감을 확립하게 된다.


우리가 틀렸어요. 물론 공공연하게 비방하지는 않았지만 우리는 분명 잘못된 판단으로 한 사람을 매도했습니다. 뒤늦게 갑자기 이 얘기를 하는 건, 혹시 오빠가 아직도 교수님에 대해 왜곡된 기억을 가지고 있다면 바꿔주길 바라서입니다. 이제 와서 우리끼리 무슨 생각을 하든, 무슨 말을 하든 교수님에게는 아무 영향도 없어요. 아니, 전혀 알지도 못하시겠죠. 그래도 잘못된 건 바로잡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무 근거도 없이 한 사람을 모함했잖아요.
(소설 본문 중에서)


작가는 소설을 통하여 여성이라는 존재로서 사회적으로 가해지는 제약과 억압, 그리고 개인적인 욕망들에 대해 집중적으로 탐구하고 있다. '현남오빠'에서 주어진 공간은 여성이 스스로를 발견하고 인식할 수 있는 독립된 영역이지만 자신을 압박하고 제어하는 가부장제적 가스라이팅이 난무하는 세계이기도 하다.


또한 작가는 일상생활 속 평범한 순간들에 숨겨진 가부장제의 압박과 불합리함을 찾아내며, 사회적 관계망 속에서 여성과 남성 심리의 복잡한 면모들을 민감하게 관찰하고 있다. '현남오빠' 역시 이러한 테마와 요소들을 담으며 조남주 소설가의 페미니즘적 세계관과 일관성 있게 이어진다. 그것은 소설의 마지막 부분의 주인공의 대사에서 집약적으로 표출되고 있다.


오빠가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나를 돌봐줬던 게 아니라 나를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사람으로 만들었더라. 사람 하나 바보 만들어서 휘두르니까 좋았니? 청혼해 줘서 고마워. 덕분에 이제라도 깨달았거든. 강현남, 이 개자식아!
(소설 본문 중에서)


조남주 작가는 상복이 많은 작가이다. 이런 상복은 그녀가 방송작가로서 탄탄하게 필력을 가다듬고 소설가로서 새 출발을 하는 독특한 이력에서 기인한다. 2011년 '귀를 기울이면'으로 문학동네소설상을 받으며 화려하게 등단한다. 황산벌문학상을 받은 '고마네치를 위하여'에서 가능성을 내보인 작가는 '82년생 김지영'으로 등단 후 5년 만에 최고 베스트셀러 작가에 이름을 올리며 세상에 확실한 출사표를 던지게 되는 것이다.


반페미니스트 남성우월주의자들에게 최우선 공격대상이기도 하지만 아직도 여성의 권리와 사회경제적 위치가 불리한 한국적 현실에서 소설가로서 끊임없이 여성의 자기기만과 남성의 우월의식을 꼬집는 그녀만의 작품세계는 당분간 그 울림이 잦아들지는 않을 것 같다. 이런 그녀의 시도가 더 큰 문학적 성취로 이어질 수 있도록 작가의 건승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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